유로화에 대한 달러 환율이 약 14개월 만에 1.5달러를 돌파하는 등 약달러 현상은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잡고 있다. 자연히 증시에서도 환율의 움직임이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시장의 수급을 책임졌던 외국인이 원 · 달러 환율의 오르내림에 따라 매수와 매도를 오락가락해 증시의 방향성도 불투명해졌다. 전문가들은 4분기 이후 실적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증시가 박스권에 갇힌 양상이지만 약달러를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종목은 각개약진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또 달러화 가치와 밀접하게 관련되는 해외펀드도 지역에 따른 투자전략을 점검하고 신규 가입자의 경우 헤지 여부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철강 음식료 유통 금융 등 환율수혜 기대

연초 코스피지수 1000선까지 떨어졌던 증시가 1600 이상까지 급반등한 데는 공격적으로 주식을 사들인 외국인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외국인은 삼성전자 현대차 등 한국을 대표하는 우량주를 중심으로 '바이 코리아' 행진에 나서며 지수를 끌어올렸다. 정보기술(IT) 자동차 등 업종에서 글로벌 구조조정을 거치며 '승자 프리미엄'을 누린 주요 수출주들은 환율효과까지 톡톡히 보며 주도주로 떠올랐다.

하지만 지난 9월 말 이후 원 · 달러 환율이 1100원대로 진입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달 초까지 왕성하게 주식을 사들이던 외국인은 23일 환율 1200원대가 깨지자 다음 날부터 8거래일 연속 순매도로 돌변했다.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주의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 그동안 주가상승뿐 아니라 원화가치 상승의 수혜를 입었던 외국인 입장에서는 환율하락 탓에 추가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환차익이 제한적이란 전망도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약달러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만큼 원화강세로 실적개선 효과가 있는 업종과 종목군에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신영증권 분석에 따르면 원 · 달러 환율이 100원 하락하면 반도체 업종의 연간 영업이익은 약 3조2000억원,자동차 업종은 1조원 각각 감소할 것으로 추정됐다. 약달러가 수출주에는 아무래도 부정적이란 얘기다.

반면 철강 음식료 에너지 등 해외에서 원료를 수입하는 업종은 원가부담 인하로 수혜가 기대된다. 항공 유통 은행 등도 원화강세로 이익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대표적인 업종들이다. 이경우 신영증권 연구원은 "철강 음식료 은행 유통 등 내수경기에 큰 영향을 받는 업종들은 과거에도 원화강세 시기에 상대적으로 상승률이 높았다"고 소개했다. 이 증권사는 원화강세 수혜주 가운데 실적전망이 좋고 주가상승 여력도 큰 종목으로 포스코 대한항공 부산은행 LIG손해보험 LG패션 호텔신라 롯데삼강 모두투어 등을 꼽았다.

실제 10월 들어 22일까지 포스코가 10.4% 상승한 것을 비롯해 동아제약(19.6%) 명문제약(17.1%) 등 제약주,GS건설(19.3%) 삼성엔지니어링(13.9%) 등 건설주,롯데삼강(11.1%) 한세실업(9.2%) 등 음식료와 의류 등 내수 관련주들은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10.9%) 삼성SDI(-10.4%) 현대차(-7.6%) 기아차(-7.8%) 등 IT와 자동차 대표주들은 뚜렷한 조정세에 접어들었다.

원화가 강세라 해서 수출주를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주상철 교보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원화보다 엔화가 달러화에 대해 더 강세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IT 자동차 등 수출주는 일본 업체와 경쟁하기 때문에 글로벌 경기회복으로 수요가 늘어난다면 타격이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오재열 IBK투자증권 이사는 "전통적으로 환율하락기는 국내 증시의 강세기였다"며 "반도체 등 가격상승 효과를 감안하면 수출주의 이익감소는 우려만큼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약달러시대 환헤지형이 해답

해외 펀드는 원화를 달러나 해당국의 화폐로 바꿔 투자하기 때문에 수익률이 환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해외 펀드는 환위험을 회피하는 환헤지형과 환율 변동을 그대로 수익률에 반영하는 환노출형으로 구분된다. 보통 환헤지형은 펀드명에 'H', 환노출형은 'UH'가 붙는다.

펀드평가업계에 따르면 원 · 달러 환율이 연중 고점을 찍고 내려온 지난 6개월간 동일 해외 펀드의 환헤지형(21.10%)과 환노출형(8.45%)의 수익률차는 12.66%포인트에 달했다. 환헤지형의 대부분은 원 · 달러 환율의 변동위험을 제거하는 것인데 지난 6개월간 달러가 약세를 보인 때문이다.

박현철 메리츠증권 펀드애널리스트는 "향후 1~2년은 달러화 약세기조가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여 미국 달러화에 대한 환노출보다는 헤지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금이나 원자재펀드는 환헤지형에 가입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지적이다. 오대정 대우증권 WM리서치팀장은 "금이나 원자재 가격은 달러 가치와 거꾸로 움직이는 게 일반적"이라며 "이들 펀드를 환헤지하지 않을 경우 자칫 투자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환헤지가 불가능하거나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드는 경우는 불가피하게 환노출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이머징마켓펀드의 경우 1차적으로 달러로 바꾸고 또다시 해당국 화폐로 환전하다 보니 환헤지 비용이 과다하게 발생하게 된다. 박 펀드애널리스트는 "이머징마켓의 경제가 발전하게 되면 해당국의 통화도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환노출형이 맞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해영/서정환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