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시인 정현종의 '섬'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 외우는 시이다. 두 행의 짧은 시여서 외우기도 좋고,그 의미의 울림이 크기 때문이다.

본래 섬이란 고립된 땅이지만,독특하게도 이 시인의 섬은 단절된 인간관계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섬,어디 없을까?

지난주 토요일,전철 당산역에서 내려 버스 5714번을 타고 한 정거장을 가니 선유도 앞이었다. 몇 발자국 걷지 않아서,한순간,시공간이 달라졌다. 빽빽한 차들과 매연과 소음이 넘치는 서울의 한 복판에서,배도 타지 않고,호젓하고 정취 가득한 섬 안으로 쑥 들어선 것이었다. 선유도는 양화대교 아래 선유정수장 시설을 활용한 우리나라 최초의 재활용생태공원이었다. 주변으로 한강의 물길이 유유히 흘렀다. 억새풀과 붉은 가을 기운이 밴 나무들과 바람과 소리가 흐르고 있는 이 섬은 '물공원'이란 애칭도 가지고 있었다.

그곳에는 '한강문화축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 그리고 한강문화포럼이 주최하고 대산문화재단이 주관한 이 행사의 주제는 '문학,한강에서 놀다'였다. 말 그대로 문학이 책과 교실을 빠져나와 한강으로 놀러 나왔던 것이다.

'작가 카페''작가와 함께 하는 문학 산책'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지만,무엇보다 '문학청년들의 비상'이라는 행사가 인상 깊었다. 고양예고,안양예고 학생들과 단국대 대진대 명지대 추계예술대 한서대 등 13개 대학 20개 팀이 참가해 시와 소설과 설화에 음악이나 연극 등 짧은 퍼포먼스를 곁들인 낭독경연대회를 벌였던 것이다.

과거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의 문학은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구술 형태로 존재했다. 종이문학의 융성과 함께 구술문학은 점점 사라졌는데,이는 영상의 발달로 종이문학이 위협을 받는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최근 말과 글,글과 영상이라는 이분법의 잣대에 의해 한쪽이 다른 한쪽을 억압하는 형태가 아니라,목소리 종이 영상 등 다양한 표현 매체를 통해 문학을 더 풍성하게 향유하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고,작가들을 필두로 사라져간 목소리를 되살리고자 낭독회 행사가 종종 열리곤 했다.

상아탑의 학생들이 이렇게 광장으로 나온 것은 드문 일이었다. 책 속에 고개를 박고 있던 학생들이 원형극장의 무대에서 활기차게 문학의 목소리를 쏟아내는 것 말이다.

무대를 향해 층층이 앉은 관객들은 기형도,윤동주,황지우,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낭독하는 젊은 목소리와 검은 가면과 춤,낭독한 시를 다시 유창한 랩으로 불러제끼는 젊은이다운 기발한 소통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원형극장은 시 소설 희곡 설화 음악 등 장르간의 결합뿐만 아니라,고등학생과 대학생,낭독자와 관객,가을과 사람,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을 단풍들처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종이문학은 혼자 읽지만,구술문학은 함께 읽었다. 그렇게 섬 선유도는 가을 오후의 쌀쌀한 날씨에도 어둠을 밝히는 발간 등불이 켜질 때까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가 되어 주고 있었다.

행사가 끝나고 선유도 출구 쪽으로 나오는데,노란 은행나무 잎 모양의 광장에는 KBS '낭독의 발견' 행사를 위해 수많은 의자들이 배열되고 있었다. 어둠을 저만치 밀어둔 환한 조명들 아래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청중을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오는 도중에 그곳에서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섬,선유도,그 섬에 다시 가고 싶다.

김다은 <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