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진화] 한류 위기 감지→2년전 日 진출 추진→현금 12억엔 알짜회사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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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 수출서 복합 비즈니스로
키이스트의 도전과 성공
키이스트의 도전과 성공
'한류'의 최대 시장인 일본에서 개봉된 한국영화 편수는 2004년 29편에 달했지만 지난해에는 17편에 불과했다. 가장 많은 티켓 수입을 거둔 작품은 2005년 30억엔을 기록한 '내 머리 속의 지우개'였다. 음악 수출은 2004년 351만달러를 정점으로 해마다 줄고 있다.
이제 단순한 콘텐츠로는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 고정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대장금' 이후 킬러 콘텐츠가 나오지 않는 데다 한류가 문화콘텐츠 부문에 한정돼 있는 게 문제"라며 "한식과 한글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키이스트는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일찌감치 대비책을 마련했다. 배성웅 DA 대표(사진)는 2007년 한국키이스트 대표 시절 한류의 위기를 감지하고 재점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딜로이트로부터 컨설팅을 받았다. 결론은 일본에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일본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일본 법인 BOFi를 세워 대표로 취임했다. 고시례 등 다양한 사업을 모색하던 그는 현지 협력업체인 DA가 보유현금만 12억엔이나 되는 알짜회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인수 기회가 온 것은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친 지난해 12월.주당 100엔이던 DA의 주가가 30엔 수준으로 급락하며 적대적 M&A(인수 · 합병) 위협에 놓였던 것이다.
그는 5억엔을 구해 지분 25%를 인수하겠다고 제안하면서 함께 사업을 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설득했다. DA는 처음에는 한국인과 일해본 적이 없어 거절했지만 결국 승낙했다. 동영상 콘텐츠 제작과 방송 송출 기술 등을 갖고 있으나 킬러 콘텐츠가 없는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욘사마'란 신뢰할 수 있는 '한류 파워'가 그들의 생각을 돌려놨다. 키이스트는 DA를 인수한 후 DA인프라를 바탕으로 한류 사업에 날개를 달게 됐다. 미래는 준비된 자의 것이란 경구가 적중한 사례다.
이제 단순한 콘텐츠로는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 고정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대장금' 이후 킬러 콘텐츠가 나오지 않는 데다 한류가 문화콘텐츠 부문에 한정돼 있는 게 문제"라며 "한식과 한글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키이스트는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일찌감치 대비책을 마련했다. 배성웅 DA 대표(사진)는 2007년 한국키이스트 대표 시절 한류의 위기를 감지하고 재점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딜로이트로부터 컨설팅을 받았다. 결론은 일본에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일본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일본 법인 BOFi를 세워 대표로 취임했다. 고시례 등 다양한 사업을 모색하던 그는 현지 협력업체인 DA가 보유현금만 12억엔이나 되는 알짜회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인수 기회가 온 것은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친 지난해 12월.주당 100엔이던 DA의 주가가 30엔 수준으로 급락하며 적대적 M&A(인수 · 합병) 위협에 놓였던 것이다.
그는 5억엔을 구해 지분 25%를 인수하겠다고 제안하면서 함께 사업을 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설득했다. DA는 처음에는 한국인과 일해본 적이 없어 거절했지만 결국 승낙했다. 동영상 콘텐츠 제작과 방송 송출 기술 등을 갖고 있으나 킬러 콘텐츠가 없는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욘사마'란 신뢰할 수 있는 '한류 파워'가 그들의 생각을 돌려놨다. 키이스트는 DA를 인수한 후 DA인프라를 바탕으로 한류 사업에 날개를 달게 됐다. 미래는 준비된 자의 것이란 경구가 적중한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