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힘들고 외로웠지.그건 연습일 뿐야./넘어지진 않을 거야.나는 문제 없어./짧은 하루에 몇번씩 같은 자리를 맴돌고/ 때론 어려운 시련에 나의 갈 곳을 잃어가고…/ 그렇게 돌아보지마 여기서 끝낼 수는 없잖아.'<황규영 '나는 문제 없어'>

좋아한다는 노래 가사처럼 어떤 시련에도 좌절하지 않고 달려온 국민 마라토너 봉달이 이봉주 선수(39)가 은퇴했다. 1990년 전국체육대회에서 2위로 입상했던 스무살 때보다 빠른 기록으로 새까만 후배들을 제치고 제90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우승, 금메달을 목에 걸고.

20년 동안 마라톤 풀코스 완주만 41회.경기와 연습 거리를 합쳐 지구 네 바퀴를 돌고도 남을 거리를 뛰었다. 영광도 있었지만 좌절과 시련이 더 많았다. 무엇보다 그는 짝발이다. 왼발이 4.4㎜나 길다. 게다가 평발에 가깝다. 보통 사람 같으면 달리기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좋아하던 축구 대신 육상부를 택한 건 순전히 가난 때문이었다. 바지 하나만 있으면 될 것 같아 택한 달리기였지만 그것도 쉽진 않았다. 기껏 입학한 학교에서 육상부가 해체돼 고등학교만 세 곳을 다녔다.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3초 차이로 우승을 놓친 건 두고두고 한으로 남았다.

만 서른살이던 2000년 도쿄마라톤에서 한국 최고기록(2시간7분20초)으로 우승했다. 이후 시드니올림픽에서 넘어지는 고통을 겪었지만 오뚝이처럼 일어서 2001년 보스턴마라톤에서 우승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을 앞두고 눈에 땀이 들어가는 것을 막고자 쌍꺼풀 수술을 했으나 예상과 다른 날씨 등으로 무위에 그쳤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역시 아쉽게 끝났다. 기록 경기에 필수적인 라이벌 없이 10년을 혼자 자신과 승부한 그는 성실과 끈기,우직함의 대명사다.

정상에 올랐다고 취하지도,무너졌다고 쓰러지지도 않은 그의 변은 간단하다. "마라톤은 땀만큼 거두는 정직한 운동이자 반칙 없는 경기다. 달리다 보면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다. 비켜갈 수도 피해갈 수도 없다. 뛰어 넘어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 "

그토록 노력했던 그도 월계관을 써보고 싶은 소망을 이루지 못한 채 달리기를 멈췄다. 뜻같지 않은 인생에 왜 아쉬움이 없으랴.그러나 그가 그동안 이땅 사람들에게 준 희망과 용기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할 만큼 하고도 남았다. 지도자로 거듭나겠다는 그의 앞날에 크나 큰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