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 24일 오전 9시20분,서울 양재동 aT센터 제1전시장 앞에 400여명이 길게 줄을 섰다. ㈜두산이 운영하는 '폴로' 패밀리세일 입장을 기다리는 인파였다. 출시 3년차인 2007년 이월상품을 70~90% 할인 판매하는 행사(24~27일)다. 마포동에서 온 이모씨는 "새벽 5시에 도착해 번호표 50번을 받았는데 가장 먼저 온 사람은 새벽 2시에 왔다더라"고 말했다. 순식간에 줄은 1000여명으로 불어나 건물 밖에까지 늘어섰다. 때아닌 대목(?)에 '야쿠르트 아줌마'도 등장했다.



패밀리세일이란 백화점,아울렛을 거치고도 남은 재고를 소진하기 위해 임직원들에게 50~90% 싸게 파는 행사다. 불황으로 재고가 늘면서 협소한 본사 대신 aT센터,하이브랜드 등 대형 행사장에서 패밀리세일을 여는 브랜드가 많아졌다. 패밀리세일이 너무 알려지면 브랜드 이미지에 좋을 것이 없지만 재고를 안고 가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임직원들이 입장권(1장당 3~4명 입장)을 지인들에게 나눠주면서 '팸셀녀'(패밀리세일만 찾아다니는 실속파 여성)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패밀리세일이 일반화됐다.

기자가 줄을 선 지 2시간이 지나자 김밥 · 커피를 사 나르는 사람들,심지어는 서서 공부하는 학생들까지 눈에 띄었다. 김모씨(잠실동)는 "폴로 세일 때마다 왔었는데 불황이라 그런지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것은 처음"이라며 "2시간 넘게 기다렸으니 무조건 살 것"이라며 투지(?)를 불태웠다. 반면 최모씨(분당)는 "몇 시간씩 기다리고 싶진 않다"며 발길을 돌렸다.

오후 12시30분께 두산 직원들은 "물량을 새로 풀어야 하니 2시부터 재입장하라"며 번호표를 나눠줬다. 기자는 171번을 받았고 430번까지 배포됐다. 입장권 1장당 2~3명이 동행한 것을 감안하면 이때까지 못 들어간 사람이 1000명에 달한 셈이다.

5시간을 기다린 끝에 입장한 행사장은 흡사 전쟁터였다. 고객들은 입구에서 나눠준 50ℓ 크기의 대형 비닐쇼핑백을 들고 뛰었다. 각자 매대에서 잡히는 대로 옷을 한아름 집어들고 구석에 가 사이즈,디자인을 체크하고 입어보기 시작했다. 기자가 말을 걸자 "지금 바쁘다"며 대꾸도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패밀리세일에 처음 왔다는 김모씨는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생각보다 (살 만한) 물건은 별로 없다"며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계산대가 30개가 넘는 데도 계산까지 40분이 걸렸다. 직원들이 옷을 새로 풀어놓자 계산대에 줄을 섰던 사람들이 다시 매장으로 뛰어가 옷을 집어오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양손에 가득 비닐쇼핑백을 들고 나가는 박모씨는 "14벌을 20만원에 샀으니 기다린 보람이 있다"며 뿌듯해 했다. 이날 주최 측은 신종플루에 대비,마스크를 3만개나 준비했고 직원들은 여기저기 널린 옷을 정리하느라 진땀을 뺐다. 기자가 행사장을 빠져나온 시간은 오후 4시20분.밖에는 여전히 100여명이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유현 기자 y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