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4개 정유사들이 정제마진 악화로 인한 실적부진에 고전하고 있다. 지난 3분기 정유업계 실적은 '어닝쇼크'수준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작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감소한 석유제품 수요가 아직 살아나지 않고 있고,인도 베트남의 정유공장 신 · 증설로 공급이 넘쳐나면서 가격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동안 실적을 뒷받침하던 화학사업 부문도 제품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정유사의 속앓이도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불황 골 깊어져

정유사 중 가장 먼저 3분기 실적을 발표한 에쓰오일은 704억8000만원의 영업손실을 기록,작년 4분기 이후 3분기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매출액은 작년 동기 대비 32.8% 감소한 4조7117억원,당기순이익은 55.5% 줄어든 667억원으로 집계됐다.

실적 발표를 앞둔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도 에쓰오일과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정제사업 부문의 부진을 상쇄해 주던 화학사업 부문도 지난달 이후 시황이 악화되면서 3분기 실적이 시장예상보다 더 저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원재료인 원유는 달러약세로 인한 투기 수요로 가격이 급등하고 있지만 경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석유제품은 원유 가격을 따라잡지 못해 수익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제마진 악화가 실적부진 원인

국내 정유사들의 실적이 악화되는 주요 원인은 주력 부문인 석유정제사업이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유사들은 지난 상반기 석유정제사업에서 모두 적자를 냈다. 싱가포르 현물 시장 기준으로 휘발유 단순(1차) 정제마진은 작년 4월 배럴당 -1.42달러에서 지난 달에는 -2.16달러를 기록했다. 원유 1배럴을 정제해 석유제품을 만들 때마다 2.16달러의 손해를 본다는 얘기다. 그동안 단순 정제 손실을 상쇄하던 고도화설비의 2차(값싼 벙커C유를 휘발유 등 경질유로 바꾸는 것) 정제마진도 지난 3월 이후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석유사업 시황이 악화되자 정유사들은 정제시설 투자 계획도 재검토하고 있다. 향후 석유사업 부문의 유일한 수익 창출 수단으로 꼽히는 고도화설비 투자까지 미루는 상황이다. SK에너지는 인천공장에 짓기로 한 1조5000억원 규모의 고도화설비 완공 시기를 당초 2011년에서 2016년으로 5년 연기하기로 했다. GS칼텍스는 작년 12월 총 3조원 규모의 여수공장 제3고도화설비 중 일부인 4500억원의 촉매 방식 고도화설비(FCC) 투자 일정을 내년에서 2012년으로 2년 늦췄다.

◆공급과잉은 여전히 부담

정유업계의 4분기 실적 전망과 관련,지난 3분기보다 나아질 것이란 의견이 우세한 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유부문에선 경기회복에 따른 경유 수요 증대와 계절적 요인에 따른 난방유 수요 증가로 아시아 지역 내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내 시장의 공급과잉은 국내 정유사들에 여전히 부담이다. 인도 최대 석유회사인 릴라이언스는 상반기 대규모 정유공장 증설을 끝내고 해외로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릴라이언스의 생산량은 하루 66만배럴.국내 에쓰오일(58만배럴)과 맞먹는 생산 물량이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