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부터 러시아 주재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 과장의 임무는 디지털카메라 판매.러시아 경제권 전역의 영업을 홀로 책임지고 있다. 이 과장은 "처음 왔을 때 삼성 제품의 시장점유율이 3%대밖에 안 됐지만 지금은 30%까지 점유율을 늘렸다"며 "내년엔 100만대 이상 판매에 도전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혼자서 그 많은 물량을 팔 수 있느냐"고 놀라움을 표시하자 그는 "저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혼자서 1000만대가 넘는 휴대폰을 파는 선배님도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지난해 1250만대의 휴대폰을 팔아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받은 같은 법인의 김윤수 차장을 지칭하는 얘기였다.
◆10년반 만에 매출 15배 성장
내년에 100만대 판매를 노리고 있는 주재원은 또 있었다. 노트북PC 판매를 맡고 있는 최병두 차장(43).내년 판매목표치를 올해(45만대)보다 두 배 이상 늘린 100만대로 잡고 있다고 했다. 다양한 신제품과 마케팅 역량을 앞세워 현지 3위에 머물고 있는 시장점유율을 단숨에 1위로 끌어올리겠다는 것."회식자리에서 보드카를 돌릴 때마다 '100만대 달성'을 구호로 외칩니다. 스트레스가 적지 않지만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
광활한 CIS(독립국가연합 · 옛 소련 지역) 총괄 조직에서 이처럼 홀로 '밀리언셀러(million seller)'를 자임하고 있는 '일당백'의 주재원들은 모두 60명이다. 이들이 지난해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 옛 소련 지역을 누비며 거둬들인 매출은 59억달러.10년 전인 1998년의 4억달러에 비해 15배 가까이 불어났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 본사 매출은 5배 정도 늘어났다. 시장여건이 좋았던 측면도 있지만,TV 휴대폰 등을 중심으로 삼성의 제품력이 획기적으로 좋아졌던 2003년 이후 매년 10억달러씩 폭발적으로 매출이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특히 본사와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구축,시장환경 변화에 따라 러시아 소비자들의 성향에 맞는 신제품들을 적기에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2007년 10월 처음으로 출시된 '2 SIM(가입자 인증모듈) 폰'이 대표적이다.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반재일 차장의 얘기."당시 시장조사를 해봤더니 고객들의 절반 이상이 2개 이상의 SIM 카드를 구매할 의향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대개 러시아 사람들은 업무용과 개인용 전화번호를 달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더군요. 게다가 넓은 대륙의 특성상 같은 국가 내에서도 통신회사 간 요금 격차가 커 SIM 카드를 여러 개 갖고 있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
◆전광석화 같은 의사결정
러시아 법인으로부터 이런 조사 내용을 접수한 본사는 즉각 개발에 착수,불과 몇 달 만에 신제품을 실어서 보냈다. 이 제품은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예상대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75만대에 이어 올해는 110만대까지 팔려나갈 전망이다. 현지 유통회사들이 감탄해 마지않는 삼성식 스피드 경영의 개가다.
모스크바 최대의 전자제품 할인매장인 가르부시카의 매니저인 알렉세이 아니키아씨는 "가끔 일본 전자회사 마케팅 관계자들이 찾아와 어떤 경로로 신제품이 나오는지를 묻곤 한다"며 "과거 일본 회사에서도 일한 적이 있지만 삼성처럼 빠른 의사결정은 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디지털카메라,LCD TV,디지털비디오,캠코더,청소기,모니터,프린터 복합기 등 7개 품목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내년엔 휴대폰 노트북 전자레인지 등 5개 품목을 추가로 1위에 올려놓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노키아와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휴대폰 분야의 시장점유율을 40%대까지 끌어올리고 50%를 넘나들며 안정적 1위를 유지하고 있는 TV 시장의 패권은 더욱 공고히 한다는 전략이다. 마케팅 담당 임선홍 상무(51)는 "10년 전에 겨우 2.5% 수준이었던 TV 시장 점유율이 이만큼 높아진 것은 시장의 변화를 제조현장에 빠르게 전달할 수 있었던 경영시스템 덕분"이라며 "90% 이상의 압도적 점유율을 자랑하는 LED TV를 앞세워 내년에도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모스크바=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