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2세 소설가 재니스 Y.K.리(36)에겐 '한국인 알파걸'의 피가 흐른다. 무명 작가의 데뷔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출판 후 5주 동안 미국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린 이 소설은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10만부 가량 팔려나갔다.
《피아노 교사》 한국어판 출간을 맞아 방한한 그는 26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어를 간간이 섞어가며 "항상 자신을 소개할 때마다 한국인이라는 걸 강조한다"면서 "나의 모국인 한국에서 소설이 출간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홍콩에서 사업을 했던 아버지(이내건 전 홍콩한인상공회장)를 둔 그는 1973년 홍콩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5세에 미국으로 가 세인트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잡지 '엘르'에서 에디터로 일하다 헌터 대학 대학원에서 재미 소설가 이창래 교수에게 소설 창작을 수학했다. 《피아노 교사》와 함께 태어난 것이나 진배없는 쌍둥이 등 네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는 하버드대 재학 시절 만나 24세에 결혼한 남편 조셉 배(사모펀드 KKR 아시아 대표)의 사업 때문에 현재 홍콩에 머물고 있다. 생활 반경이 홍콩과 미국이었지만 부모의 영향으로 한국을 자주 찾았다. 그는 "한국인의 뿌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1년에 한달은 한국에 머물렀다"고 설명했다. 그는 계속 한국 국적을 유지하다가 2005년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한국, 미국, 홍콩 어느 곳에 가든 집처럼 편안하다"고 표현하는 그가 쓴 《피아노 교사》는 얼핏 보면 저자가 한국계라고 짐작하기 힘들어 보인다. 소설은 홍콩을 무대로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40년대 초반과 종전은 됐지만 전쟁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1950년대를 넘나들며 세 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보여준다. 1941년 홍콩으로 온 영국인 윌 트루스데일은 중국인 아버지와 포르투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트루디 리앙과 격렬한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홍콩이 일본의 수중에 들어가면서 윌은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 감금되고,트루디는 생존을 위해 악전고투하다 일본군 실세에게 이용당하게 된다. 트루디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윌 앞에 10년 후 중국 부유층 집안 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영국 여성 클레어가 나타나면서 그동안 감춰져 왔던 비밀이 드러난다는 내용이다. 작가는 "사실 《피아노 교사》의 성공은 지금도 꿈같은 일"이라면서 "이국적인 배경에서 진행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 관심을 모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이나 재미 한국인에 대한 단편소설을 여럿 썼으나 아직 장편소설로 발전되지 못한 상태"라며 "차기작은 한국에 대해 쓰고 싶지만,그러면 큰 기대에 부응 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황석영씨의 《오래된 정원》, 조경란씨의 《혀》,신경숙씨의 《엄마를 부탁해》 등을 접했다는 그는 "모국에 대해 많이 안다고 하긴 힘들지만, 한국 역사에 대해 읽기 시작하고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전했다. 그는 "향후 아이들이 크면 나의 부모가 그랬듯 한국에 보낼 생각이며, 남편이 한국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니 한국에 머무를 기회가 많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