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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점프를 소재로 한 영화 '국가대표'의 감동 비결은 무엇일까. 영화를 본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실감 넘치는 영상을 그 중 하나로 손꼽을 것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시속 100㎞를 넘는 속도로 점프대를 활강하는 시합 장면. 하늘을 날아오르는 스키선수와 창공에서 내려다보는 순백의 설경,환호하는 관중들의 뜨거운 열기가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이런 볼거리를 만드는 데 한 몫한 것이 바로 컴퓨터그래픽(CG)이다. 실제 스키점프 대회인 독일의 '오버스트도르프' 스키점프 월드컵대회 영상에 영화배우의 모습을 합성한 것이다. 슈퍼컴퓨터와 CG를 이용해 제작기간을 단축하고 사실감을 극대화했다는 후문이다.

관객의 까다로운 눈을 속이며 '사실감(리얼리티)'에 도전한 이 장면은 영화 특수효과 전문회사 'EON'의 특수효과 및 컴퓨터그래픽 효과기술이 접목돼 완성됐다.

디자인이나 영화 제작,CF에 쓰이던 CG 기술은 이제 오히려 과학의 지평을 넓히는 데 활용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제 숫자로 된 자료 대신 실제와 거의 같은 상황을 CG를 통해 미리 경험하는 것이다. 보잉과 에어버스 같은 항공기 제작사 설계자들만 해도 초음속 비행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할지 모를 충격파와 기체 결함을 찾는 데 CG 실험을 활용하고 있다.

CG기술이 '창조적 응용'을 통해 다른 산업에 적용되면서 인간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게 된 것이다.

기업세계에서도 창조적 응용은 혁신의 시작이다. 기업도 경쟁사나 성공한 다른 기업의 장점을 본받기 위해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롤 모델이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성공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주기 때문이다. 기업에 성공모델이 있다는 것은 목적지에 빨리 도착할 수 있는 지름길을 발견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를 반영하는 것이 바로 '벤치마킹'이다. 벤치마킹은 '잘나가는' 기업을 연구해 배울 점을 본받아 사업에 활용하는 것을 뜻한다. 이 행위를 모방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창조는 모방에서 비롯되는 때가 많다. 한발 앞선 모방으로 우위를 지켜온 초일류기업들의 사례는 적지 않다.

기술과 제품 개발력이 뛰어난 소니는 '일본주식회사의 연구소'로 불린다. 소니도 처음에는 기술 모방에서 출발했다. 소니의 세계적인 첫 작품은 주머니에 들어가는 소형 '포켓' 라디오. 도쿄통신공업(소니의 전신)은 1948년 벨연구소가 만든 트랜지스터에 주목하고 1953년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진공관 대체부품으로 관심을 가진 것이다. 특허권만을 사들인 도쿄통신공업은 문헌에만 의존해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탄생시켰다. 트랜지스터 기술을 창조적으로 모방,신제품을 탄생시킨 셈이다.

일본 '니콘'도 유사한 탄생 신화를 갖고 있다. 독일의 카메라 기술을 모방했다는 점에서다. '일본광학'(니콘의 전신)은 창업 직후 독일 기술자들을 일본으로 데려왔다. 기존 월급의 2~3배를 주는 파격적 조건이었다. 이때 카피한 독일 카메라 기술이 오늘날 니콘의 밑거름이 됐다.

물론 창조적 모방에도 전제조건은 있다. 제품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부단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일본 샤프(SHARP)의 전신인 하야카와 금속공업연구소는 지난 25년 광석라디오의 분석 연구 끝에 소형 광석라디오를 개발했다. 당시 광석라디오 회사들은 밀려드는 수요에만 만족하고 향상된 제품 개발에는 무관심한 반면 하야카와는 진공식 라디오인 샤프다임(SHARPDIGM)을 내놓았다. 이후 하야카와만 생존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혁신적 발상의 전환을 통해 신기술을 개발해내지 않으면 세계 일류가 될 수 없고 생존도 불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다. '혁신을 바탕으로 창조적 모방을 리드하는 기업' 일류기업의 명성은 바로 여기서 얻어지는 것이다.

신재섭 기자 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