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보이지 않는 손이 휘저어 놓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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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 콘로이 '사우스 브로드' 출간
'운명이란 장난감 총을 쏘듯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삶을 만신창이로 만들고,바로 그날을 영원히 잊지 못할 날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는 어떤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목격한 산 증인이니까.'
미국 소설가 팻 콘로이(64)의 《사우스 브로드》(생각의나무,안진환 · 황혜숙 옮김)는 운명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휘저어놓은 삶을 유려하고 서정적으로 그려낸 장편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 레오는 모두에게 사랑받고 주목받던 자랑스러운 형이 아무런 이유 없이 손목을 칼로 그어 자살한 광경을 10대 시절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이후 본의아니게 마약 사건에 휘말리고 정신병원에 들락거린다.
레오의 상처는 '잃어버린 일등 아들 대신에 얻은 이등 트로피처럼' 자신을 대하는 어머니 때문에 더 깊어진다. 레오의 친구들도 비슷하다. 아름다운 쌍둥이 남매 시바와 트레버는 알코올 중독자 어머니에다 친자식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아버지 때문에 고통받는다. 오빠 나일즈와 고아로 힘들게 자라온 스탈라는 타인의 친절과 진심을 믿지 못하고 과도한 공격성을 보인다. 공립 고등학교에 처음으로 흑인 풋볼 감독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둔 아이크는 이따금 인종차별에 직면한다.
성장한 후 이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자리를 잡는 듯 보인다. 레오는 제법 이름난 언론 칼럼니스트가 되어 스탈라를 아내로 맞고, 아이크는 찰스턴 최초의 흑인 경찰서장이 된다. 시바는 여배우가 되고,트레버는 음악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실패한 십대 시절을 보낸 것이 범죄는 아니지만 가혹한 시련이자 비밀이 되기도 한다. '
이들의 과거는 집요할 정도로 뒤를 따라다닌다. 모두가 고통을 이겨내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누군가는 그것 때문에 삶이 산산조각난다. 어떤 인물은 살아남고,깨달음을 얻는다. 콘로이는 1960년대 미국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찰스턴에서 인연을 맺은 후 20년 넘게 흘러온 이들의 인생과 관계를 유장하면서도 흡입력 있게 그려낸다. 레오의 형이 죽음을 택한 이유가 밝혀지는 등 추리소설과 같은 반전도 있다.
콘로이는 아무리 슬픔의 짐이 크다 해도 결국에는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식으로 간편하게 결론을 내리진 않는다. 다만 레오에게 '유쾌한 신이 만든 수공품'과 같은 운명의 변화를 허락해 희망을 남긴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미국 소설가 팻 콘로이(64)의 《사우스 브로드》(생각의나무,안진환 · 황혜숙 옮김)는 운명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휘저어놓은 삶을 유려하고 서정적으로 그려낸 장편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 레오는 모두에게 사랑받고 주목받던 자랑스러운 형이 아무런 이유 없이 손목을 칼로 그어 자살한 광경을 10대 시절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이후 본의아니게 마약 사건에 휘말리고 정신병원에 들락거린다.
레오의 상처는 '잃어버린 일등 아들 대신에 얻은 이등 트로피처럼' 자신을 대하는 어머니 때문에 더 깊어진다. 레오의 친구들도 비슷하다. 아름다운 쌍둥이 남매 시바와 트레버는 알코올 중독자 어머니에다 친자식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아버지 때문에 고통받는다. 오빠 나일즈와 고아로 힘들게 자라온 스탈라는 타인의 친절과 진심을 믿지 못하고 과도한 공격성을 보인다. 공립 고등학교에 처음으로 흑인 풋볼 감독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둔 아이크는 이따금 인종차별에 직면한다.
성장한 후 이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자리를 잡는 듯 보인다. 레오는 제법 이름난 언론 칼럼니스트가 되어 스탈라를 아내로 맞고, 아이크는 찰스턴 최초의 흑인 경찰서장이 된다. 시바는 여배우가 되고,트레버는 음악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실패한 십대 시절을 보낸 것이 범죄는 아니지만 가혹한 시련이자 비밀이 되기도 한다. '
이들의 과거는 집요할 정도로 뒤를 따라다닌다. 모두가 고통을 이겨내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누군가는 그것 때문에 삶이 산산조각난다. 어떤 인물은 살아남고,깨달음을 얻는다. 콘로이는 1960년대 미국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찰스턴에서 인연을 맺은 후 20년 넘게 흘러온 이들의 인생과 관계를 유장하면서도 흡입력 있게 그려낸다. 레오의 형이 죽음을 택한 이유가 밝혀지는 등 추리소설과 같은 반전도 있다.
콘로이는 아무리 슬픔의 짐이 크다 해도 결국에는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식으로 간편하게 결론을 내리진 않는다. 다만 레오에게 '유쾌한 신이 만든 수공품'과 같은 운명의 변화를 허락해 희망을 남긴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