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는 첨단 디자인, 패션의 원형(原形)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세대들이 아프리카인이 즐겨 쓰는 장신구, 의상, 문신 등에 관심을 갖는 걸 보면 쉽게 이해될 겁니다. "

영국 정통 브랜드 '닥스(DAKS)' 탄생 115주년을 기념해 서울 신사동 LG패션 플래그십스토어에서 작품전(30일~11월4일)을 갖는 도예가 신상호씨(62)는 "아프리카의 원시 자연은 패션과 현대미술의 변함없는 자양분"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홍익대학교 미대학장과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장을 지낸 신씨는 흙이라는 소재를 통해 새로운 미학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해 온 작가. 흙하면 떠오르는 게 도예지만, 그는 회화, 건축, 디자인, 패션으로까지 보폭을 넓혀왔다. 신씨는 이번 전시에서 흙을 소재로 한 평면 회화를 비롯해 조각, 의상, 조형물 등 60여점을 출품했다. 드넓은 대초원과 약육강식의 생태계가 손에 잡힐듯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특정한 틀에 구속 받지 않고 새로운 예술영역으로 도전하는 작가의 미학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자리다.

신씨의 이번 전시회는 패션과 미술의 이종교배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췄다. 아프리카의 신화, 환상, 동화로부터 추출해낸 스토리를 작품에 다양하게 변주했기 때문이다.

"패션은 기성 브랜드에 새로운 영감과 가치를 부여하는 창조적인 영역입니다. 실제 패션은 인간의 피부를 보호하는 원초적인 임무를 탈피해 문화 장르의 중요한 리더로 부상했고요. 패션과 결합된 제 작품이 추구하는 것도 '제3의 길'입니다. "

그는 1990년 이후 미술의 다양한 유전자를 찾기 위해 아프리카를 작품의 테마로 잡았다. 생명과 영감의 대지인 아프리카에 대한 생각을 작품으로 제작했다.

"1983년 아프리카 콩고를 시작으로 10여년 동안 원시 자연을 찾아 아프리카를 헤맸어요. 그동안 케이프 타운, 나이로비, 요하네스버그 등 아프리카 전역을 20여 차례 방문해 인간의 원초적인 꿈을 작품으로 형상화해 왔습니다. "

그동안 신씨는 '아프리카의 꿈(Dream of Africa)' 시리즈를 통해 '흙'이라는 재료의 가능성을 실험해 왔다. 도예뿐만 아니라 채색된 색상을 여러 차례 불길로 다듬어 제작한 '파이어드 패인팅(불 그림)'을 통해 회화 수준으로까지 끌어들였다는 평을 얻었다.

신씨의 요즘 작품의 주제는 '랩핑(Wrapping · 포장)이다. 전통 조각보에서 힌트를 얻은 그는 아프리카의 원시성을 패션과 연결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흙은 도예로만 표현할 수 있다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난다면 그림,패션,건축,조각,조형물 등 다양한 장르로 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늘 새로운 것을 탐닉하는 젊은 세대에게 흙이 패션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합니다. "(02)3441-8106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