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비움과 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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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랜만에 찾아본 과천의 가을은 눈부셨다. 이 도시의 아름다움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수많은 나무가 한껏 빛깔의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마침 저녁 무렵이었고 석양 아래의 단풍잎은 현란한 빛의 스펙트럼을 연출하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기 위해 이렇게 눈부신 아름다움을 인간에게 선사하는 것일까. 이런 풍경 앞에서 나는 기꺼이 유신론자가 되고 만다.
가을 단풍은 나무 나름대로의 생존 전략이련만 그 아름다움 속에서 나는 신의 존재를 느낀다. 그리고 삶에 대해 깊은 사색에 빠진다. 언제고 가을은 사람의 정신을 일깨우는 매력이 있다. 올해도 여느해처럼 틈틈이 독서를 해 왔지만 그 중 금년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두 사람에 관한 책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다윈 탄생 200주년을 계기로 읽은 '다윈의 식탁'에서는 '진화'가 새롭게 적응하는 자를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 '창조'의 과정이라는 자연 법칙을 새삼 이해하게 되었고,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계기로 읽은 '안중근 전쟁 끝나지 않았다'는 안 의사의 공판 기록을 통해 민족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한 불멸의 애국심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나름대로 금년은 내게 뜻깊은 한 해였다.
그러나 내게 가을은 어려운 질문이며 아직도 난 가을 앞에 부끄럽다. 지난 여름,나보다 일찍 과천을 떠나 새로운 분야의 모험을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저간의 살아온 얘기 끝에 친구는 최근 '육도삼략'에 심취해 있다며 정치인이 아닌 경영인의 처세를 위해서도 필독을 권장했다.
'육도삼략'은 강태공 여상이 집필했다는 치도와 병법의 책이지만 80세에 주 문왕을 만나 인생 후반기에 불꽃 같은 삶을 산 그의 족적을 음미해볼 만하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준비하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했다. 뒤로 미룰 수 있는 내일은 없다고.그 친구에게 인생의 가을은 여전히 비움이 아닌 채움인 것처럼 보였다. 허나,나는 이제는 내면을 비워가라 한 또 다른 고향 선배도 생각이 난다.
법정 스님은 행복의 비결은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스러우냐에 달려 있다 했고,'채근담'에서는 바람은 대나무 숲에 소리를 남기지 않고 기러기는 연못에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 했음을 선배는 내게 가르쳐 주었다. 소유하기보다는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을 반기며 새로운 손님을 위해 비워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친구의 모습도 아직은 보기 좋은데,평정심을 가지고 세상을 관조하며 채움이 아닌 비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선배의 모습 또한 좋아 보이니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가을의 아름다운 변화를 통해 신은 우리에게 무슨 암시를 주려는 듯하건만….
심윤수 철강협회 부회장 yoonsoo.sim@ekosa.or.kr
가을 단풍은 나무 나름대로의 생존 전략이련만 그 아름다움 속에서 나는 신의 존재를 느낀다. 그리고 삶에 대해 깊은 사색에 빠진다. 언제고 가을은 사람의 정신을 일깨우는 매력이 있다. 올해도 여느해처럼 틈틈이 독서를 해 왔지만 그 중 금년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두 사람에 관한 책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다윈 탄생 200주년을 계기로 읽은 '다윈의 식탁'에서는 '진화'가 새롭게 적응하는 자를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 '창조'의 과정이라는 자연 법칙을 새삼 이해하게 되었고,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계기로 읽은 '안중근 전쟁 끝나지 않았다'는 안 의사의 공판 기록을 통해 민족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한 불멸의 애국심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나름대로 금년은 내게 뜻깊은 한 해였다.
그러나 내게 가을은 어려운 질문이며 아직도 난 가을 앞에 부끄럽다. 지난 여름,나보다 일찍 과천을 떠나 새로운 분야의 모험을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저간의 살아온 얘기 끝에 친구는 최근 '육도삼략'에 심취해 있다며 정치인이 아닌 경영인의 처세를 위해서도 필독을 권장했다.
'육도삼략'은 강태공 여상이 집필했다는 치도와 병법의 책이지만 80세에 주 문왕을 만나 인생 후반기에 불꽃 같은 삶을 산 그의 족적을 음미해볼 만하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준비하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했다. 뒤로 미룰 수 있는 내일은 없다고.그 친구에게 인생의 가을은 여전히 비움이 아닌 채움인 것처럼 보였다. 허나,나는 이제는 내면을 비워가라 한 또 다른 고향 선배도 생각이 난다.
법정 스님은 행복의 비결은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스러우냐에 달려 있다 했고,'채근담'에서는 바람은 대나무 숲에 소리를 남기지 않고 기러기는 연못에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 했음을 선배는 내게 가르쳐 주었다. 소유하기보다는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을 반기며 새로운 손님을 위해 비워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친구의 모습도 아직은 보기 좋은데,평정심을 가지고 세상을 관조하며 채움이 아닌 비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선배의 모습 또한 좋아 보이니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가을의 아름다운 변화를 통해 신은 우리에게 무슨 암시를 주려는 듯하건만….
심윤수 철강협회 부회장 yoonsoo.sim@ekos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