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

달러 가치가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지난 3월 이후 엔화 대비 달러화 환율은 11%, 유로화 대비는 16% 각각 하락했다.브라질 헤알화에 대해선 30%나 가치가 낮아졌다.

달러 약세는 금융 위기가 끝났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지난 해 금융위기가 터지자 투자자들은 그들의 자산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물색했었다.미 국채를 비롯 다른 달러화 표시 자산들이 여기에 가장 부합하는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전세계 금융 시장이 회복 기미를 보이면서 투자자들은 점차 자신의 자금을 미국의 안전자산에서 빼내 이머징마켓 등 고수익 투자처에 집어넣고 있다.

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이자율이 “오랫동안” 낮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천명한 상태다.이를 노리고 미국에서 아주 낮은 이자율로 돈을 빌려 호주나 브라질 같이 이자율이 높은 다른 나라에 투자하는 이른바 ‘달러 캐리 트레이드’가 활성화됐다.

약달러는 장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매년 수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막대한 미국의 재정적자 때문이다.단기적으로 달러화 가치는 등락을 거듭할 것이다.하지만 재정적자로 인해 달러 공급이 크게 늘면서 달러화 가치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미국 정부가 재정적자를 억제한다는 어려운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달러화가 얼마나 떨어졌는 지 측정할 수 있는 정확한 수단은 없지만 대강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다.국제결제은행(BIS)은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배제한 각국 통화 가치 평가 지표를 발표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현재 달러화 가치는 10년 간 평균치 보다 10% 정도 낮은 수준이다.구매력평가지수(PPP) 중 하나인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의 “빅맥 지수”도 유용한 기준이다.지난 7월 현재 빅맥 가격은 각각 미국 3.57달러, 스위스 5.98달러, 중국 1.83달러였다.달러가 스위스 프랑에 비해 과소 평가 됐지만 중국 위안화에 비해서는 과대 평가 돼있다는 얘기다.

지금 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대부분의 국가들은 자국 통화의 약세를 반긴다.수출을 늘리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미국의 경우 수출이 10억달러 증가하면 2만5000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긴다고 알려져있다.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여러 국가들이 곤경에 처해있다.브라질은 헤알화 가치 급등으로 수출과 고용이 타격을 입지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브라질 정부는 지난달 19일 단기적 외국 자금 유입을 막기 위해 외국인의 주식 및 채권 매입시 별도의 거래세를 부활시키겠다고 발표했다.몇몇 국가들은 외환 시장에 대한 노골적인 개입이 힘들기 때문에 대신 개입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뱉고 있다.캐나다 중앙은행은 최근 캐나다 달러 가치를 낮추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유럽중앙은행(ECB)도 외환 시장에 대해 으름장을 놓고 있다.물론 네덜란드 처럼 1.50유로 정도의 환율에 적응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시장의 판결을 존중하는 나라들도 있긴 하다.

문제는 중국 위안화다.중국은 달러의 지위를 흔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중국은 자기네들의 경제력에 걸맞게 위안이 달러, 유로, 엔, 파운드에 뒤이은 국제 통화가 되길 원한다.

하지만 중국은 그게 걸맞는 책임있는 행동을 하고 있지 않다.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달러에 연동(페그)돼 있는 위안이 심하게 저평가돼 있다는 데 동의한다.미국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위안화 가치가 실제보다 15~20% 정도는 평가절하 돼있다고 지적하고 있다.심지어 자유변동환율제를 가정했을 때 위안화 환율은 현재 환율보다 40~50% 정도 뛰어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마저 있다.

최근 달러 가치의 하락은 오히려 중국의 수출에 도움을 주고 있다.위안이 달러에 인위적으로 묶여있기 때문이다.한국과 일본 같은 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은 자국 통화가 평가 절상되면서 중국에 대한 수출 경쟁력을 잃고 있다.유로존 국가들도 인위적으로 저평가된 위안 때문에 곤경에 처해있다.가뜩이나 달러화 약세로 부담을 지고 있는 이들 국가들의 주름살이 위안화 때문에 더 깊어지고 있는 셈이다.

위안화를 국제 무역에 쓰거나 준비통화로 진지하게 고려하려는 나라는 당분간 없을 것이다.위안화가 국제 통화가 되기 위해선 국제 시장에서 위안화 공급이 늘어야하는 데 중국이 계속 주요 흑자국으로 남아있는 한 불가능하다. 위안화는 태환성이 약하다.또 중국의 경제 제도와 법률 운용에 대해 외국인들은 신뢰하고 있지 않다.

달러가 반드시 과소 혹은 과대 평가돼 있지는 않다.환율은 언제나 시장에서 결정된다.최근 달러화의 평가 절하는 이전의 달러화 표시 자산 매입 흐름을 뒤집고 있다.금융위기 이전의 지위로 달러를 되돌리고 있는 셈이다.그것은 세계경제를 투자자들이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신호이지 달러화에 대한 공포의 반영이 아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달러화 공급의 급증은 달러화 가치가 심대한 수준으로 하락할 것임을 의미한다.심지어 달러당 0.5유로나 50엔의 환율도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정리=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