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장평순 회장 "상품이 B급이면 내 인격도 B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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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 장평순 교원그룹 회장
"배추장사로 시작해 빨간펜까지 '영업의 달인'
"배추장사로 시작해 빨간펜까지 '영업의 달인'
장평순 교원그룹 회장(58)은 지난 7월께 톡톡히 유명세를 치렀다. 그룹 계열사들이 비상장사인 까닭에 회사도,장 회장 본인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 최고 부자 중 한 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한 경제주간지가 교육과 생활가전을 양대 축으로 하는 교원그룹의 자산가치를 환산해본 결과 장 회장의 재산(1조1384억원) 순위는 8위였다.
"저도 몰랐는데 친구가 전화해줘서 알았어요. 평생 주식이나 재산에는 신경쓰지 않고 살았는데…."
장 회장의 말씨는 무척 덤덤했다. 돈을 모은 비결을 묻자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죽어라고 일했다. 물론 운도 따랐지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배추장사로 모은 종자돈 10억원
1951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장 회장의 유년시절은 극빈과 결핍이라는 두 단어가 지배했다. 부모가 고향을 떠나 인천에서 행상 등 날품팔이를 했던 탓에 다섯 살 때까지 외가에 맡겨져 자랐다. 영양실조에 걸려 병원에서 링거도 여러 번 맞았다. 어릴 적 가난은 청년시절까지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대학을 졸업한 뒤 행정고시를 준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장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청년 장평순은 배추장사를 시작했다. 1980년도 초였다. 가게를 얻을 돈이 없어 4t트럭에 배추 무 등을 싣고 다니며 주택가나 아파트 단지의 공터에 내다놓고 팔았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처럼 장 회장은 철저하게 '품질'을 따졌다. 전국의 산지를 다 둘러보고 가장 좋은 배추들만 골라서 실었다. 한번은 한 차 가득 실은 배추가 겉은 멀쩡한데 속이 썩은 것을 발견하고 손님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전액 환불을 해줬다. 그 배추들은 모두 쓰레기장으로 직행했다. 아무리 떠돌이 장사꾼이라지만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장 회장은 그렇게 거짓말처럼 10억원을 모았다.
1985년 현재 교원의 모태가 되는 학습지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도 이때 마련한 종자돈 덕분이었다. 서울 인사동에 작은 사무실을 빌려 직원 3명과 함께 밤을 새워 학습지를 만들었다. 큰 돈 들지 않고,매달 현금 장사를 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 시작한 사업은 과외금지 조치 등으로 학습지 '붐'이 일면서 나날이 뻗어나갔다. 2001년 시장이 정점에 달했을 때 교원의 학습지 회원은 50만명에 달했다. 장 회장은 구몬학습 · 빨간펜을 창간하며 교원을 학습지 시장의 강자로 키웠고,2002년에는 교원L&C를 설립해 정수기 · 비데 등 생활가전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
사업 초창기부터 영업맨으로 잔뼈가 굵은 장 회장이 항상 강조하는 것은 열정이다. "영업 잘하는 사람의 얼굴은 열기가 느껴지고,일에 대한 집중도가 남다르다"는 게 지론.장 회장은 "창업 후 한마디로 일에 미쳐 있었다"고 회상했다. "귀가시간이 매일 새벽 2~3시였어요. 애들을 낳을 때 처음 보고,두 번째는 기어다닐 때 봤어요. "
장 회장은 "상품이 B급이면 고객에 대한 나의 인격도 B급이 된다"고 강조한다. 전집류 시장에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주니어 라이브러리'는 7년이란 제작기간 중 100억원을 투입해 탄생했다. 장 회장은 "1등 못할 상품은 아예 만들지 말라"며 책의 글귀,색상 하나까지 어린이들의 정서에 맞는 작품을 만드느라 공을 들였다.
교원은 전국 각지에 5성호텔급 연수원 시설을 갖추고 있다. 연수원 시설을 이용해본 직원들은 교원의 최고 상품으로 주저없이 '연수원'을 꼽는다. 장 회장은 "그룹 규모에 걸맞지 않게 일개 연수원에 많은 돈을 쏟아붓는다"는 시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국에 4개 연수원을 짓고 호텔을 포함한 5개 휴양시설까지 확보했다. 이들 시설은 3만여명에 달하는 교원 영업조직을 재교육하는 한편 조직원들의 로열티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외부에서 보면 교원은 '2등'에 안주하는 회사로 비쳐지기 십상이다. 후발주자로 학습지 시장에 뛰어들어 대표기업으로 성장했지만,정수기 등의 분야에선 선두기업인 웅진코웨이와 격차가 큰 탓이다. 교원의 내부 유보금이 5000억원 가까이 되지만 대형 인수 · 합병(M&A) 시장에 명함을 들이민 적이 없다는 점도 교원의 수세적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장 회장은 "사업을 시작한 이후 항상 모든 것을 걸었다"며 "교원이 2등에 만족한다는 평가는 아직 이르다"고 강조한다.
현재 오프라인 학습지 시장은 사설 학원 득세와 인터넷 세대의 저변 확대 등으로 침체기를 맞고 있다. 최근 교원이 온라인 학원을 인수하는 등 공격경영의 고삐를 죄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전국 3만여명의 방문판매 · 서비스조직,5000억여원에 달하는 내부 유보자금 등 공격경영을 위한 실탄은 충분히 확보한 상태다. 장 회장은 "정수기 등 생활가전에서 웅진이 압도적으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곧 우리와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배일호 모창은 내가 최고"
장 회장은'싸움 바둑'을 즐긴다. 한번 빠져들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어서 바둑 입문 1년 만에 1급 수준에 올랐다. 지금은 아마 5단 실력으로 주변에서 마땅한 적수를 찾기 힘들다. 낚시 사이클 등 그 밖의 취미도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몇 년 전 주변 권유로 시작했던 골프는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뒀다. 뭔가를 시작해서 중도에 포기한 것은 골프가 처음이다. 10년 전 낚시에 입문했을 때는 운전기사를 '낚시광'으로 직접 뽑고,숙식이 가능한 밴을 구입해 전국 낚시터를 섭렵했을 정도다. 그래서 골프에 빠져들지 않은 장 회장을 놓고 지인들은 모두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에 대해 장 회장은 "들인 시간에 비해 별로 재미도 없고,꼭 만나야 할 사람은 가끔씩 술로 회포를 푼다"고 말했다.
바둑이나 낚시는 그다지 활동적인 취미가 아니다. 장 회장 스스로도 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기자가 장 회장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이미지도 그랬다. 과묵하고 선이 굵은 스타일이어서 말을 걸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그룹을 총괄해야 하는 최고경영자(CEO)로서 애로사항이 많지 않으냐"고 에둘러서 질문을 던져봤다. 직원들과의 스킨십 문제를 물어본 것이다. 장 회장은 "성격과 취미까지 경영활동에 끌고 들어오지는 않는다"며 "남들 하는 만큼은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직원들과 격의없이 술자리도 자주 갖고,흥에 겨우면 노래도 한가락씩 뽑곤 한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자 장 회장은 "가수 배일호씨 노래는 줄줄이 꿰고 있고,목소리까지 똑같이 부를 수 있다"며 "'돌아가는 삼각지'라면 대한민국 CEO 중 내가 최고"라고 말했다.
장 회장은 교원그룹의 조직이 커나가면서 역사책에서 훌륭한 리더를 찾아 반면교사로 삼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언을 일삼던 위증이란 신하를 내치지 않고 끝까지 중용했던 한(漢)고조를 리더의 전형으로 꼽았다.
장 회장은 "최고의 리더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려면 부하직원의 실수를 눈감아줄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
"저도 몰랐는데 친구가 전화해줘서 알았어요. 평생 주식이나 재산에는 신경쓰지 않고 살았는데…."
장 회장의 말씨는 무척 덤덤했다. 돈을 모은 비결을 묻자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죽어라고 일했다. 물론 운도 따랐지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배추장사로 모은 종자돈 10억원
1951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장 회장의 유년시절은 극빈과 결핍이라는 두 단어가 지배했다. 부모가 고향을 떠나 인천에서 행상 등 날품팔이를 했던 탓에 다섯 살 때까지 외가에 맡겨져 자랐다. 영양실조에 걸려 병원에서 링거도 여러 번 맞았다. 어릴 적 가난은 청년시절까지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대학을 졸업한 뒤 행정고시를 준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장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청년 장평순은 배추장사를 시작했다. 1980년도 초였다. 가게를 얻을 돈이 없어 4t트럭에 배추 무 등을 싣고 다니며 주택가나 아파트 단지의 공터에 내다놓고 팔았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처럼 장 회장은 철저하게 '품질'을 따졌다. 전국의 산지를 다 둘러보고 가장 좋은 배추들만 골라서 실었다. 한번은 한 차 가득 실은 배추가 겉은 멀쩡한데 속이 썩은 것을 발견하고 손님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전액 환불을 해줬다. 그 배추들은 모두 쓰레기장으로 직행했다. 아무리 떠돌이 장사꾼이라지만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장 회장은 그렇게 거짓말처럼 10억원을 모았다.
1985년 현재 교원의 모태가 되는 학습지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도 이때 마련한 종자돈 덕분이었다. 서울 인사동에 작은 사무실을 빌려 직원 3명과 함께 밤을 새워 학습지를 만들었다. 큰 돈 들지 않고,매달 현금 장사를 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 시작한 사업은 과외금지 조치 등으로 학습지 '붐'이 일면서 나날이 뻗어나갔다. 2001년 시장이 정점에 달했을 때 교원의 학습지 회원은 50만명에 달했다. 장 회장은 구몬학습 · 빨간펜을 창간하며 교원을 학습지 시장의 강자로 키웠고,2002년에는 교원L&C를 설립해 정수기 · 비데 등 생활가전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
사업 초창기부터 영업맨으로 잔뼈가 굵은 장 회장이 항상 강조하는 것은 열정이다. "영업 잘하는 사람의 얼굴은 열기가 느껴지고,일에 대한 집중도가 남다르다"는 게 지론.장 회장은 "창업 후 한마디로 일에 미쳐 있었다"고 회상했다. "귀가시간이 매일 새벽 2~3시였어요. 애들을 낳을 때 처음 보고,두 번째는 기어다닐 때 봤어요. "
장 회장은 "상품이 B급이면 고객에 대한 나의 인격도 B급이 된다"고 강조한다. 전집류 시장에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주니어 라이브러리'는 7년이란 제작기간 중 100억원을 투입해 탄생했다. 장 회장은 "1등 못할 상품은 아예 만들지 말라"며 책의 글귀,색상 하나까지 어린이들의 정서에 맞는 작품을 만드느라 공을 들였다.
교원은 전국 각지에 5성호텔급 연수원 시설을 갖추고 있다. 연수원 시설을 이용해본 직원들은 교원의 최고 상품으로 주저없이 '연수원'을 꼽는다. 장 회장은 "그룹 규모에 걸맞지 않게 일개 연수원에 많은 돈을 쏟아붓는다"는 시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국에 4개 연수원을 짓고 호텔을 포함한 5개 휴양시설까지 확보했다. 이들 시설은 3만여명에 달하는 교원 영업조직을 재교육하는 한편 조직원들의 로열티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외부에서 보면 교원은 '2등'에 안주하는 회사로 비쳐지기 십상이다. 후발주자로 학습지 시장에 뛰어들어 대표기업으로 성장했지만,정수기 등의 분야에선 선두기업인 웅진코웨이와 격차가 큰 탓이다. 교원의 내부 유보금이 5000억원 가까이 되지만 대형 인수 · 합병(M&A) 시장에 명함을 들이민 적이 없다는 점도 교원의 수세적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장 회장은 "사업을 시작한 이후 항상 모든 것을 걸었다"며 "교원이 2등에 만족한다는 평가는 아직 이르다"고 강조한다.
현재 오프라인 학습지 시장은 사설 학원 득세와 인터넷 세대의 저변 확대 등으로 침체기를 맞고 있다. 최근 교원이 온라인 학원을 인수하는 등 공격경영의 고삐를 죄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전국 3만여명의 방문판매 · 서비스조직,5000억여원에 달하는 내부 유보자금 등 공격경영을 위한 실탄은 충분히 확보한 상태다. 장 회장은 "정수기 등 생활가전에서 웅진이 압도적으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곧 우리와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배일호 모창은 내가 최고"
장 회장은'싸움 바둑'을 즐긴다. 한번 빠져들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어서 바둑 입문 1년 만에 1급 수준에 올랐다. 지금은 아마 5단 실력으로 주변에서 마땅한 적수를 찾기 힘들다. 낚시 사이클 등 그 밖의 취미도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몇 년 전 주변 권유로 시작했던 골프는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뒀다. 뭔가를 시작해서 중도에 포기한 것은 골프가 처음이다. 10년 전 낚시에 입문했을 때는 운전기사를 '낚시광'으로 직접 뽑고,숙식이 가능한 밴을 구입해 전국 낚시터를 섭렵했을 정도다. 그래서 골프에 빠져들지 않은 장 회장을 놓고 지인들은 모두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에 대해 장 회장은 "들인 시간에 비해 별로 재미도 없고,꼭 만나야 할 사람은 가끔씩 술로 회포를 푼다"고 말했다.
바둑이나 낚시는 그다지 활동적인 취미가 아니다. 장 회장 스스로도 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기자가 장 회장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이미지도 그랬다. 과묵하고 선이 굵은 스타일이어서 말을 걸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그룹을 총괄해야 하는 최고경영자(CEO)로서 애로사항이 많지 않으냐"고 에둘러서 질문을 던져봤다. 직원들과의 스킨십 문제를 물어본 것이다. 장 회장은 "성격과 취미까지 경영활동에 끌고 들어오지는 않는다"며 "남들 하는 만큼은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직원들과 격의없이 술자리도 자주 갖고,흥에 겨우면 노래도 한가락씩 뽑곤 한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자 장 회장은 "가수 배일호씨 노래는 줄줄이 꿰고 있고,목소리까지 똑같이 부를 수 있다"며 "'돌아가는 삼각지'라면 대한민국 CEO 중 내가 최고"라고 말했다.
장 회장은 교원그룹의 조직이 커나가면서 역사책에서 훌륭한 리더를 찾아 반면교사로 삼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언을 일삼던 위증이란 신하를 내치지 않고 끝까지 중용했던 한(漢)고조를 리더의 전형으로 꼽았다.
장 회장은 "최고의 리더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려면 부하직원의 실수를 눈감아줄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