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디자인 서울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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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디자인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서울시의 행보가 거침없다. 82년 된 동대문운동장을 뚝딱 철거한 자리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하는 작업에 들어간 지 얼마 안된 듯한데 벌써 서울성곽 동대문역사관 동대문운동장기념관 이벤트홀 등을 만들어 부분 개방했다. 광화문 시청 등 상징적 건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공사 중이고 보도블록 가판대 버스정류장 등도 모양바꾸기가 한창이다.
디자인을 강조하는 건 옳다. 옷뿐 아니라 자동차,전자제품,주방용품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대 아닌가. 도시 역시 아름다워야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밋밋하게 성냥갑처럼 올라간 빌딩보다 건축가의 혼과 철학이 깃든 건물은 금방 눈길을 끌면서 지역의 상징으로 떠오르게 마련이다.
국제 도시로 도약 중인 서울도 고도성장의 부산물로 남은 칙칙하고 흉물스러운 부분을 싹 도려내고 새로운 시설이나 첨단 건물로 산뜻하게 단장하는 게 필요하다. 이미 성공한 사례도 있다.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철근 콘크리트 덩어리를 걷어낸 대신 풀과 나무가 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공원으로 조성된 청계천이 대표적이다. 상인들의 얼키고 설킨 이해관계를 풀어낸 후 생태공원으로 조성했으니 도시 성형의 모범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너무 많은 부분에 손을 대면 정체성이 없어진다. 도시는 표정만 있는 게 아니라 역사와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곳이기 때문이다. 겉 보기에 어수선하다고 확 밀어버린 다음 새로 짓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종로 1~6가 대로 뒤편의 골목길인 피맛골(피맛길)만 해도 그렇다. 조선시대 때의 모습은 이미 일제강점기에 사라지고 지금은 한국전쟁 이후 조성된 길이 주로 남아 있으나 일상에 지치고 삶이 고단할 때면 한번쯤 찾고 싶은 골목으로 자리잡았다. 서울의 속맛을 보여주는 관광상품으로서의 잠재력도 높은 곳이다. 그런데도 3분의 1정도는 벌써 도심재개발로 사라졌고 뒤늦게 '전통을 말살하는 재개발'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나머지를 보존하겠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문제는 그 발상이다. 아름다운 디자인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조금만 눈에 거슬리면 뜯어 고치려는 생각 말이다. 인사동이 국적불명의 거리로 변한 것이나 멀쩡한 보도블록 색깔을 바꾼다고 툭하면 갈아치우는 것도 같은 선상에 있다. 심지어 조경을 한다고 서소문 고가도로 아래처럼 어울리지 않는 곳에 조악한 모양의 분수를 만들어 놓는 일까지 벌어지는 상황이다. 가시적 실적을 내려다 보니 겉모습 위주의 도시 성형이 짧은 기간에 너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도시학자이자 건축사인 테오도르 폴 김은 도시를 '만들어가는 도시'와 '만들어진 도시'로 구분한다. 만들어가는 도시는 의미에 적합한 몸체 얼굴 모양을 새로 갖추는 도시인 데 비해 만들어진 도시는 오랜 기간 역사적 사회적 요인들이 서로 융해돼 상호관계를 형성하는 유기체다. 600년 역사를 간직한 서울은 당연히 만들어진 도시다. 물론 흉하고 불편한 부분은 새로 단장하고 고쳐나갈 수 밖에 없다. 다만 판교 송도 청라처럼 새로 만들어가는 도시가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역사와 이야기를 극대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게 맞다. 켜켜이 쌓인 삶의 디테일이 훼손되지 않도록 긴 호흡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게 디자인 서울의 핵심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디자인을 강조하는 건 옳다. 옷뿐 아니라 자동차,전자제품,주방용품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대 아닌가. 도시 역시 아름다워야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밋밋하게 성냥갑처럼 올라간 빌딩보다 건축가의 혼과 철학이 깃든 건물은 금방 눈길을 끌면서 지역의 상징으로 떠오르게 마련이다.
국제 도시로 도약 중인 서울도 고도성장의 부산물로 남은 칙칙하고 흉물스러운 부분을 싹 도려내고 새로운 시설이나 첨단 건물로 산뜻하게 단장하는 게 필요하다. 이미 성공한 사례도 있다.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철근 콘크리트 덩어리를 걷어낸 대신 풀과 나무가 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공원으로 조성된 청계천이 대표적이다. 상인들의 얼키고 설킨 이해관계를 풀어낸 후 생태공원으로 조성했으니 도시 성형의 모범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너무 많은 부분에 손을 대면 정체성이 없어진다. 도시는 표정만 있는 게 아니라 역사와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곳이기 때문이다. 겉 보기에 어수선하다고 확 밀어버린 다음 새로 짓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종로 1~6가 대로 뒤편의 골목길인 피맛골(피맛길)만 해도 그렇다. 조선시대 때의 모습은 이미 일제강점기에 사라지고 지금은 한국전쟁 이후 조성된 길이 주로 남아 있으나 일상에 지치고 삶이 고단할 때면 한번쯤 찾고 싶은 골목으로 자리잡았다. 서울의 속맛을 보여주는 관광상품으로서의 잠재력도 높은 곳이다. 그런데도 3분의 1정도는 벌써 도심재개발로 사라졌고 뒤늦게 '전통을 말살하는 재개발'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나머지를 보존하겠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문제는 그 발상이다. 아름다운 디자인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조금만 눈에 거슬리면 뜯어 고치려는 생각 말이다. 인사동이 국적불명의 거리로 변한 것이나 멀쩡한 보도블록 색깔을 바꾼다고 툭하면 갈아치우는 것도 같은 선상에 있다. 심지어 조경을 한다고 서소문 고가도로 아래처럼 어울리지 않는 곳에 조악한 모양의 분수를 만들어 놓는 일까지 벌어지는 상황이다. 가시적 실적을 내려다 보니 겉모습 위주의 도시 성형이 짧은 기간에 너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도시학자이자 건축사인 테오도르 폴 김은 도시를 '만들어가는 도시'와 '만들어진 도시'로 구분한다. 만들어가는 도시는 의미에 적합한 몸체 얼굴 모양을 새로 갖추는 도시인 데 비해 만들어진 도시는 오랜 기간 역사적 사회적 요인들이 서로 융해돼 상호관계를 형성하는 유기체다. 600년 역사를 간직한 서울은 당연히 만들어진 도시다. 물론 흉하고 불편한 부분은 새로 단장하고 고쳐나갈 수 밖에 없다. 다만 판교 송도 청라처럼 새로 만들어가는 도시가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역사와 이야기를 극대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게 맞다. 켜켜이 쌓인 삶의 디테일이 훼손되지 않도록 긴 호흡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게 디자인 서울의 핵심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