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부 개발의 중심지인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이곳 사람들은 '땅만 파도 먹고 산다'고 한다. '세계 8대 불가사의'로 불리는 진시황릉도 농부들이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진시황릉 옆의 3개 병마용갱에는 실물 크기의 사람과 말 테라코타 8000여점이 들어 있고 이곳을 다녀간 관광객은 5000만명이나 된다.

시안에는 진시황릉을 비롯해 한대부터 당대까지 중국을 지배한 황제들의 무덤이 72개나 있다. 그런데 이곳에 묻힌 황제의 수는 73명이다. 왜 그럴까. 당 고종 이치(李治)와 중국 유일의 여황제 무측천(武則天)이 함께 묻혀 있기 때문이다.

명초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기 전까지 이곳은 장안(長安)으로 불렸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러브 스토리가 깃든 곳이자 온천 명승지인 화청지(華淸池),현장 법사가 창건한 탑 등 문화유적만 3000곳에 이르는 천연 박물관 도시.이 책은 이곳의 어제와 오늘,문화와 역사,사람과 상권까지 살핀 인문학적 문화여행기다. 저자는 이기성 전 SK가스 상무.2007~2008년 시안외사학원에서 공부하며 중국 서북 5개성과 인근 지역을 답사한 그는 이 책에서 시안 사람들의 특징과 풍정을 독특한 시각으로 그려낸다.

그는 시안인들의 기질을 '자부심 강하고 의리 있으며 고집 센 양반형'이라고 정의한다. 2200년 전에 만든 진시황릉 토용의 얼굴 생김새나 머리 모양을 그대로 닮은 시안 사람들은 베이징이나 상하이인들처럼 약삭빠르지 않고 무쇠처럼 은근한 정을 지녔다는 것.이곳에서 유래된 말도 재미있다. 사리가 밝고 분간이 명확하다는 뜻의 '경위(涇渭)'는 '징수이(涇水) 강물은 흐리고 웨이수이(渭水) 강물은 맑아 뚜렷이 구별된다'는 데서 나온 말.'진창'이라는 말도 비만 오면 통행이 불가능한 황토지역의 지명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당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장안을 어떤 사람들이 일으켰는지,왜 몰락했는지 등 역사적 궤적을 추적한 대목도 눈여겨 볼 만하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