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대확산 징후가 곳곳에서 드러나더니 결국 심각단계로 격상되었다. 당국은 걱정 말라고 하지만'심각'이란 낱말만으로도 국민불안은 가중될 수밖에 없고 자칫 정부불신과 투약체계 불복종으로 번질지도 모른다. 혹여 장마철에 흙 한줌으로 예방할 수 있는 강둑의 붕괴를 간과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고 지혜를 찾았으면 한다.

모든 재난의 교훈은 예방이 가장 현명한 대책이며 초기대응이 기민해야 재앙을 막을 수 있다. 사람이나 국가능력의 가늠자는 기본에 얼마나 충실하며 대응능력이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한가에 따라 평가되기 마련이다.

1999년부터 2006년까지 세계보건기구(WHO)는 대유행 인플루엔자를 네 차례나 경고하며 전략적 실행계획 마련을 각국에 권고했다. 이에 2007년 5월 기준으로 전체 인구 대비 미국 25%,영국 30%,프랑스 23%,일본 20%,뉴질랜드 21%에 해당하는 항바이러스제를 확보했으나 우리나라는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

감사원은 2007년 5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감사에서 대유행 인플루엔자에 대비해 선진국을 비롯 많은 나라가 항바이러스제를 20% 정도 확보하고 있으나 우리는 겨우 2%만 비축하고 있으니 대책을 세우라고 지적했지만 올 들어 인구 대비 10% 확보에 그치는 우를 범했다. 다른 나라의 대책과 발 빠른 대응능력을 보며 우리의 현실을 어찌 비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금만 더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자존심을 생각했던들 이렇게 다급한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더구나 예방에 필수적인 백신확보가 늦어져 국민에게 걱정을 끼친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누군들 감염된 뒤에 치료받기를 바라겠는가. 다행스럽게도 두 번 접종해야 한다던 백신을 한 번 접종해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당국이 신속하게 대책을 세워 국가 필요량 2200만 도즈 확보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한 명의 무장공비가 설악산에 출현하면 몇 개의 사단병력이 출동해야 하듯 해외에서 병균이 들어오면 막대한 인명과 재화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검역은 보이지 않는 적을 막는 중요한 국가안전망이다.

공항은 한 국가와 세계를 연결하는 관문이기에 세관심사,출입국자격심사,검역심사가 이루어지는데 허브공항을 자부하는 인천공항은 설계단계에서부터 국가 안전망을 경시한 징후가 있다. 1993년부터 97년까지 복지부와 국립서울검역소가 네 차례나 건교부와 공항공단에 입국심사대 앞 검역대 설치를 공문으로 요청했지만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결국 검역의 주무 부처인 복지부의 요구와 다르게 승객들이 오가는 통로에 검역대가 설치되고 말았다. 좁은 통로에 검역대를 설치해 승객이 일시에 몰려오면 유능한 요원들이라 해도 병균을 적발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매년 겨울이 닥치면 계절독감이 유행하기 마련인데 올해도 신종플루 때문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백신이 부족한 상태이다.

세계가 단일권이 되면서 지구의 어느 한 곳에서 전염병이 생기면 전 세계로 동시에 확산되는 추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22개 법정 전염병 중에 국내 생산 가능한 백신이 장티푸스,B형간염,일본뇌염,수두 등 7개 밖에 안 되고 콜레라,A형간염,백일해,홍역,소아마비 등 15개 백신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주권을 지켜야 국력이 높아지듯 국민건강을 위해 백신주권을 서둘러 확보하기를 권고한다.

소를 잃었더라도 외양간을 고치는 게 현명한 처방임을 잊지말자.우리 보건당국의 능력과 사명감을 믿기에 불길한 예측이나 걱정이 모두 빗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홍신 <소설가·건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