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으로 초가지붕이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던 1970년대 한국의 초가집은 낡고 낙후된 것으로 여겨졌다. 한국인 동료들은 내가 왜 늘 초가집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난 초가집이 아주 멋지다고 생각했다. "(중략)

스티븐스 대사는 지난달 내놓은 '심은경이 담은 한국'이란 사진첩을 꺼내 한국 농촌의 툇마루와 온돌방,한복 차림에 서양식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 등 손 때 묻은 옛날 사진들을 보여주며 친필 사인까지 해줬다.

"요즘엔 바빠서 사진 찍을 틈도 없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대학로처럼 사람이 붐비는 곳이나 근처 산을 찾곤 합니다. 한국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아는 건 정말 즐거워요. "(웃음) 평화봉사단으로 한국과 첫 인연을 맺은 지 30여년이 넘었지만 스티븐스 대사는 여전히 '한국 마니아'다. 지난달 그녀는 산악인 박영석씨와 함께 서울 도봉산을 올랐다. 또 북한산 백운대와 충북 괴산의 백악산 등 한국 곳곳의 산을 찾아 틈틈이 하이킹을 즐긴다.

바쁜 와중에도 매일 30분씩 시간을 쪼개 한국어 과외를 받는 것도 같은 이유다. 스티븐스 대사는 "한국말을 할 줄 아는 건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지만 실력이 별로 좋지 않아 때론 부담도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어 공부를 위해 매일 뉴스를 시청하지만 올 초 '가을동화'를 보면서 한국 드라마가 얼마나 중독성이 강한지도 알게 됐다"고 귀띔했다.

1975년 하버드대 석사과정을 갓 마친 22살에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을 찾은 스티븐스 대사는 충남 부여와 예산에서 2년간 영어교사로 활동한 뒤 주한 미대사관에서 실시한 시험에 합격해 1978년부터 외교관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북아일랜드 총영사관 등에서 근무했으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수석부차관보(2005년)와 선임고문(2007년)을 거쳐 작년 9월부터 주한 미 대사로 재직하고 있다.

글=김미희 기자/사진=김병언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