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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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광고를 보다가 이따금 푸근하고 평화스러운 장면을 만나게 된다. 오래된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마을 사람들이 정담을 주고받거나 장기를 두는 시골 풍경이 그것이다. 아이들은 나무 주위를 돌며 숨바꼭질을 하고,동네 노인들은 이야기꽃을 피운다.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온 느티나무 덕분에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왠지 마음의 풍요를 누리는 것 같고 서로 의지하며 평화롭게 살 것만 같다.
필자의 고향 마을 뒷동산에는 소나무가 대여섯 그루 낙락장송을 이루며 서있다. 그 옛날 어느 누가 심었는지는 모르지만,마을 사람들은 이 정자나무가 마을의 안전과 평온을 지켜 준다고 믿으며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왔다.
어린 시절,단오날이면 마을 어른들이 볏짚으로 밧줄을 틀어 소나무 위에 그네를 만들어 놓았고 동네 처녀들은 좋아라 하며 창공을 가르며 그네를 탔다. 사시사철 아이들은 나무 곁에서 뛰어놀고 때론 사색하면서 꿈을 키워왔다. 미당선생은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고 했지만 나를 키운 건 팔할이 그 나무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늘 누가 이 나무들을 심었을까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도 못한 채 고향을 떠났다.
1988년이었던가,한국경제신문이 K합섬의 후원으로 분양하는 느티나무 묘목 10여 그루를 분양받게 되었다. 나는 이 묘목을 고향 선산 주변에 심었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우여곡절 끝에 오직 한 그루만이 살아 남았지만,그 아름답고 늠름한 자태는 보기만 해도 흐뭇할 정도다. 나무 둘레는 두 손으로 잡아야 할 만큼 커졌고,나무 그늘도 주위를 에워쌀 만큼 짙고 넓어졌다. 흡사 무슨 정령이라도 깃들어 있는 듯한 모습으로 선산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묘목이 분양되던 당시를 생각하면 그때 분양된 묘목들이 어디에 심겨졌을까 궁금해지곤 한다. 오랜 세월 꿋꿋이 이 땅을 지켜온 한민족처럼 전국 방방곡곡에 우뚝 서서 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으로 자라고 있을 것만 같다. 그 나무들의 늠름한 자태를 사진으로라도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 정원에도 몇 그루의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그 나무들을 바라보면 나무가 견뎌낸 비바람의 고난과 인내가 고스란히 전해져서인지 마음이 소슬해지고 맑아진다. 때론 힘든 삶을 박차고 일어날 수 있는 기백을 얻기도 한다. 내게 나무가 주는 위안은 너무도 크다.
예술가가 작품을 남기듯 우리 모두 한 그루의 나무를 남기는 것은 어떨까. 살아있는 동안의 보람을 위해서 그리고 후대에 물려줄 유산을 위해서.마을마다 옹기종기 정자나무가 들어선 풍경은 한 폭의 한국화를 연상시킨다.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아니한가.
심윤수 <철강협회 부회장 yoonsoo.sim@ekosa.or.kr>
필자의 고향 마을 뒷동산에는 소나무가 대여섯 그루 낙락장송을 이루며 서있다. 그 옛날 어느 누가 심었는지는 모르지만,마을 사람들은 이 정자나무가 마을의 안전과 평온을 지켜 준다고 믿으며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왔다.
어린 시절,단오날이면 마을 어른들이 볏짚으로 밧줄을 틀어 소나무 위에 그네를 만들어 놓았고 동네 처녀들은 좋아라 하며 창공을 가르며 그네를 탔다. 사시사철 아이들은 나무 곁에서 뛰어놀고 때론 사색하면서 꿈을 키워왔다. 미당선생은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고 했지만 나를 키운 건 팔할이 그 나무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늘 누가 이 나무들을 심었을까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도 못한 채 고향을 떠났다.
1988년이었던가,한국경제신문이 K합섬의 후원으로 분양하는 느티나무 묘목 10여 그루를 분양받게 되었다. 나는 이 묘목을 고향 선산 주변에 심었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우여곡절 끝에 오직 한 그루만이 살아 남았지만,그 아름답고 늠름한 자태는 보기만 해도 흐뭇할 정도다. 나무 둘레는 두 손으로 잡아야 할 만큼 커졌고,나무 그늘도 주위를 에워쌀 만큼 짙고 넓어졌다. 흡사 무슨 정령이라도 깃들어 있는 듯한 모습으로 선산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묘목이 분양되던 당시를 생각하면 그때 분양된 묘목들이 어디에 심겨졌을까 궁금해지곤 한다. 오랜 세월 꿋꿋이 이 땅을 지켜온 한민족처럼 전국 방방곡곡에 우뚝 서서 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으로 자라고 있을 것만 같다. 그 나무들의 늠름한 자태를 사진으로라도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 정원에도 몇 그루의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그 나무들을 바라보면 나무가 견뎌낸 비바람의 고난과 인내가 고스란히 전해져서인지 마음이 소슬해지고 맑아진다. 때론 힘든 삶을 박차고 일어날 수 있는 기백을 얻기도 한다. 내게 나무가 주는 위안은 너무도 크다.
예술가가 작품을 남기듯 우리 모두 한 그루의 나무를 남기는 것은 어떨까. 살아있는 동안의 보람을 위해서 그리고 후대에 물려줄 유산을 위해서.마을마다 옹기종기 정자나무가 들어선 풍경은 한 폭의 한국화를 연상시킨다.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아니한가.
심윤수 <철강협회 부회장 yoonsoo.sim@ekos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