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숲 속에 야생 멧돼지가 출현했다는 것이다. 아무런 방비 없이,그것도 한밤중 산중에서 야생의 멧돼지와 맞닥뜨리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천천히 걸어도 10분이면 족한 계곡의 노천온천이지만 할 수 없이 차를 이용해야 한다. 산책 삼아 슬슬 걸어가려던 계획이 틀어져버린 것이다. 호텔 밖은 칠흑 같은 어둠이 덮여 있고,계곡의 노천온천으로 향하는 폭 좁은 길은 그 깊은 어둠 속으로 꼬리를 감추고 있다.

Take 1 멧돼지도 나오는 계곡온천

봉고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광선검처럼 수평으로 획 허공을 가르는가 싶더니 계곡의 노천온천이 모습을 드러낸다. 캄캄한 어둠에 갇힌 백열등의 누런 불빛과 뜨거운 온천탕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몽환적인 풍경을 빚어낸다. 콧속을 파고드는 유황냄새는 도대체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닌 듯한 느낌을 준다. 귓전에 울리는 소리도 계곡의 바위틈 새로 빠르게 흐르는 온천수 소리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나오는 감탄사 뿐이다.

규슈 남단 가고시마현 북동부의 기리시마·야쿠 국립공원.이 국립공원 내 기리시마 이와사키호텔 옆의 계곡 온천은 18세기부터 치유온천으로 알려져 온 곳이라고 한다. 1744년 길을 잃고 헤매던 이가 이 계곡의 바위틈에서 뜨거운 온천수가 솟는 것을 발견,사쓰마번(현재의 가고시마현) 영주의 허가를 얻어 온천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1861년에는 사쓰마번 영주가 직접 온천 피서지를 조성했다고 한다. 당시 만든 온천탕의 돌담이 지금도 남아 있다.

계곡온천의 온천탕은 모두 6개.탈의실 바로 아래에 두 개의 커다란 탕이 있고,그 아래 계곡을 따라 4개의 탕이 두 개씩 붙어 있다. 탕 안의 온천수 색깔이 특이하다. 하늘색이 감도는 희뿌연 색깔이 은근히 빛나는 오팔석을 보는 듯하다. 무릎 높이까지 오는 탕 안의 물은 뜨거운 편이지만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두 발을 쭉 뻗고 편안히 앉으면 어깨까지 물에 잠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힌다. 탕 옆으로 흐르는 온천수와 시원한 밤 바람에 계곡 가득한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더해지니 세상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단풍이 어우러질 때가 좋지만 한겨울 함박눈이 펄펄 내릴 때 즐기는 계곡온천의 운치가 더 깊겠다.

기리시마·야쿠 국립공원 안에 있는 '마루오자연탐승로'는 200~300년 된 거목들이 울창한 삼림욕 코스로 잘 알려져 있다. 국가에서 지정한 많지 않은 자연탐방로 중 하나라고 한다. 탐방로 입구 쪽 계곡에 기리시마에서 가장 오래된 바위노천탕이 있다.



Take 2 하나뿐인 모래찜질온천

가고시마 최남단,일본 내 신혼여행지로 널리 알려진 이부스키에서는 별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온천수가 아닌 해변의 검은 모래로 하는 '검은모래찜질온천'이다. 이부스키의 온천수는 바닷물처럼 짠맛이 도는 '화석수'라고 한다. 옛날 지각변동으로 땅속 깊이 갇혔던 바닷물이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마그마에 의해 끓으면서 온천수가 됐다는 것이다. 이 온천수는 이부스키 지역의 지하수맥을 따라 바다로 흘러들어가기 전 해변의 검은 모래를 달군다. 이부스키는 해변의 이 뜨거워진 모래를 이용,찜질 효과를 곁들인 세계 유일의 모래찜질온천으로 유명세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부스키 시에서 운영하는 사라쿠 회관과 이와사키 호텔이 검은모래찜질온천으로 잘 알려져 있다. 모래찜질온천은 그냥 온천을 즐기는 것만큼 쉽다. 온천장에서 주는 유가타로 갈아 입고 한 몸 누이기 딱 좋게 정리된 모래바닥에 드러누우면 도우미가 삽으로 뜬 모래로 몸을 덮어준다. 절절 끓는 온돌방 아랫목에 누워 두꺼운 솜이불을 덮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온몸이 금세 후끈 달아오른다. 이마엔 어느새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다. 엉덩이쪽이 가장 빨리 화끈거린다. 모래가 누르고 있어 잘 움직일 수도 없다. 모래가 흘러내리면 도우미들이 더 많은 모래를 퍼 얹어준다.

보통 15분 정도면 충분하다. 길어도 30분을 넘기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인내력을 시험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자칫 피부가 데일 수 있다. 시간은 짧지만 효과는 충분하다. 보통 온천의 3~4배 효과를 본다고 한다. 몸속에 쌓인 노폐물이 땀과 함께 싹 빠져나간 것처럼 개운하다.

기리시마(가고시마현)=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 여행 TIP

가고시마는 규슈 최남단의 현이다. 인구는 180만명.현청 소재지는 인구 60만명의 가고시마시다. 가고시마의 상징은 지금도 화산재를 뿜어내고 있는 활화산 사쿠라지마.원래는 긴코만 안의 섬이었는데 1914년의 대폭발로 사쓰마반도와 함께 긴코만을 감싸고 있는 오스미반도와 연결됐다. 차를 타고 들어가 아리무라용암전망대 등에서 분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타루미즈마을의 해변 족탕에서는 족탕을 즐기며 사쿠라지마를 볼 수 있다. 규슈 굴지의 이와사키그룹이 야쿠시마를 오가는 페리를 이용해 새로 만든 긴코만 크루즈도 즐길 만하다. 크루즈 이용객을 위한 불꽃놀이가 환상적이다. 사쿠라지마와 긴코만의 물을 차경한 시마즈 가문 영주의 별장 센간엔,녹차의 고장 치란의 무사주택거리,심수관도요가 있는 미야마마을도 찾아보자.

흑돼지 샤부샤부가 별미.고구마소주가 이 지역 특산 술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귤 맛도 달콤하다. 에도시대에 천문관측시설이 있었다는 덴몬칸 거리의 빙수집에서 맛보는 '시로쿠마' 빙수는 연인들이 좋아하겠다. 후쿠야마마을의 '흑식초'도 유명하다.

대한항공이 매주 수ㆍ금ㆍ일요일 가고시마행 직항편을 운항한다. 1시간20분 걸린다. 이와사키호텔 한국사무소 (02)598-2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