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매니저의 투자비밀⑦]원칙주의자 멜빵선생의 20년 노하우-강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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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은 팔짱을 끼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주시했다. 경청하는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다물고 있었던 입들이 하나씩 터졌다. 거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100명이 넘는 투자자들이 강당을 꽉채우며 큰 소리를 질렀다.
멜빵을 멘 연사는 강단에 서서 고개를 더욱 빳빳이 들고 말을 이어갔다. 한국투자신탁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인 강신우 부사장(49·사진)이었다.
"역사적으로 지금과 같은 공포가 시장을 지배하는 시기. 바로 지금이 투자하기 좋은 때입니다."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그래도 강 부사장은 강의를 끝까지 마쳤다. 끝나기가 무섭게 가까이 다가와서 한 마디 하는 투자자들의 얘기도 경청했다.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전후 글로벌 금융위기감이 커지고 있던 2008년 9월과 10월. 강 부사장은 '변곡점에 위치한 주식시장'이라는 제목으로 펀드투자자를 상대로 전국 순회 강연을 했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강연중에 투자자들의 공격적인 언사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강연회는 운용사가 일반투자자에게 펀드운용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였다. 국내에선 처음있는 일이었다. 강 부사장은 지난해 여름부터 강의를 준비했다. 준비기간 동안 그를 긴장시킨 것은 '처음'이라는 점이 아니었다. 바로 미국 금융시장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희망'보다는 여러가지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해 강의제목에도 '변곡점'을 넣었다.
고객을 찾아가 직접 시황을 전하고 펀드투자 전략을 설명하기 위한 강의는 두달동안 총 18회. 투자자들과의 대화를 앞두고 강 부사장은 시장의 좋은 반응도 기대했다.
그렇지만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코스피지수 1500선에서 강의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마지막 강의를 할 때에는 900선이었습니다. 끝날 무렵에는 분위기가 썰렁하기 짝이 없었죠. 미리 준비한 강의자료도 다 소용 없었습니다. 금융위기 폭탄을 맞은 시장에서 내년 전망을 해서 뭐합니까? 준비했던 자료는 쳐다도 안보고 '지금 투자할 때'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시장은 연일 빠지기를 반복했고, 강 부사장은 강의 때마다 욕을 먹었다. 이런 그에게 용기를 준 건 '솔로몬 왕의 지혜'였다.
'어리석은 사람은 체험을 통해 배우고, 현명한 사람은 역사를 통해 배운다.'
이 문구는 그의 집무실 내 화이트보드에도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아침마다 회의할 때 여기(화이트보드)에 이것저것 쓰곤 해요. 그래도 이 문구는 절대 지우지 않습니다. 운용을 하다보면 기본적인 원칙을 소홀히 할 때도 있습니다. 이를 잊지 않으려고 이 문구를 날마다 되뇌이곤 합니다."
운용경력 20년의 베테랑 펀드매니저. '바이코리아' 펀드 신화의 주인공. 펀드매니저 1세대를 연 장본인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펀드매니저. 그런 그도 매일 주문처럼 되뇌이는 건 '기본'이었다.
한국경제신문의 온라인미디어 <한경닷컴>이 만난 강 부사장은 여의도에서 '멜빵선생'으로 통한다. 멜빵을 멘 지도 벌써 14년째. 이제는 멀리서도 멜빵한 사람이 다가온다면 강 부사장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을 정도다. 기껏해야 튀는 넥타이로 포인트를 주는 여의도 증권맨들 사이에서는 '엣지있는' 패션이다.
그는 마침 상반신을 요염하게 드러낸 여인네 그림의 커프스 버튼까지 하고 있었다. 쑥스러워하면서 시원하게 웃어보이는 그의 뒤로 세계지도가 보인다. 강 부사장의 단골배경 그림이다. 차림새답게 독특한 남다른 혜안(慧眼)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역사'와 '기본'을 신앙으로 삼는 펀드매니저였다.
"시장의 역사에 대해 간과하는 사람들이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다르다'라는 거예요. 2007년에는 '이번 상승장은 꺾이지 않을 것이다. 기존의 상승장과는 다르다'였죠. 지난해 금융위기 때에는 어땠습니까? '이번 하락세는 심상치 않다. 쉽게 오르지 못한다'였지요. 하락장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공포에 휩싸이고, 상승장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탐욕에 휩싸입니다. 이걸 알면서도 지나쳤던 겁니다."
1991년 한국투자신탁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강 부사장은 1996년 동방페레그린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주식운용본부장을 지냈다. 이후 현대투신에서 1999년 '바이코리아'펀드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도 달라졌다.
'바이코리아'펀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투자자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운용만 하던 그는 어느새 스타매니저 반열에 올라서게 됐다.
그가 지금과 같은 운용방식과 철학을 갖추기 시작한 시기는 동방페레그린 시절이었다. 1996년 회사차원에서 3~4개월간의 미국 뉴욕 연수기회가 있었다. 강 부사장은 월스트리트의 펀드매니저 생활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됐다.
"워런 버핏(Warren Buffett) 이나, 존 템플턴(John Templeton)처럼 성공적인 투자자들은 결국엔 성인(聖人)이 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기업을 단순하게 분석하는데 그칠 지는 몰라도 나중에는 사회, 인간 등을 두루두루 이해하고 통찰력을 갖게 된다고 봅니다. 저도 그런 이해력과 통찰력을 갖춰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강 부사장은 개별 기업가치를 기본으로 하는 투자하는 방식을 고수했다. 잦은 매매보다는 리서치에 바탕을 둔 보텀업(bottom up, 상향식) 투자전략을 펼쳤다. 기업탐방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렇지만 이미 매머드급이 된 '바이코리아' 펀드는 기업의 가치를 사기보다는 시장을 사는 수준이었다. 유가증권 시장에서 15개 이상의 종목을 묶어서 동시에 매매하는 이른바 '바스켓' 거래를 했다.
강 부사장은 '제대로 된 펀드운용을 하고 싶다'는 소신에 따라 2000년 3월10일 1년여의 꿀맛같은 '바이코리아' 펀드매니저 생활을 정리했다. 그날은 바로 공교롭게도 코스닥 지수가 2834.40선으로 최고치를 찍은(상투를 잡은) 날이었다.
"'바이코리아'는 저의 베스트펀드이자 워스트펀드입니다. 1999년 3월 성장형펀드인 '바이코리아 나폴레옹'을 만들어 1년 넘게 운용했지요. 4월부터 돈이 들어오는데 무서운 기세였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하는 일은 '돈 얼마나 들어왔나' 확인하는 것이었죠. 그렇지만 펀드설정액이 커지다보니 장중주문은 거의 못했습니다. 9시 이전에 주문을 모두 내놓곤 했지요."
그렇게 그가 옮긴 곳은 '쌍용템플턴투신운용'이었다. 제대로된 펀드운용을 꿈꿨지만 그 또한 쉽지 않았다. 쌍용의 지분이 외국계로 넘어가면서 회사는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과 '굿모닝투신운용'(쌍용이 굿모닝증권으로 이름을 바꾸어 차린 운용회사)으로 나뉘게 됐다. 강 부사장은 2001년 굿모닝투신운용의 초대 대표이사를 맡았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굿모닝투신운용은 2002년 10월 영국계 금융회사인 PCA에 팔리면서 'PCA투신운용'이 됐다. 그는 PCA 투자신탁운용에서 전무로 지내면서 'PCA업종일등', 'PCA베스트그로쓰' 등 국내주식형펀드를 잇따라 만들어냈다. PCA생명보험의 일임 자금까지 굴리면서 펀드운용규모를 크게 불렸다.
"제대로된 펀드 운용을 해보겠다고 현대투신을 그만두고 자리를 옮겼는데 그 회사가 기업 인수·합병(M&A)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돼서 제대로 운용을 할 수 없었습니다. 자식같은 펀드를 내놓고 제대로 운용하기 시작한 것은 PCA투신운용 때부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운용 신생펀드들, 수익률 상위권 '승승장구'
펀드운용에 참맛을 느끼기 시작할 시기에 친정으로부터 호출이 왔다. 2005년 한국투자증권이 동원금융지주에 인수합병되면서 그는 한국투자신탁운용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말만 '한투'일 뿐이었지요. 제대로된 펀드운용이나 철학도 미진했습니다. 그 때부터 내부정비에 들어가면서 기존의 펀드들도 성과를 내기 시작했고, 신생펀드들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12월20일 '한국투자 네비게이터 주식형펀드'가 나왔고 이듬해에는'한국투자 한국의힘 주식형펀드'도 설정됐다. 기존에 이름만 있었던 '한국투자 삼성그룹적립식펀드'는 운용원칙과 시스템등의 재정비 과정을 거쳤다.
강 부사장이 산통(産痛)을 겪으면서 만들어낸 펀드들의 성적은 최근까지 수익률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 6일 기준 '네비게이터주식형펀드'는 설정이후의 수익률이 56.29%에 달했다. 지난 3년간의 수익률은 57.04%로 국내주식평펀드에서 상위 1% 안에 포함됐다. 연초이후(55.80%), 최근 1년간(51.76%)의 수익률도 기록적이다.
'한국의힘 주식형펀드'는 설정이후 수익률이 38.83%다. 연초이후(61.34%)와 최근 9개월(50.04%)의 수익률도 다른 주식형펀드에 비해 월등히 낫다. 같은기간 국내주식형펀드의 평균수익률은 연초이후가 40.14%, 34.99%다.
강 부사장이 말하는 투자비밀은 '철저히 기본에 충실'하고 '남들보다 한발 앞선 투자'를 하는 것이다.
기본에 충실하다는 것은 '기업분석'에 근간을 두라는 얘기다. 매일 아침 7시30분. 강 부사장은 10명 가량의 펀드매니저들과 회의를 한다. 이 시간에 시장얘기는 금물이다. 철저히 기업과 종목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
펀드매니저들은 기업방문도 하루일과에서 소화해야 한다. 하루에 1~2번, 일주일에는 10번의 회사의 미팅일정을 가져야 한다. 최근 영업환경, 실적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 등을 중심으로 꼼꼼히 살피고 분석해서 다음날 미팅자료로 활용한다.
"리서치에 바탕을 둡니다. 보텀업, 그리고 팀운용 체제입니다. 보텀업이 확률이 떨어진다고 보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올해 LG화학을 보세요. 화학업종은 전반적으로 부진했지만 LG화학만은 주가가 좋았죠? 이런 건 기업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투자할 수 없는 겁니다."
"아무리 뛰어난 펀드매니저도 독단에 빠질 수 있어요. 펀드운용이 펀드매니저1~2명의 선택에만 의지했다가 그 매니저가 그만두기라도 하면 어쩝니까? 팀운용 체제가 정답입니다. 물론 펀드의 스타일과 펀드매니저의 스타일을 맞춰야죠. 펀드투자자들에게 꾸준한 스타일과 흔들리지 않는 투자철학을 보여줘야 합니다. 원칙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만 꾸준한 성과도 보장할수 있어요."
남들보다 한발 앞선 투자도 이 같은 보텀업 전략에서 나왔다. 강 부사장은 지난 9월 정보기술(IT)과 자동차 종목들의 3분기 기대실적이 주가에 이미 반영됐다고 판단했다. 비중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수종목들을 꾸준히 사모았다. 이 같은 판단은 최근 IT와 자동차의 부진에도 수익률을 유지시켜주는 원동력이 됐다.
강 부사장은 지금과 같은 조정장세에 어떤 투자를 하고 있을까?
"앞으로 더블딥이나 주가급락은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경제의 기초체력인 펀더멘털이 예전보다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기업들도 불황에 훈련이 잘 되어 있고 투자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시장에는 다운사이드 리스크(하락할 염려)가 있어요. 하지만 올해 상승장에서는 버블(거품)이 없는 편이었고, 일반투자자들도 쉽사리 '흥분'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이 같은 긍정적인 면으로 볼 때 급락은 없을 겁니다."
지루한 조정장세만을 보이고 있는데 주식급락은 없단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투자에 새로 뛰어들어도 되는 시기냐고 되물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맘 편히 주식을 살 시기는 아닌 것 같아요. 또 주가 수준이 낮다고 무턱대고 사면 안됩니다. 다시말해 밸류에이션 투자는 무리입니다. 그래도 주식투자를 하려면 △내년 상반기의 실적이 현재 주가 수준보다 훨씬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 또 △주가가 더 빠져서 기업의 가치를 밑돈다고 판단되는 종목 등에 투자하세요."
20년차인 그가 언제까지 펀드운용을 할 지 궁금했다. "수명이 늘면서 노령인구가 증가하고 있고 이는 곧 고객도 오랫동안 투자한다는 의미죠. 사회가 변화무쌍할 수록 나이든 사람의 지혜가 필요하고 중요해질 겁니다. 언제까지라니요? 그만두랄 때까지 하고 싶죠."
치열한 운용의 전쟁터를 뒤로 하고 유유자적(悠悠自適)을 바라기보다는 끝까지 현역을 꿈꾸는 강신우 부사장. 그에게는 펀드매니저가 천직이었다.
글=한경닷컴 김하나 기자 hana@hankyung.com
사진=한경닷컴 양지웅 기자 yang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