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북극곰 같이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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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부터 약 2년간 삼성물산 모스크바 주재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당시 러시아는 고르바초프가 개혁 · 개방을 주도하는 가운데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15개 공화국으로 이뤄진 독립국가연합(CIS)으로 해체돼 가는 격변기였다.
부임 초 소련의 사회주의 한림원 고위 경제연구원에게서 들은 자조적인 얘기가 그 시절 소련을 상징했던 것 같다. 소련 사회와 경제에는 6가지 역설이 있다는 것이다. 첫째,모든 인민을 국가가 고용하고 연금까지 책임지지만 모든 사람은 준실업 상태이고 국가의 생산성은 바닥이다. 둘째,생산성이 바닥으로 떨어져도 계획경제상 수치는 항상 초과 달성이다. 셋째,계획경제 목표는 달성되지만 시장에는 상품이 태부족이다. 넷째,시장에는 상품이 태부족인데도 각 가정에 가보면 나름대로 생필품이 있다. 다섯째,가정에 생필품 공급이 이뤄지는데도 국민의 불만지수는 매우 높다. 여섯째,인민들은 항상 불만인데 선거만 하면 정부가 의도한 대로 찬성표를 던진다. 이 연구원이 소련을 이해하려면 이 6가지 역설을 잘 음미해 보아야 한다며 씁쓸한 미소를 짓던 기억이 난다.
놀라웠던 것은 이렇게 음울한 현실과 불안한 격변 속에서도 모스크바 시민들이 보이던 러시아 특유의 여유와 문화적 자긍심이다. 볼쇼이 발레,연주회 등 각종 음악 예술활동이 평시처럼 이루어졌음은 물론이고,찬 공기 속에 삼삼오오 저녁 산책을 하는 시민들의 모습이나,연회가 열리면 이방인에게 술을 권하는 모습에서도 순박한 여유가 보였다.
주재 기간에 러시아 경제인들과의 교류 과정에서 발견한 러시아인들의 감성과 술문화는 한국과 너무도 닮아 놀랐다. 그들은 한국인처럼 손님에게 술을 많이 권하고,손님이 대취하면 매우 좋아했다. 진정한 친구가 되려면 만취해 식탁 밑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뒹굴며 정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비즈니스 상담에 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방의 경우 손님이 떠날 때 헤어짐을 애석해하며 동구 밖까지 술상을 차려 나와 "나 파샤쇼크"란 건배 외침으로 헤어진다는 '미풍양속'이 있다. "나 파샤쇼크"는 '당신이 말에 오르니 마지막으로 건배하세'란 뜻을 담고 있다.
문화적으로는 푸시킨,톨스토이,도스토예프스키,차이코프스키 등 기라성 같은 예술인들이 많고 자긍심도 대단하다. 선배의 딸이 볼쇼이발레학교에 재학 중일 때는 후견인 역할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러시아는 이미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었는데,볼쇼이발레학교는 저녁 늦게까지 훈련하고 토요일에도 정규수업을 했다. 이런 모습들은 경제 수준으로만 평가했던 러시아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러시아는 시장경제로 바뀌면서 생산성이 많이 향상되고 우리나라와의 교류도 급증했다. 찬바람 부는 겨울이 오면 내게 '북극곰같이 살리라'는 모토를 심어준 러시아를 떠올린다.
박철원 에스텍시스템 회장 cwpark@s-tec.co.kr
부임 초 소련의 사회주의 한림원 고위 경제연구원에게서 들은 자조적인 얘기가 그 시절 소련을 상징했던 것 같다. 소련 사회와 경제에는 6가지 역설이 있다는 것이다. 첫째,모든 인민을 국가가 고용하고 연금까지 책임지지만 모든 사람은 준실업 상태이고 국가의 생산성은 바닥이다. 둘째,생산성이 바닥으로 떨어져도 계획경제상 수치는 항상 초과 달성이다. 셋째,계획경제 목표는 달성되지만 시장에는 상품이 태부족이다. 넷째,시장에는 상품이 태부족인데도 각 가정에 가보면 나름대로 생필품이 있다. 다섯째,가정에 생필품 공급이 이뤄지는데도 국민의 불만지수는 매우 높다. 여섯째,인민들은 항상 불만인데 선거만 하면 정부가 의도한 대로 찬성표를 던진다. 이 연구원이 소련을 이해하려면 이 6가지 역설을 잘 음미해 보아야 한다며 씁쓸한 미소를 짓던 기억이 난다.
놀라웠던 것은 이렇게 음울한 현실과 불안한 격변 속에서도 모스크바 시민들이 보이던 러시아 특유의 여유와 문화적 자긍심이다. 볼쇼이 발레,연주회 등 각종 음악 예술활동이 평시처럼 이루어졌음은 물론이고,찬 공기 속에 삼삼오오 저녁 산책을 하는 시민들의 모습이나,연회가 열리면 이방인에게 술을 권하는 모습에서도 순박한 여유가 보였다.
주재 기간에 러시아 경제인들과의 교류 과정에서 발견한 러시아인들의 감성과 술문화는 한국과 너무도 닮아 놀랐다. 그들은 한국인처럼 손님에게 술을 많이 권하고,손님이 대취하면 매우 좋아했다. 진정한 친구가 되려면 만취해 식탁 밑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뒹굴며 정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비즈니스 상담에 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방의 경우 손님이 떠날 때 헤어짐을 애석해하며 동구 밖까지 술상을 차려 나와 "나 파샤쇼크"란 건배 외침으로 헤어진다는 '미풍양속'이 있다. "나 파샤쇼크"는 '당신이 말에 오르니 마지막으로 건배하세'란 뜻을 담고 있다.
문화적으로는 푸시킨,톨스토이,도스토예프스키,차이코프스키 등 기라성 같은 예술인들이 많고 자긍심도 대단하다. 선배의 딸이 볼쇼이발레학교에 재학 중일 때는 후견인 역할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러시아는 이미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었는데,볼쇼이발레학교는 저녁 늦게까지 훈련하고 토요일에도 정규수업을 했다. 이런 모습들은 경제 수준으로만 평가했던 러시아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러시아는 시장경제로 바뀌면서 생산성이 많이 향상되고 우리나라와의 교류도 급증했다. 찬바람 부는 겨울이 오면 내게 '북극곰같이 살리라'는 모토를 심어준 러시아를 떠올린다.
박철원 에스텍시스템 회장 cwpark@s-te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