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소통과 호통' 기업문화에 정답은 없다…믿음만 있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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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 극의 기업문화
'연필을 굴려 승진자를 결정하고,직원들이 불편할까봐 사장은 공장을 돌아다니지 않는 회사.''밥 빨리 먹는 직원을 우선 뽑고,직원들에게 호통치는 것을 경영철칙으로 삼는 회사.'
독특한 기업문화로 유명한 일본 미라이공업과 일본전산 얘기다. 미라이공업은 '샐러리맨의 천국'으로 불린다. 반면 일본전산은 하루 16시간 근무하는 '직장인의 지옥'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두 회사의 문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일본의 장기불황에도 일본전산은 성장을 거듭했고,미라이는 꾸준한 실적을 내왔기 때문이다. 불황에도 탄탄한 실적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독특한 문화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양 극단의 기업문화를 갖고 있는 두 기업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직원의 잠재력에 대한 믿음'이라는 점은 이채롭다. 기업 지배구조에 정답이 없듯 기업문화에도 정답은 없다는 말을 방증하는 듯하다.
◆'즉시,반드시,될 때까지 한다. '
다소 저돌적인 이 문구는 모터를 만드는 일본전산의 슬로건이다. 일본전산은 1973년 가정집 창고에서 시작해 36년 만에 140여개 계열사에 13만명의 임직원을 둔 그룹으로 성장했다. 작년 회사 매출은 6134억엔,영업이익은 518억엔에 달했다. 10년 전에 비해 매출은 4.42배,영업이익은 3.59배나 늘었다. 불황기에도 질주에 가까운 성장을 한 것이다.
나가모리 시게노부 사장(65)은 성장의 비결을 '삼류를 일류로 끌어올린 기업문화'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나가모리 사장이 일류대학을 졸업하지 않았거나 특별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이른바 '삼류'인재를 뽑기 시작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갓 설립한 이름 없는 회사에 일류 인재가 지원할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가모리 사장은 그 속에서도 알맹이를 골라내는 기준을 세웠다. 출신학교,성적 같은 겉포장보다 '동기부여를 해주면 얼마나 열정을 불사를 수 있는가'라는 잠재성에 주목했다. 피터 드러커의 영향도 컸다. '조직의 우열은 평범한 인간을 데리고 비범한 것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다'는 말을 믿고 실행했다.
그래서 신입사원 채용방식도 유별났다. 자신감이 있는지를 보기 위해 '큰 소리로 말하기' 시험을 치르고 밑바닥 일을 할 수 있나 보기 위해 '화장실 청소'를 시켰다. 포기하지 않는 투지를 알아보기 위해 '오래달리기'도 시켰다.
직원 채용 이후엔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였다. 머리 좋은 사람을 이기기 위해서는 배로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놓은 것이 하루 16시간 근무하기.보통 사람들이 8시간 일한다고 가정해 딱 두 배인 16시간을 일해야 경쟁자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가모리 사장의 리더십은 '호통 리더십'으로 불린다. 실패한 일에 대해서는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호통친다. 그는 "호통을 치려면 평소의 4배의 마음관리가 필요하다. 호통은 관심과 애정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호통을 통해 실패 자체를 질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험을 축적한 데 대한 가점(加點)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일본전산은 이런 문화를 기반으로 2015년 매출 2조엔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일하지 말아라"
1990년 11월 어느 날 미라이공업 직원들은 가족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회사창립 25주년 깜짝 이벤트였다. 여행은 3박4일이었지만 앞뒤 휴가를 합치면 9일이었다. 납품 차질을 걱정한 직원들은 교대근무 등의 아이디어를 냈다. 하지만 야마다 아키로 사장(78)은 "교대근무 그런 거 하지 마.그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이야"라며 반대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고객들에게 사과 메시지와 함께 창고열쇠를 맡기는 것이었다. 그달 미라이는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을 올렸다.
미라이공업의 경영은 이런 식이다. 우선 직원들을 많이 놀게 해준다. 야마다 사장의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당근은 일하지 말라는 것이다. 직원들이 행복하게 직장을 다녀야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는 지론 때문이다. 미라이공업 직원들은 5년에 한 번 가족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가고 연말연시 휴가는 19일이나 된다. 근무시간은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4시45분까지이며 잔업,휴일근무는 없다.
많이 놀게 해주면서 일은 모두 직원들에게 맡긴다. 수십 개 사업장 중 야마다 사장이 돌아본 곳은 고작 5개 정도밖에 안 된다. 근무시간 중에는 작업장에 나가지 않는다. "내가 가면 방해만 돼"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승진대상자를 결정할 때 명단을 접시에 담아놓고 선풍기로 날려 멀리 날아가는 사람을 택하거나,연필을 쓰러뜨려 심이 가리키는 사람을 승진자로 결정하는 것은 유명한 사례다.
그는 "사람들은 모두 같아서 선풍기 승진을 시켜도 잘해.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해주면 돼"라고 말한다. 미라이의 또 하나의 독특한 문화는 '남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야마다 사장은 "어디든 있는 것은 안 된다. 없는 것을 생각하라"고 말한다. 회사 곳곳에는 '항상 생각하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미라이가 만드는 1만6000건의 상품 중 80%는 직원들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다.
미라이에서 낭비는 금기다. 야마다 사장은 일요일에 가끔씩 나와 '만지지 마 바보야'라는 종이를 이면지에 써 전기 스위치 근처에 붙이고 다닌다. 쓸데없는 등은 켜지 말라는 것이다. 복사기도 2007년까지 본사에 단 한 대밖에 없었다. 직원들이 불편해하기는커녕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자리잡았다.
김용준/김현예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