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저가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미국시장에서도 통할 고급 세단과 브랜드를 개발하라."

1983년 창업 50주년을 맞은 도요타의 중역 회의실에 회장을 비롯한 주요 임원들이 모두 모였다. 이 자리에서 도요타의 50년을 이끌고 나갈 역사적인 결정이 내려졌다. 도요타의 별도 브랜드인 렉서스를 만든다는 것이다.

1980년대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중 · 저가차로 재미를 본 도요타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결론은 치열한 경쟁을 피하면서 이익을 많이 남길 수 있는 블루오션인 럭셔리시장으로의 진출이었다.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국 소비자들의 뇌리에 뿌리박힌 '저렴하고 대중적인 일본차'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비용을 얼마만큼 투입할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포기할 수는 없었다. 도요타는 미국 시장에 대한 조사부터 다시 시작했다. 럭셔리 세단을 구입하는 소비자는 어떤 사람들인지,자동차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어떤 자동차를 원하는지 차근차근 파악해 나갔다.

도요타의 꼼꼼한 시장 조사와 관련한 재미있는 비화도 있다. 도요타는 당시 차량 설계와 디자인 등 모델 개발을 담당하는 실무진 20명을 선발해 1년간 유급 휴가를 줬다. 이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상류 사회와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경제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1년 후 도요타는 미국 상류 문화를 즐기고 온 실무진에 다름 아닌 그들 스스로가 진정으로 타고 싶은 차를 개발할 것을 주문했다. 세계 상류층의 경험과 럭셔리한 생활을 누리다 온 실무진이 주요 소비층과 일치할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1989년 도요타는 4000여명의 인력을 투입해 1000여개의 엔진을 실험하고 450여대의 시험차를 제작하는 산고 끝에 LS 시리즈의 첫 모델인 LS400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시장에 내놓기 전까지 'LEXUS'(렉서스)가 도요타의 프리미엄 브랜드란 사실도 철저히 숨겼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LS400은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등 경쟁 차종과 견줘도 손색이 없는 성능을 갖췄다. 렉서스만의 안락함과 정숙성은 미국 소비자들이 독일 고급 세단에선 맛보지 못한 만족감을 줬다. 가격 역시 경쟁차보다 저렴해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일본 특유의 장인 문화와 완벽주의가 만들어 낸 LS시리즈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렉서스의 최고급 기함으로 자리하고 있다.

최욱 수입차포털 갯차 대표 choiwook@getch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