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매니저의 투자비밀⑨]롯데칠성으로 400% 수익낸 가치투자 전도사 이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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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에서 그의 이름 석 자는 가치투자의 명품 브랜드다. 어떤 이들은 그를 '가치투자의 전도사', '한국의 워런 버핏'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 주인공은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이하 한국밸류운용)의 CIO(최고투자책임자)를 맡고 있는 이채원 부사장(45ㆍ사진)이다.
◆ "이상형은 피터 린치, 이상적인 종목은 아모레퍼시픽"
이 부사장은 '철새'가 많은 증권시장에서는 드물게 20년이 넘도록 같은 그룹 계열에 계속 몸담고 있다. 중앙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와 1988년 동원증권(한국투자증권과 합병)의 전신인 한신증권 공채 13기로 증권시장에 발을 들인 후 한국투자증권 자산운용본부장 등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1998년 국내 최초의 가치투자 펀드인 '밸류 이채원 펀드'를 출시했고, 2000년 동원증권의 고유 계정 운용을 맡아 2006년 초까지 누적수익률 435%를 거뒀다. 2006년 한국투자증권은 한국밸류운용을 설립, 그의 지휘 아래 10년 장기투자를 표방한 '한국밸류10년투자펀드(이하 10년펀드)'를 만들었다.
그는 종종 가치투자의 '대명사'인 워런 버핏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그는 손사래를 쳤다.
"워런 버핏은 위대한 성과를 거둔 투자자지만, 펀드매니저가 아닌 사업가입니다. 가장 닮고 싶은 펀드매니저라면 마젤란 펀드를 운용한 피터 린치입니다. 제가 스승으로 삼고 싶은 분은 '가치투자의 아버지'인 벤저민 그레이엄입니다."
피터 린치가 주식에 빠져 살았듯, 이 부사장의 관심사도 주식에 집중돼 있다.
"처음 증권업계에 들어와 영업점에서 일을 시작했던 때엔 주식에 미쳐있었습니다. 당시 상장기업 편람에 실린 600여 개의 모든 종목 코드를 다 외우고 있었죠."
지금까지도 이 부사장은 대부분의 시간을 주식에 쏟는다. 그는 독서 외에 별다른 취미를 갖고 있지 않다. 사회생활을 위해 필수적인 운동이 되어버린 골프도 치지 않고 심지어 운전도 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차를 제공하지 않던 시절에는 택시를 타고 다니며 그 시간을 명상하는 시간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 부사장을 주식으로 치면 어떤 종목에 해당할까. 질문에 다소 난처한 기색을 보이던 그는 '이상형'으로 대답했다.
"아모레퍼시픽 같은 인물이 되고 싶습니다. 구조조정이라는 역경을 극복하고 한 길을 줄곧 걸어 온 훌륭한 기업입니다."
◆ 가치투자, 싸게 사서 이 악물고 기다려야
이 부사장은 자신이 가치투자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소심하고 겁 많은 그가 시장에서 살아남아 '잃지 않는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가치투자만한 방법이 없었다는 게 이 부사장의 설명이다.
그가 처음부터 가치투자로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1998년 12월 선보인 '밸류 이채원 펀드'는 1년도 되지 않아 127%의 수익률을 달성했으나 1999년 시작된 기술주 버블을 겪으며 수익률이 하락했다. 투자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회사 안팎의 압박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이 부사장이 회사를 떠날까 고민할 정도였다.
이 부사장은 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치투자는 장기투자가 아니면 시작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에 10년펀드에는 3년이라는 환매 제한기간을 설정했다. 이 기간은 일반적인 주식형 펀드의 운용기간에 맞먹는 수준이다.
가치투자의 특성 때문에 환매제한 기간을 가능한 한 길게 둬야 한다고 이 부사장은 설명한다.
"가치투자는 가치와 가격의 차이를 취하는 투자방법입니다. 주가가 저평가됐을 때 사서 내재가치에 접근하면 제 값을 받고 파는 단순한 전략이지요.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게 투자환경입니다."
투자환경이 받쳐주지 않으면 가치투자를 할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한국 시장에서는 10년 뒤에 10배 오를 가치주를 보유하고 있어도 단기 수익률이 시장을 따라가지 못하면 펀드매니저가 고객들의 항의와 회사의 압박에 시달려 투자철학을 바꿀 수밖에 없다고 그는 꼬집었다.
"투자환경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경영진과 고객입니다. 이미 한국밸류운용은 가치투자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경영진을 갖췄습니다. 또한 국내 최대 환매 제한기간을 설정, 고객들이 사전에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10년펀드의 벤치마크(펀드수익률을 비교평가하는 지표) 기준은 코스피지수가 아닌 '금리'다. 벤치마크는 CD(양도성예금증서) 금리와 코스피200지수 등을 섞어 만들었다.
"10년투자펀드는 한국 주식시장에서 코스피 지수를 추종하지 않는 유일한 펀드입니다. 금리+알파(α)의 형태로 목표수익을 설정했는데, 국고채 3년물 금리의 두 배 가량이 목표입니다. 10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연복리 8∼10% 정도의 수익률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는 끊임없이 투자자들과 소통하면서 보다 나은 가치투자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자산운용보고서를 통해 "낮은 수익률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하기도 했다.
자산운용보고서는 운용 기간 동안의 성과와 사고판 종목 나열에 그치지 않고, 편입 종목 하나하나에 대한 정보와 전망을 담고 있다. 책자로 발간하던 초기에는 그 분량이 140여 쪽에 달해 주식시장의 이목을 끌었고, 이제는 비용 등의 문제로 인해 CD로 배포하고 있다.
"펀드매니저들은 운용보고서 말고는 투자자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지난 4월 3년 동안의 운용 성과를 보고하는 운용보고대회를 개최한 이유도 투자자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서울 서초동 센트럴시티에서 열린 운용보고대회에는 1000여명의 투자자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본인을 소심하다 자평한 이 부사장은 특유의 뚝심으로 한국의 가치투자 트렌드의 새 장을 열고 있다.
◆ 진흙 속에서도 진주만 골라낸다
이 부사장은 자신이 실패와 성공을 함께 겪은 종목으로 롯데칠성을 떠올렸다.
'밸류 이채원 펀드'를 운용하던 이 부사장(당시 동원투자신탁 주식운용본부장)은 1998년부터 롯데칠성을 8만원대에서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IT(정보기술)주 버블이 일어나면서 롯데칠성은 5만원대까지 떨어졌고, IT주를 매입하라는 투자자들의 항의와 스트레스로 인해 결국 그는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회사 측의 배려로 동원증권 고유계정 운용을 맡게 된 후, 그는 다시 롯데칠성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최대주주인 신격호 회장의 당시 지분 17.4%보다 많은 18.4%에 이르는 지분율을 기록, 회사로부터 주식 매입 목적에 대한 문의를 받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부사장의 믿음대로 저평가됐던 롯데칠성 주가가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롯데칠성으로 총 400%의 수익률을 거뒀다. 이후 롯데칠성 주가는 100만원을 훌쩍 넘겨 2007년 160만원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 부사장은 펀드 투자 종목을 고를 때 철저한 상향식(bottom up) 분석을 통해 종목을 선정한다. 분기 혹은 1년에 한 번씩 저PER(주가수익비율),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상위 100종목 등을 뽑아 검토하는 것 외에는 하향식(top down) 분석은 채택하지 않는다.
"하향식 분석이 적중하기 위해서는 국제 유가, 환율 등 전 세계의 거시경제 흐름을 꿰뚫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다만 펀드의 벤치마크가 '금리'이기 때문에 금리만은 고려합니다.
이에 상향식 분석으로 기업의 '안정성+수익성+성장성'인 내재가치를 정확하게 파악한 후 이와 비교해 보다 싼 종목을 고르는 데 더 집중합니다.
사실 세상의 모든 투자는 가치투자입니다. 미래에셋증권 역시 가치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는 성장성에 보다 중점을 두는 '성장 가치투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재가치 구성 요인인 안정성·수익성·성장성 가운데 이 부사장이 보다 가중치를 두는 요인은 안정성과 수익성이다. 철저한 펀더멘털(기초체력) 분석을 통해 비즈니스 모델과 사업의 질을 진단한다. 본업의 경쟁력 덕이 아닌 환율 변동과 일시적인 업황 호조 등으로 인해 낸 깜짝 실적은 회사의 경쟁력이 될 수 없다는 게 이 부사장의 지적이다.
아울러 이미 시장에 잘 알려진 종목들은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소외 종목을 찾아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한국밸류운용은 펀드매니저가 업종별 리서치(종목 분석) 담당을 겸하고 있다. 이들은 저평가된 종목을 찾아내기 위해 매일 전국의 회사들을 찾아다닌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여는 회의에 펀드매니저들의 절반도 채 참석하지 못할 정도다.
이 부사장이 기업을 탐방할 때 중요하게 보는 포인트는 무엇일까. 그는 사무실 분위기 등 단편적인 사실들은 기업평가에 크게 반영하지 않는다. 책임자를 만나 듣는 사업 관련 사항이 가장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탐방 시 직원들의 표정, 화장실 등 눈에 보이는 사항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소한 사항에 치중하다 보면 더 중요한 것을 지나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30년 된 철제책장을 아직까지 쓰는 회사도 있지만, 이 같이 검소한 것이 장점이 아닌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CEO(최고경영자) 등 사업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만나 궁금한 사항에 대해 직접 묻고 평가합니다. 담당자가 거짓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펀드의 경우 한 종목당 3년 가량을 지켜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면 곧 들통나기 마련입니다."
이 부사장은 손절매는 없다고 단언했다.
"보유종목 매도는 해당 종목의 주가가 내재가치에 가까이 다다랐을 때, 혹은 기업가치에 중대한 변고가 생겼을 때 등에만 고려합니다. 한 종목당 10년간 편입을 원칙으로 삼고 그에 걸맞은 종목을 골라 운용합니다."
이 부사장은 가치투자가 어렵기 때문에 영원히 '마이너'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면서도, 가치투자의 미래는 밝다고 강조했다.
"가치투자는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행동을 취하기 때문에 너무나 고통스럽고 지루한 게임입니다. 저는 절대로 가치투자를 권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심리' 때문에라도 가치투자가 널리 퍼지기는 힘들 겁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살아남겠지요.
가치투자는 끊임없이 진화했습니다. 1974년 벤저민 그레이엄의 '증권분석'에서 시작된 전통적인 가치투자는 밸류에이션(실적대비 주가수준) 낮은 종목이 중심이었지만, 1980년대 워런 버핏이 등장하면서 '프랜차이즈 밸류(독점판매권)'가 핵심으로 자리잡은 신 가치투자가 등장했습니다."
지난해 한국밸류운용의 펀드매니저를 뽑을 때도 1순위 요건을 '가치투자에 맞는 사람인가'에 뒀다고 이 부사장은 귀띔했다. 실제로 그는 대학 가치투자 동아리 출신을 중심으로 신입 펀드매니저를 영입했다.
현재 이 부사장과 펀드매니저 13인이 운용하는 10년펀드의 보유종목 수는 130개 가량이다. 이 같이 많은 종목들의 관리는 펀드매니저 일인당 맡고 있는 운용펀드 수가 적기에 가능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68개 자산운용사의 펀드 매니저들이 1인당 관리하고 있는 펀드 수는 평균 6.6개다. 그러나 한국밸류운용의 경우 1인당 0.3개에 불과하다.
10년펀드는 가치주 펀드인 만큼 장기투자 시 진가를 발휘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이 펀드의 최근 3년 수익률은 35.21%를 기록했다. 올해 대형주 중심의 장세로 인해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 펀드의 평균 수익률인 24.23%를 크게 웃돌았다.
◆ "나에게 맞는 투자방법을 골라라"
이채원 부사장이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투자자들에게 해 줄 조언은 '개인의 강점을 살려 자신에게 맞는 투자 방법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들은 고유의 강점을 살려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질 수밖에 없는 싸움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관투자자와 외국인은 규모의 경제, 분석력 측면에서 개인투자자들보다 월등합니다.
개인들의 강점은 여유 자금을 이용해 주식투자를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기관들은 고객의 환매 요구가 나오면 바로 주식을 팔아야 하지만 개인들은 여유자금을 굴릴 수 있어 시간상에서 유리합니다. 또한 종목선택의 자유도 갖추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맞는 투자를 해야한다고 이 부사장은 조언했다. 투자자 본인의 성향을 파악하고 가치투자, 모멘텀 투자 등의 투자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충분한 공부와 분석을 통해 시장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 정도의 자신감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세상에 누구에게나 맞는 완벽한 투자 기법은 없습니다. 자신이 어떤 강점을 갖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본인이 IT업체에 근무한다면 자신이 알고 있는 IT 관련 지식을 활용, 종목을 고르면 됩니다. 개인들이 자기가 갖고 있는 장점을 버리고 자꾸만 잘못된 정보에 현혹되는 경향이 있는데, 주의해야 합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한 공부와 연구라고 강조한다. 최근 시장의 변동성이 커져 투자자들의 불안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런 때 일수록 분석을 통해 종목의 가치를 정확히 산정, 장세에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펀드매니저라는 청운의 꿈을 꾸는 청년들에게도 선배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최근 증권업의 인기가 높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턱대로 자산운용업에 뛰어들려고 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우려됩니다. 우선 본인의 적성이 맞는지 혹은 자질을 갖췄는지 생각해보세요. 반드시 한 가지는 갖추고 있어야만 합니다.
펀드매니저를 할 결심이 섰다면, 눈높이를 낮춰서라도 일단 업계에 들어오는 게 중요합니다. 제도권에서 활약하는 펀드매니저는 400여 명에 불과해요. 일을 배울 수 있고, 열심히 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들어가십시오. 그 다음에는 열심히 하면 돋보이게 되어 있어요."
이 부사장이 32세에 펀드매니저라는 꿈을 찾은 지도 10여 년이 흘렀다. 남은 목표는 무엇일까.
"당초 펀드를 설정할 때 고객들에게 10년의 시간을 약속했습니다. 3년여의 시간이 지났으니 남은 기간 동안 약속한 수익을 달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식운용을 가능한 한 오래 하고 싶습니다. 60세가 될 때 까지는 운용하는 자리에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글=한경닷컴 오정민 기자 blooming@
사진=한경닷컴 양지웅 기자 yangdoo@
◆ "이상형은 피터 린치, 이상적인 종목은 아모레퍼시픽"
이 부사장은 '철새'가 많은 증권시장에서는 드물게 20년이 넘도록 같은 그룹 계열에 계속 몸담고 있다. 중앙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와 1988년 동원증권(한국투자증권과 합병)의 전신인 한신증권 공채 13기로 증권시장에 발을 들인 후 한국투자증권 자산운용본부장 등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1998년 국내 최초의 가치투자 펀드인 '밸류 이채원 펀드'를 출시했고, 2000년 동원증권의 고유 계정 운용을 맡아 2006년 초까지 누적수익률 435%를 거뒀다. 2006년 한국투자증권은 한국밸류운용을 설립, 그의 지휘 아래 10년 장기투자를 표방한 '한국밸류10년투자펀드(이하 10년펀드)'를 만들었다.
그는 종종 가치투자의 '대명사'인 워런 버핏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그는 손사래를 쳤다.
"워런 버핏은 위대한 성과를 거둔 투자자지만, 펀드매니저가 아닌 사업가입니다. 가장 닮고 싶은 펀드매니저라면 마젤란 펀드를 운용한 피터 린치입니다. 제가 스승으로 삼고 싶은 분은 '가치투자의 아버지'인 벤저민 그레이엄입니다."
피터 린치가 주식에 빠져 살았듯, 이 부사장의 관심사도 주식에 집중돼 있다.
"처음 증권업계에 들어와 영업점에서 일을 시작했던 때엔 주식에 미쳐있었습니다. 당시 상장기업 편람에 실린 600여 개의 모든 종목 코드를 다 외우고 있었죠."
지금까지도 이 부사장은 대부분의 시간을 주식에 쏟는다. 그는 독서 외에 별다른 취미를 갖고 있지 않다. 사회생활을 위해 필수적인 운동이 되어버린 골프도 치지 않고 심지어 운전도 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차를 제공하지 않던 시절에는 택시를 타고 다니며 그 시간을 명상하는 시간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 부사장을 주식으로 치면 어떤 종목에 해당할까. 질문에 다소 난처한 기색을 보이던 그는 '이상형'으로 대답했다.
"아모레퍼시픽 같은 인물이 되고 싶습니다. 구조조정이라는 역경을 극복하고 한 길을 줄곧 걸어 온 훌륭한 기업입니다."
◆ 가치투자, 싸게 사서 이 악물고 기다려야
이 부사장은 자신이 가치투자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소심하고 겁 많은 그가 시장에서 살아남아 '잃지 않는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가치투자만한 방법이 없었다는 게 이 부사장의 설명이다.
그가 처음부터 가치투자로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1998년 12월 선보인 '밸류 이채원 펀드'는 1년도 되지 않아 127%의 수익률을 달성했으나 1999년 시작된 기술주 버블을 겪으며 수익률이 하락했다. 투자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회사 안팎의 압박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이 부사장이 회사를 떠날까 고민할 정도였다.
이 부사장은 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치투자는 장기투자가 아니면 시작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에 10년펀드에는 3년이라는 환매 제한기간을 설정했다. 이 기간은 일반적인 주식형 펀드의 운용기간에 맞먹는 수준이다.
가치투자의 특성 때문에 환매제한 기간을 가능한 한 길게 둬야 한다고 이 부사장은 설명한다.
"가치투자는 가치와 가격의 차이를 취하는 투자방법입니다. 주가가 저평가됐을 때 사서 내재가치에 접근하면 제 값을 받고 파는 단순한 전략이지요.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게 투자환경입니다."
투자환경이 받쳐주지 않으면 가치투자를 할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한국 시장에서는 10년 뒤에 10배 오를 가치주를 보유하고 있어도 단기 수익률이 시장을 따라가지 못하면 펀드매니저가 고객들의 항의와 회사의 압박에 시달려 투자철학을 바꿀 수밖에 없다고 그는 꼬집었다.
"투자환경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경영진과 고객입니다. 이미 한국밸류운용은 가치투자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경영진을 갖췄습니다. 또한 국내 최대 환매 제한기간을 설정, 고객들이 사전에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10년펀드의 벤치마크(펀드수익률을 비교평가하는 지표) 기준은 코스피지수가 아닌 '금리'다. 벤치마크는 CD(양도성예금증서) 금리와 코스피200지수 등을 섞어 만들었다.
"10년투자펀드는 한국 주식시장에서 코스피 지수를 추종하지 않는 유일한 펀드입니다. 금리+알파(α)의 형태로 목표수익을 설정했는데, 국고채 3년물 금리의 두 배 가량이 목표입니다. 10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연복리 8∼10% 정도의 수익률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는 끊임없이 투자자들과 소통하면서 보다 나은 가치투자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자산운용보고서를 통해 "낮은 수익률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하기도 했다.
자산운용보고서는 운용 기간 동안의 성과와 사고판 종목 나열에 그치지 않고, 편입 종목 하나하나에 대한 정보와 전망을 담고 있다. 책자로 발간하던 초기에는 그 분량이 140여 쪽에 달해 주식시장의 이목을 끌었고, 이제는 비용 등의 문제로 인해 CD로 배포하고 있다.
"펀드매니저들은 운용보고서 말고는 투자자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지난 4월 3년 동안의 운용 성과를 보고하는 운용보고대회를 개최한 이유도 투자자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서울 서초동 센트럴시티에서 열린 운용보고대회에는 1000여명의 투자자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본인을 소심하다 자평한 이 부사장은 특유의 뚝심으로 한국의 가치투자 트렌드의 새 장을 열고 있다.
◆ 진흙 속에서도 진주만 골라낸다
이 부사장은 자신이 실패와 성공을 함께 겪은 종목으로 롯데칠성을 떠올렸다.
'밸류 이채원 펀드'를 운용하던 이 부사장(당시 동원투자신탁 주식운용본부장)은 1998년부터 롯데칠성을 8만원대에서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IT(정보기술)주 버블이 일어나면서 롯데칠성은 5만원대까지 떨어졌고, IT주를 매입하라는 투자자들의 항의와 스트레스로 인해 결국 그는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회사 측의 배려로 동원증권 고유계정 운용을 맡게 된 후, 그는 다시 롯데칠성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최대주주인 신격호 회장의 당시 지분 17.4%보다 많은 18.4%에 이르는 지분율을 기록, 회사로부터 주식 매입 목적에 대한 문의를 받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부사장의 믿음대로 저평가됐던 롯데칠성 주가가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롯데칠성으로 총 400%의 수익률을 거뒀다. 이후 롯데칠성 주가는 100만원을 훌쩍 넘겨 2007년 160만원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 부사장은 펀드 투자 종목을 고를 때 철저한 상향식(bottom up) 분석을 통해 종목을 선정한다. 분기 혹은 1년에 한 번씩 저PER(주가수익비율),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상위 100종목 등을 뽑아 검토하는 것 외에는 하향식(top down) 분석은 채택하지 않는다.
"하향식 분석이 적중하기 위해서는 국제 유가, 환율 등 전 세계의 거시경제 흐름을 꿰뚫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다만 펀드의 벤치마크가 '금리'이기 때문에 금리만은 고려합니다.
이에 상향식 분석으로 기업의 '안정성+수익성+성장성'인 내재가치를 정확하게 파악한 후 이와 비교해 보다 싼 종목을 고르는 데 더 집중합니다.
사실 세상의 모든 투자는 가치투자입니다. 미래에셋증권 역시 가치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는 성장성에 보다 중점을 두는 '성장 가치투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재가치 구성 요인인 안정성·수익성·성장성 가운데 이 부사장이 보다 가중치를 두는 요인은 안정성과 수익성이다. 철저한 펀더멘털(기초체력) 분석을 통해 비즈니스 모델과 사업의 질을 진단한다. 본업의 경쟁력 덕이 아닌 환율 변동과 일시적인 업황 호조 등으로 인해 낸 깜짝 실적은 회사의 경쟁력이 될 수 없다는 게 이 부사장의 지적이다.
아울러 이미 시장에 잘 알려진 종목들은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소외 종목을 찾아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한국밸류운용은 펀드매니저가 업종별 리서치(종목 분석) 담당을 겸하고 있다. 이들은 저평가된 종목을 찾아내기 위해 매일 전국의 회사들을 찾아다닌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여는 회의에 펀드매니저들의 절반도 채 참석하지 못할 정도다.
이 부사장이 기업을 탐방할 때 중요하게 보는 포인트는 무엇일까. 그는 사무실 분위기 등 단편적인 사실들은 기업평가에 크게 반영하지 않는다. 책임자를 만나 듣는 사업 관련 사항이 가장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탐방 시 직원들의 표정, 화장실 등 눈에 보이는 사항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소한 사항에 치중하다 보면 더 중요한 것을 지나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30년 된 철제책장을 아직까지 쓰는 회사도 있지만, 이 같이 검소한 것이 장점이 아닌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CEO(최고경영자) 등 사업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만나 궁금한 사항에 대해 직접 묻고 평가합니다. 담당자가 거짓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펀드의 경우 한 종목당 3년 가량을 지켜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면 곧 들통나기 마련입니다."
이 부사장은 손절매는 없다고 단언했다.
"보유종목 매도는 해당 종목의 주가가 내재가치에 가까이 다다랐을 때, 혹은 기업가치에 중대한 변고가 생겼을 때 등에만 고려합니다. 한 종목당 10년간 편입을 원칙으로 삼고 그에 걸맞은 종목을 골라 운용합니다."
이 부사장은 가치투자가 어렵기 때문에 영원히 '마이너'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면서도, 가치투자의 미래는 밝다고 강조했다.
"가치투자는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행동을 취하기 때문에 너무나 고통스럽고 지루한 게임입니다. 저는 절대로 가치투자를 권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심리' 때문에라도 가치투자가 널리 퍼지기는 힘들 겁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살아남겠지요.
가치투자는 끊임없이 진화했습니다. 1974년 벤저민 그레이엄의 '증권분석'에서 시작된 전통적인 가치투자는 밸류에이션(실적대비 주가수준) 낮은 종목이 중심이었지만, 1980년대 워런 버핏이 등장하면서 '프랜차이즈 밸류(독점판매권)'가 핵심으로 자리잡은 신 가치투자가 등장했습니다."
지난해 한국밸류운용의 펀드매니저를 뽑을 때도 1순위 요건을 '가치투자에 맞는 사람인가'에 뒀다고 이 부사장은 귀띔했다. 실제로 그는 대학 가치투자 동아리 출신을 중심으로 신입 펀드매니저를 영입했다.
현재 이 부사장과 펀드매니저 13인이 운용하는 10년펀드의 보유종목 수는 130개 가량이다. 이 같이 많은 종목들의 관리는 펀드매니저 일인당 맡고 있는 운용펀드 수가 적기에 가능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68개 자산운용사의 펀드 매니저들이 1인당 관리하고 있는 펀드 수는 평균 6.6개다. 그러나 한국밸류운용의 경우 1인당 0.3개에 불과하다.
10년펀드는 가치주 펀드인 만큼 장기투자 시 진가를 발휘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이 펀드의 최근 3년 수익률은 35.21%를 기록했다. 올해 대형주 중심의 장세로 인해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 펀드의 평균 수익률인 24.23%를 크게 웃돌았다.
◆ "나에게 맞는 투자방법을 골라라"
이채원 부사장이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투자자들에게 해 줄 조언은 '개인의 강점을 살려 자신에게 맞는 투자 방법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들은 고유의 강점을 살려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질 수밖에 없는 싸움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관투자자와 외국인은 규모의 경제, 분석력 측면에서 개인투자자들보다 월등합니다.
개인들의 강점은 여유 자금을 이용해 주식투자를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기관들은 고객의 환매 요구가 나오면 바로 주식을 팔아야 하지만 개인들은 여유자금을 굴릴 수 있어 시간상에서 유리합니다. 또한 종목선택의 자유도 갖추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맞는 투자를 해야한다고 이 부사장은 조언했다. 투자자 본인의 성향을 파악하고 가치투자, 모멘텀 투자 등의 투자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충분한 공부와 분석을 통해 시장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 정도의 자신감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세상에 누구에게나 맞는 완벽한 투자 기법은 없습니다. 자신이 어떤 강점을 갖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본인이 IT업체에 근무한다면 자신이 알고 있는 IT 관련 지식을 활용, 종목을 고르면 됩니다. 개인들이 자기가 갖고 있는 장점을 버리고 자꾸만 잘못된 정보에 현혹되는 경향이 있는데, 주의해야 합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한 공부와 연구라고 강조한다. 최근 시장의 변동성이 커져 투자자들의 불안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런 때 일수록 분석을 통해 종목의 가치를 정확히 산정, 장세에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펀드매니저라는 청운의 꿈을 꾸는 청년들에게도 선배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최근 증권업의 인기가 높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턱대로 자산운용업에 뛰어들려고 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우려됩니다. 우선 본인의 적성이 맞는지 혹은 자질을 갖췄는지 생각해보세요. 반드시 한 가지는 갖추고 있어야만 합니다.
펀드매니저를 할 결심이 섰다면, 눈높이를 낮춰서라도 일단 업계에 들어오는 게 중요합니다. 제도권에서 활약하는 펀드매니저는 400여 명에 불과해요. 일을 배울 수 있고, 열심히 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들어가십시오. 그 다음에는 열심히 하면 돋보이게 되어 있어요."
이 부사장이 32세에 펀드매니저라는 꿈을 찾은 지도 10여 년이 흘렀다. 남은 목표는 무엇일까.
"당초 펀드를 설정할 때 고객들에게 10년의 시간을 약속했습니다. 3년여의 시간이 지났으니 남은 기간 동안 약속한 수익을 달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식운용을 가능한 한 오래 하고 싶습니다. 60세가 될 때 까지는 운용하는 자리에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글=한경닷컴 오정민 기자 blooming@
사진=한경닷컴 양지웅 기자 yangd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