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를 두고 상복이 많은 작가라고들 한다. 갓 마흔에 이른 소설가가 대산문학상,동인문학상,황순원문학상,이상문학상 등 현재 문단 최고 권위의 문학상들을 수상했다면 그렇게 기억될 만도 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가 처음부터 이런 삶을 꿈꾸어 온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아니,처음은 엉뚱했다고 할 만하다. 비교적 김연수의 초기작에 속하는 단편 '스무 살'에 이 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소설에 따르면,작가는 1989년 대학 신입생이 된다. 그리고 고향 김천을 떠나 서울로 올라온다. 원했던 대학에 합격한 것은 아니다.

그의 어릴 적부터의 소원은 '소백산 천문대'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밤에는 별을 보고 낮에는 책을 읽다가 6개월에 한 번씩 산에서 내려오는 삶,그게 그가 꿈꾸어 온 인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오래된 꿈이 1988년 크리스마스 가까운 어느 날,그가 꼭 들어가리라고 믿었던 한 대학의 천문학과에 불합격하면서 산산조각난다.

어떻게 하겠나. 그 당시 대학에 떨어진 다른 많은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그 역시 재수를 하기 위해 종로학원에 등록한다. 그러다 떨어질 생각을 하고 후기 가운데 가장 좋다는 대학의 영문과에 원서를 낸다. 그리고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채,시험을 치른다. 그래도 붙는다면 천문학과가 아니라 영문학과에 다니라는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그 시험에 붙었다. 그리고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영문학과 신입생이 되었다. 그의 인생에서 열아홉 살까지 한 번도 꿈꿔보지 못했던 어떤 삶이 스무 살의 봄과 함께 시작된 것이다. 그는 운동권 선배들과 '한국사 다시 읽기' 세미나를 하고 간간이 시위에도 참여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면 도서관에 들러 기형도,정현종 등의 시집을 찾아 읽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그리고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첫사랑의 열병을 앓다가 또 '당연히' 그 사랑에 실패한다.

만약 그가 스무 살의 봄을 후기 대학의 영문학과 학생이 아니라 애초에 지망했던 대학의 천문학과 학생으로 맞게 되었다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어느 누가 이 질문 앞에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단 한 번 산다. 영원히 다시 되살 수 있다면 이렇게도 살아보고 또 저렇게도 살아본 다음 이게 더 낫더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단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우리는 삶의 가정 앞에 무력하다. 우리는 다만 주어진 시간을 살 뿐이다. 알 수 없는 운명이 마련해놓은 어떤 삶의 계기들을 견디고 통과하며 우리는 우리 자신조차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지금의 우리가 될 뿐이다.

돌이켜보면 더 낫고 덜한 삶은 없다. 소백산 천문대의 별지기가 되지 못한 김연수가 작가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더 나은 삶이라고 할 근거는 없다. 마찬가지로 별지기가 되지 못하고 작가가 되었다고 해서 한탄할 필요도 없다.

엊그제 수십만 학생들이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치렀다. 이 말은 아마도 조만간 수십만 개의 인생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삶의 진로를 택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누구는 열아홉 이전부터 꿈꾸어온 그런 삶을 이어가게 될 것이고 또 어느 누구는 한 번도 꿈꾸어보지 못한 스무 살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원하던 것에 가까이 가게 되는 일은 행운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예상 밖의 결과에 내동댕이쳐지게 된 삶이 불행하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스무 살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지나고 보면 또 다른 세계의 행운 앞에 놀라게 된다. 별지기가 되지 못한 소설가 김연수가 그러했던 것처럼.수험생들 모두의 행운을 빈다.

신수정 문학평론가·명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