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이정원(41)에게 오페라 '운명의 힘'은 그의 운명을 가른 작품이다. 그는 2000년 이탈리아 마리아 칼라스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했을 때와 작년 라 스칼라 극장 오디션에서 이 오페라에 나오는 아리아 '오,천사의 품으로 올라간 그대여'를 불렀다. 자신을 세계 무대에 알리고, 그 확인 도장을 받았을 때 모두 이 아리아와 함께 했다는 얘기다.

이씨가 19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오페라 '운명의 힘' 무대에 올라 '운명의 노래'를 열창한다. 지금까지 그는 '오,천사의 품으로 올라간 그대여'를 갈라 콘서트,콩쿠르,오디션 등에서는 불렀지만 실제 오페라 공연에서는 불러본 적이 없다. 그는 "'운명의 힘'의 아리아는 확 지르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틱하게 긴장감을 주는 매력이 있다"며 "그런 만큼 부르기 힘들고 높은 수준의 테크닉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로 건너가 후랑코 로렐리 콩쿠르,자코모 아라갈 콩쿠르 등에서 입상한 뒤 이탈리아 나르니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오페라 '아이다',프랑스 아비뇽극장에서 오페라 '노르마',헝가리 부다페스트 국립극장에서 '투란도트' 등에 출연했다.

오페라 '운명의 힘'은 '리골레토''라 트라비아타''아이다' 등 주옥같은 오페라를 남긴 베르디의 작품 세계가 후기로 옮겨가는 길목에서 만들어졌다. 후작의 딸 레오노라와 그의 연인 돈 알바로,그리고 레오노라의 오빠인 돈 카를로의 얽히고설킨 운명을 그린다. 특히 전쟁,복수 등 박진감 넘치는 장면을 힘찬 오케스트라 연주로 표현한 것이 특징.

이번 공연에 이씨는 테너 김남두,이병삼씨와 번갈아 주인공인 돈 알바로 역을 연기한다. 그는 "움직이면서 연기하기보다는 정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려 한다"며 "워낙 음악이 좋은 작품이라서 소리에 더욱 충실해 관객의 귀를 만족시켜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4월 한국인 테너로는 처음으로 라 스칼라 극장에서 공연해 화제를 모았다. 성악가들의 꿈의 무대로 불리는 라 스칼라 극장에서 그는 베르디의 오페라 '맥베스'의 막두프 역을 연기해 호평을 받았다. 그는 "비디오나 DVD를 보면서 꿈꿔왔던 무대에 직접 서보니 감격스러웠다"며 "사실 규모가 큰 무대일 뿐 별 다를 것 없는 극장이지만 전통은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가 라 스칼라 무대에 섰듯이 세계 유수 오페라 극장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성악가가 늘어나고 있다. 2007년 마리아 칼라스 콩쿠르에서는 한국인이 1위 없는 2~4위를 모두 차지할 정도로 한국 젊은 성악가들의 기세도 대단하다. 이씨는 "한국인은 성대가 좋다"며 "오페라의 고향인 이탈리아인처럼 한국인들도 다혈질이고 노래 부르기를 즐기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고 나름대로 해석했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이씨는 "내년 상반기에는 프랑스에서 '아이다'와 '노르마'를 공연하고 독일 에이전시를 통해 조만간 독일 무대에서도 노래를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