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주권' 기틀 마련한 제약업계 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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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허영섭 녹십자회장, 화순공장 설립 신종플루 대처
"당초 2010년 준공도 어렵다던 전남 화순 인플루엔자 백신공장을 1년 앞당겨 조기 완공하라고 지시하신 분이 바로 허 회장님이셨어요. "(정수현 녹십자 전무)
15일 숙환으로 타계한 고 허영섭 녹십자 회장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12번째로 백신주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국내 바이오의약품의 기틀을 다졌다. 올해 전 세계적으로 수천명의 사상자를 낸 신종플루 위협에 맞서 우리나라가 조기 임상시험과 백신접종에 돌입하는 등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던 데에는 허 회장의 이 같은 의지가 적잖은 기여를 했다는 것이 의약업계 안팎의 평가다. 녹십자는 지난 7월 전남 화순에 연생산 5000만 도즈(1회 접종분) 규모의 인플루엔자(독감 및 신종플루용) 백신생산 공장을 완공했다. 신종플루가 국내에서 창궐하기 꼭 1개월 전의 일이다. 복지부 한 관계자는 "만약 당시 백신 공장이 준공되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해외 다국적 제약사들이 부르는 대로 값을 쳐주고 신종플루 백신을 사왔거나,부족한 백신을 확보하기 위해 전 세계를 떠돌아 다녔을지도 모른다"며 고인을 애도했다.
한일시멘트 창업주인 고 허채경 회장의 차남인 고인은 경기도 개풍 출신으로,개성상인의 마지막 세대로 꼽힌다. 선대 기업인들이 쌓은 전통인 내실 중심의 경영 방침을 바탕으로 제약기업 녹십자를 연 매출 6000억원대의 국제적인 생명공학 전문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고인의 꿈은 원래 과학자였다. 1964년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허 회장은 곧바로 독일로 건너가 1968년 독일 아헨공대를 졸업,현지에서 한때 박사과정을 밟을 정도로 정통 과학도의 길을 걸었다. 그러던 중 유학 시절 독일 현지의 보건의료제약 환경에 비해 턱없이 낙후된 국내 실정에 안타까움을 느낀 나머지 1970년 귀국,아버지가 주요 주주로 있던 녹십자에 부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평생을 값비싼 외국산 의약품을 대체하는 토종 필수 의약품을 국산화하는 데 천착해왔다.
특히 고인은 '만들기 힘든,그러나 꼭 있어야 할 특수의약품 개발'에 평생을 헌신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개발한 B형 간염백신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유행성출혈열 백신,또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발한 수두백신 등이 대표적인 제품들이다. "반쪽짜리 백신주권은 의미가 없다"며 2004년 외국 거대 자본의 합작제의를 단호히 거절한 것도 업계에 널리 회자된 일화다.
재계와 업계 관계자들은 "경제적인 득실보다는 국가와 사회를 먼저 생각했던 분"이라며 "자신에게는 엄격하리만큼 검소했지만 공익을 위한 일에는 그 누구보다 아낌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2001년 한양대에서 명예 공학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2002년 독일 대학이 수여하는 가장 명예로운 칭호라는 '명예세너터(Ehren senator)'를 외국인으로서는 1870년 아헨공대 개교 이래 처음으로 받기도 했다. 한국제약협회 회장,한독협회 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국제백신연구소 한국후원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국민훈장 모란장,과학기술훈장 창조장을 수훈받았으며,독일정부로부터는 십자공로훈장을 받았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