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승 부담 턴 천재소녀…"그동안 맥주 세리머니 부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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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위, 美LPGA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우승
재미교포 프로골퍼 미셸 위(20 · 나이키골프)가 마침내 첫승 관문을 통과했다.
미셸 위는 16일(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과달라하라CC(파72)에서 끝난 미국LPGA프로골프 투어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그토록 고대하던 첫 우승컵에 입맞춤했다. 그는 대회 마지막 라운드에서 버디 5개와 보기 2개를 묶어 3언더파 69타를 쳐 최종합계 13언더파 275타를 적어내 폴라 크리머(미국)를 2타 차로 따돌렸다. 신지애(21 · 미래에셋)는 선두에 3타 뒤진 공동 3위에 올랐고,로레나 오초아(멕시코)는 김송희(21)와 함께 7언더파 281타로 공동 6위에 그쳤다.
이날 미셸 위는 12번홀(파4)에서 티샷이 도로에 맞고 두 번째 샷이 나무에 부딪치는 등 위기가 찾아왔고,18번홀(파5)에서도 두 번째 샷을 벙커에 빠트렸으나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냈다. 그러는 사이 경쟁자인 폴라 크리머,크리스티 커(이상 미국)가 무너졌다.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대회 분위기였다. 특히 18번홀 벙커에서 친 세 번째 샷은 홀 30㎝에 붙어 탭인 버디로 첫 우승을 자축했다. 미셀 위는 "맥주 세리머니는 상상한 것만큼 기분이 좋았다"며 "첫 승의 부담을 떨쳐버린 만큼 앞으로도 좋은 모습을 계속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언론들은 '미셸 위 시대(Michelle Wie's Era)'가 활짝 열렸다며 반기고 있다. CNN골프는 '미셸 위의 시대를 환영한다'는 기사에서 "미셸 위의 첫 승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라며 "하지만 골프계가 모두 (그의) 새로운 활약을 기대한다"고 보도했다. 골프사이트인 골프채널닷컴도 "여자 골프계에 '위-마니아(Wie-mania)'가 되살아나 새로운 바람이 불 것"으로 내다봤다.
2002년 13살의 나이에 LPGA 투어 대회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미셸 위는 무려 7년 동안 '우여곡절'이라는 표현도 부족할 만큼 많은 부침을 겪은 끝에 첫 승을 거머쥐었다. 미국 하와이에서 태어난 그는 '여자 타이거 우즈'라는 찬사를 받으며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4살 때부터 골프를 시작한 그는 11살이던 2000년 당시 역대 최연소로 US 아마추어 퍼블릭링크스 챔피언십에 출전했고 2002년에는 역시 최연소로 LPGA 투어 대회에 나섰다. 2003년 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나비스코챔피언십에 초청 선수로 출전한 미셸 위는 최종 라운드에서 당대 최고의 선수인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과 챔피언조에서 겨뤄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이듬해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4위를 차지하고,2005년 LPGA 챔피언십 2위와 브리티시오픈 3위 등 메이저대회에서 우승 문턱까지 이르는 등 '돌풍'을 일으켰다.
폭발적인 장타를 앞세워 '언제든 우승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미셸 위는 2005년 10월 프로 전향을 선언했다.
그의 가능성을 눈여겨 본 나이키,소니 등이 앞다퉈 거액의 후원 계약을 맺어 '1000만달러의 소녀'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때였다. 180㎝가 넘는 장신에 어릴 때부터 유명했던 호쾌한 장타는 이제 쇼트 게임만 가다듬으면 금세 '골프 여제'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에 와서는 오히려 성적이 내리막을 걸어 '1000만달러의 소녀'라는 별명은 '미운 오리 새끼'라는 달갑지 않은 오명으로 뒤바뀌었다. 2006년 첫 메이저 3개 대회에서 공동 3위-공동 5위-공동 3위를 차지한 데 이어 7월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공동 2위에 오르는 등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는 듯했지만 그해 9월부터 본격적인 하락세가 시작됐다. 특히 계속된 남자대회 출전이 주위의 비난을 샀다. 2004년 소니오픈을 시작으로 남자대회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성(性)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2006년 11월 일본 남자대회인 카시오 오픈에서 17타 차,2007년 1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소니오픈에서 14타 차로 커트 탈락하면서 비난은 거세졌고 손목 부상까지 겹치며 2007년을 최악의 한 해로 보내야 했다.
잇단 손목 부상으로 두 해가량 기대 이하의 경기를 펼친 뒤 지난해 말 더 이상 미LPGA투어 초청장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수모를 감수하고 미LPGA 퀄러파잉 투어에 참가해 시드권을 땄다. 그는 "퀄러파잉 투어에 참가하면서 내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한층 커졌다"고 말했다. 미셸 위의 승리는 학업을 병행했기 때문에 이번 우승이 더욱 값져 보인다. 스탠퍼드대 커뮤니케이션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미셸 위는 하반기 빠듯한 학기 일정 때문에 짬짬이 미LPGA투어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미셸 위는 9월 말부터 다음 해 3월까지 가을과 겨울학기에 모든 과정을 이수한다. 그의 성적은 평균 3.4점(4.0만점)이고 평범한 학생들과 평범한 생활을 하면서 스탠퍼드에 잘 적응하고 있다.
이번 시즌이 개막하기 전 신지애와 함께 신인왕 경쟁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미셸 위는 신인왕을 놓쳤지만 여전히 20세에 불과한 유망주다. 그가 이번 우승을 발판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꽃피우게 될지 골프팬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
미셸 위는 16일(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과달라하라CC(파72)에서 끝난 미국LPGA프로골프 투어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그토록 고대하던 첫 우승컵에 입맞춤했다. 그는 대회 마지막 라운드에서 버디 5개와 보기 2개를 묶어 3언더파 69타를 쳐 최종합계 13언더파 275타를 적어내 폴라 크리머(미국)를 2타 차로 따돌렸다. 신지애(21 · 미래에셋)는 선두에 3타 뒤진 공동 3위에 올랐고,로레나 오초아(멕시코)는 김송희(21)와 함께 7언더파 281타로 공동 6위에 그쳤다.
이날 미셸 위는 12번홀(파4)에서 티샷이 도로에 맞고 두 번째 샷이 나무에 부딪치는 등 위기가 찾아왔고,18번홀(파5)에서도 두 번째 샷을 벙커에 빠트렸으나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냈다. 그러는 사이 경쟁자인 폴라 크리머,크리스티 커(이상 미국)가 무너졌다.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대회 분위기였다. 특히 18번홀 벙커에서 친 세 번째 샷은 홀 30㎝에 붙어 탭인 버디로 첫 우승을 자축했다. 미셀 위는 "맥주 세리머니는 상상한 것만큼 기분이 좋았다"며 "첫 승의 부담을 떨쳐버린 만큼 앞으로도 좋은 모습을 계속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언론들은 '미셸 위 시대(Michelle Wie's Era)'가 활짝 열렸다며 반기고 있다. CNN골프는 '미셸 위의 시대를 환영한다'는 기사에서 "미셸 위의 첫 승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라며 "하지만 골프계가 모두 (그의) 새로운 활약을 기대한다"고 보도했다. 골프사이트인 골프채널닷컴도 "여자 골프계에 '위-마니아(Wie-mania)'가 되살아나 새로운 바람이 불 것"으로 내다봤다.
2002년 13살의 나이에 LPGA 투어 대회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미셸 위는 무려 7년 동안 '우여곡절'이라는 표현도 부족할 만큼 많은 부침을 겪은 끝에 첫 승을 거머쥐었다. 미국 하와이에서 태어난 그는 '여자 타이거 우즈'라는 찬사를 받으며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4살 때부터 골프를 시작한 그는 11살이던 2000년 당시 역대 최연소로 US 아마추어 퍼블릭링크스 챔피언십에 출전했고 2002년에는 역시 최연소로 LPGA 투어 대회에 나섰다. 2003년 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나비스코챔피언십에 초청 선수로 출전한 미셸 위는 최종 라운드에서 당대 최고의 선수인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과 챔피언조에서 겨뤄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이듬해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4위를 차지하고,2005년 LPGA 챔피언십 2위와 브리티시오픈 3위 등 메이저대회에서 우승 문턱까지 이르는 등 '돌풍'을 일으켰다.
폭발적인 장타를 앞세워 '언제든 우승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미셸 위는 2005년 10월 프로 전향을 선언했다.
그의 가능성을 눈여겨 본 나이키,소니 등이 앞다퉈 거액의 후원 계약을 맺어 '1000만달러의 소녀'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때였다. 180㎝가 넘는 장신에 어릴 때부터 유명했던 호쾌한 장타는 이제 쇼트 게임만 가다듬으면 금세 '골프 여제'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에 와서는 오히려 성적이 내리막을 걸어 '1000만달러의 소녀'라는 별명은 '미운 오리 새끼'라는 달갑지 않은 오명으로 뒤바뀌었다. 2006년 첫 메이저 3개 대회에서 공동 3위-공동 5위-공동 3위를 차지한 데 이어 7월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공동 2위에 오르는 등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는 듯했지만 그해 9월부터 본격적인 하락세가 시작됐다. 특히 계속된 남자대회 출전이 주위의 비난을 샀다. 2004년 소니오픈을 시작으로 남자대회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성(性)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2006년 11월 일본 남자대회인 카시오 오픈에서 17타 차,2007년 1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소니오픈에서 14타 차로 커트 탈락하면서 비난은 거세졌고 손목 부상까지 겹치며 2007년을 최악의 한 해로 보내야 했다.
잇단 손목 부상으로 두 해가량 기대 이하의 경기를 펼친 뒤 지난해 말 더 이상 미LPGA투어 초청장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수모를 감수하고 미LPGA 퀄러파잉 투어에 참가해 시드권을 땄다. 그는 "퀄러파잉 투어에 참가하면서 내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한층 커졌다"고 말했다. 미셸 위의 승리는 학업을 병행했기 때문에 이번 우승이 더욱 값져 보인다. 스탠퍼드대 커뮤니케이션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미셸 위는 하반기 빠듯한 학기 일정 때문에 짬짬이 미LPGA투어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미셸 위는 9월 말부터 다음 해 3월까지 가을과 겨울학기에 모든 과정을 이수한다. 그의 성적은 평균 3.4점(4.0만점)이고 평범한 학생들과 평범한 생활을 하면서 스탠퍼드에 잘 적응하고 있다.
이번 시즌이 개막하기 전 신지애와 함께 신인왕 경쟁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미셸 위는 신인왕을 놓쳤지만 여전히 20세에 불과한 유망주다. 그가 이번 우승을 발판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꽃피우게 될지 골프팬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