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매니저의 투자비밀⑪]"오래된 100억 이상 펀드에 투자하라"-한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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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일 미국 네브라스카주 오마하. 인구 30만명의 소도시인 이곳에 세계 각국 언론을 비롯한 3만5000여명의 인파가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단 한 사람의 말을 듣기 위해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장을 찾았다. 그가 바로 '오마하의 현인',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다. 버핏은 주총이 끝난 후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다양한 우량기업 주식을 꾸준히 매입해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매매비용이나 운용비용을 줄인다면 30~40년 후에는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는 정보가 부족한 개인투자자들은 장기투자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시장수익률보다 지나치게 높은 이익을 추구하면 실패하기 마련이라고 역설한다. 장기적으로 시장수익률만큼 이익을 실현하도록 설계한 인덱스펀드가 '가장 우수한 금융상품'이라는 게 버핏의 지론이다. 한진규 유리자산운용 상무(41ㆍ사진)는 이같은 버핏의 지적이 매우 타당한 것이라고 확신하며 인덱스펀드만 10년째 운용하고 있는 펀드매니저다.
"제 운용스타일은 패시브(passive·소극적, 수동적) 운용입니다. 시장을 이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죠."
<한경닷컴> 기자와 만난 한진규 상무는 자신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고 했다.
고객의 자금, 즉 '남의 돈'을 맡고 있는 펀드매니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한 상무는 자신의 고객은 다른 펀드매니저에게 돈을 맡긴 사람들보다 더 안정적인 수익을 얻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가장 우수한 금융상품, 인덱스펀드'
"제가 운용하는 펀드는 장기적으로 볼 때 액티브 펀드보다 수익률이 좋습니다."
한 상무는 유리자산운용에서 인덱스운용본부장을 맡고 있다. 액티브 펀드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주식형펀드가 대표적인 것으로 일부 종목에 집중 투자해 시장의 성장률보다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펀드를 말한다.
반면 인덱스 펀드는 '코스피200지수'와 같은 주가지수의 움직임을 따라가도록 설계한 펀드다. 때문에 추종하는 지수의 상승률만큼의 수익을 추구한다. 기준 주가지수의 상승률이 곧 해당 인덱스펀드의 수익률이 되는 소극적인 펀드다.
"인덱스펀드가 액티브펀드와 같이 높은 초과수익이 아닌 시장평균 수익률을 추구하는 이유는 펀드에 장기 투자할 때, 실제로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수익률이 더 높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 학급의 평균 성적을 예로 들며, 인덱스펀드의 수익률이 액티브펀드보다 높은 이유를 설명했다.
"한 학급의 평균 점수가 80점일 때, 여학생의 평균점수가 80점이라면 남학생의 평균도 80점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일정기간 동안 시장평균 수익률이 10%라면 인덱스펀드는 시장수익률을 추구하기 때문에 평균 수익률이 10%가 되죠. 이에 따라 같은 기간 동안 액티브펀드의 평균 수익률도 10%가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투자자가 가져가는 수익은 이보다 약간 적습니다. 운용 보수(펀드운용 수수료) 등 투자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죠. 액티브펀드는 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에 매매횟수가 많습니다. 그만큼 매매시에 발생하는 수수료도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평균 수익률을 같다고 가정할 때 실제 수익률은 수수료 비용이 적은 인덱스펀드가 더 높습니다."
한 상무가 운용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비용'이다. 액티브펀드와 인덱스펀드의 평균수익률이 같다고 할 때, 비용이 적게 드는 인덱스펀드의 수익률이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용을 중시하다보니 최대한 매매횟수를 줄입니다. 코스피200을 따라간다면 포트폴리오에 100종목 이상을 편입한 뒤,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한 달에 한 번 정도 매매를 하죠."
그가 말하는 특별한 일이란 지수의 구성종목 변경 등으로 추종지수와 인덱스펀드의 종목비중 차이가 커져 추종지수를 적절히 반영할 수 없을 때다.
한 상무의 말대로 인덱스펀드의 우수성은 실증분석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의 자료를 바탕으로 그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996년 2월말부터 올해 4월말까지 일반주식형펀드보다 코스피200을 추종하는 인덱스펀드의 성과가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적 운용 좀 합시다"
현재 1조9000억원이라는 거액을 운용하는 한 상무가 인덱스펀드에 집중하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경험의 힘이 컸다.
"1995년 한국투자신탁 투자공학팀에 입사해 계량분석 업무를 맡았습니다. 매니저들이 포트폴리오를 분석하는 데 필요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었죠. 그런데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좋은데 정작 운용은 따로 하고 있는 겁니다."
한 상무의 눈에는 명확한 성과를 낼 수 있는 계량분석 모델이 있는데도 이를 이용하지 않고, '감(感)'에만 의존해 투자를 결정하는 매니저들이 답답해 보였다. 게다가 그 운용결과가 좋지 않게 나올 때는 안타까워 미칠 노릇이었다.
"일부 매니저들은 해당 종목의 매출, 순익 등을 예상한 뒤 밸류에이션(실적대비 주가수준)을 보고 투자를 합니다. 그런데 이 매출 예측이 잘 맞지를 않습니다. 주가를 예측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 것이죠."
한 상무가 신뢰하는 것은 전망이 아니라 확인된 자료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금융공학이 생긴 이후부터 지금까지 연구를 통해 입증된 통계와 추세의 힘을 믿는 것이다. 근거가 부족한 전망자료를 투자에 이용하는 것은 그가 보기에 '눈먼 말 타고 벼랑가는 식'의 위험한 일이다.
한 상무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과학과에서 투자론과 금융이론 등을 공부했다. 당시 그의 생각은 최신 금융이론을 접목해 기존 투자방법과는 차별화된 투자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1995년 한국투자신탁으로 금융업계에 첫 발을 들여놓은 이후 이같은 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때 현 삼성투자신탁운용의 서경석 전무 등이 한 상무에게 과학적 운용을 함께 하자고 제의했다.
선배들의 제의로 2000년 유리자산운용에 입사한 그는 또 한번의 경험을 통해 인덱스펀드 운용을 자신의 업으로 삼게 된다.
"2003년부터 약 2000억원 규모의 PI(포트폴리오보험)펀드를 운용했었습니다. PI는 포트폴리오의 비중확대 구간과 비중축소 구간을 정해 운용하는 펀드인데, 당시 시장의 변동성이 커졌죠. 비중축소 구간에 접어들었는데 시장의 거래량이 줄어 시장에서 매도 물량을 받아내지를 못했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비용이 발생했고, 결국 고객들을 설득해 1년이 채 못돼서 펀드를 청산하게 됐습니다."
◆“시장은 비합리적이다”
한 상무는 당시의 경험을 통해 시장이 합리적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시장의 상황에 따라 예기치 않은 많은 비용이 발생할 수 있고, 이 경우 매우 치명적인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을 깊이 깨달은 것이다.
때때로 시장 참가자들의 '투자심리'는 실체가 없는 종목의 주가를 한없이 띄우기도 하고, 실적을 통해 가치가 높아진 종목을 외면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종목의 가치와 시가총액의 괴리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었다.
때문에 전통적인 인덱스펀드의 포트폴리오 비중선정 방식인 시가총액은 시장의 비합리적인 가격 결정으로 고평가된 종목을 더 많이 사게 하고, 저평가된 종목은 더 적게 사는 비효율을 발생시켰다.
한 상무는 시장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 포트폴리오 구성방식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매출액과 현금흐름 등 재무제표의 수치였다. 결국 종목의 주가는 확인된 정보인 재무제표의 수치를 따라가는 흐름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인덱스펀드를 운용하면서 2005년 도입된 내재가치 가중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가령 한국 코스피시장의 시가총액이 100조원일 때,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15조원이라면 기존의 인덱스펀드는 전체 자금의 15%를 삼성전자에 투자한다. 그러나 내재가치가중방식 인덱스는 한국 코스피시장 매출액이 100조원이고 삼성전자의 매출액이 10조라면, 펀드 자금 중 10%를 삼성전자에 투자하는 것이다.
"올해 초 금융섹터는 재무제표 상의 수치에 비해 시가총액이 낮아져있었습니다. 그래서 금융섹터의 투자비중을 더 높이기로 했죠. 올 상반기 금융섹터는 IT(정보기술), 자동차와 더불어 시장을 이끌었습니다. 금융섹터 투자비중을 높인 결과 목표수익률을 약간 웃도는 성과를 얻게 됐습니다."
◆"액티브의 어깨 위에 올라서라"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튼은 "내가 세상을 좀 더 멀리 볼 수 있다면, 이는 단지 내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선대 과학자들의 연구 덕분으로 자신의 연구가 지금의 수준에 이를 수 있었다는 말이다.
뉴튼의 말처럼 한 상무는 "인덱스펀드로 액티브펀드 위에 올라서라"고 조언한다.
"액티브펀드 투자자들이 시장에 관심을 갖고 노력하고 경쟁할수록 인덱스펀드의 수익률은 올라갑니다. 액티브 투자자들이 종목발굴과 장세예측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할수록, 주가는 적정가에 가깝게 다가갑니다. 그럴수록 시장은 합리적으로 움직이게 되죠."
시장이 합리적으로 움직이게 되면, 시장 수익률을 추구하는 인덱스펀드의 포트폴리오도 효율적으로 시장을 따라가게 된다는 설명이다. 포트폴리오가 효율적으로 움직이면 그만큼 매매횟수가 줄어들어 비용절감 효과가 더 커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인덱스펀드는 무엇일까? 한 상무는 규모가 100억원 이상이고, 운용기간이 오래된 펀드에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우선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시장의 충격을 받아낼 수 있다"며 "그리고 오래된 펀드라는 것은 그만큼 시장수익률을 잘 따라가 시장에서 입증된 펀드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덱스펀드는 시장이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깔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시장이 하락세를 이어간다면, 시장수익률을 추구하는 인덱스펀드는 수익은 커녕 원금마저 보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내년에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합니다. 이 대규모 자금에서 시장으로 유입되는 부분은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연기금들의 핵심 운용전략인 인덱스펀드에 투입될 것입니다. 인덱스펀드는 시장의 축소판을 포트폴리오로 가지고 있기에 결국 시장의 규모가 몰라보게 커질 것이고, 이에 따라 시장도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일 것입니다."
퇴직연금이 도입되고, 시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인덱스펀드의 수익률은 언제나 안정적이라고 한 상무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표정에는 인덱스펀드야말로 장기적으로 시장과 함께 성장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배어있었다.
글=한경닷컴 한민수 기자 hms@hankyung.com
사진=한경닷컴 양지웅 기자 yangdoo@hankyung.com
이들은 단 한 사람의 말을 듣기 위해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장을 찾았다. 그가 바로 '오마하의 현인',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다. 버핏은 주총이 끝난 후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다양한 우량기업 주식을 꾸준히 매입해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매매비용이나 운용비용을 줄인다면 30~40년 후에는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는 정보가 부족한 개인투자자들은 장기투자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시장수익률보다 지나치게 높은 이익을 추구하면 실패하기 마련이라고 역설한다. 장기적으로 시장수익률만큼 이익을 실현하도록 설계한 인덱스펀드가 '가장 우수한 금융상품'이라는 게 버핏의 지론이다. 한진규 유리자산운용 상무(41ㆍ사진)는 이같은 버핏의 지적이 매우 타당한 것이라고 확신하며 인덱스펀드만 10년째 운용하고 있는 펀드매니저다.
"제 운용스타일은 패시브(passive·소극적, 수동적) 운용입니다. 시장을 이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죠."
<한경닷컴> 기자와 만난 한진규 상무는 자신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고 했다.
고객의 자금, 즉 '남의 돈'을 맡고 있는 펀드매니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한 상무는 자신의 고객은 다른 펀드매니저에게 돈을 맡긴 사람들보다 더 안정적인 수익을 얻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가장 우수한 금융상품, 인덱스펀드'
"제가 운용하는 펀드는 장기적으로 볼 때 액티브 펀드보다 수익률이 좋습니다."
한 상무는 유리자산운용에서 인덱스운용본부장을 맡고 있다. 액티브 펀드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주식형펀드가 대표적인 것으로 일부 종목에 집중 투자해 시장의 성장률보다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펀드를 말한다.
반면 인덱스 펀드는 '코스피200지수'와 같은 주가지수의 움직임을 따라가도록 설계한 펀드다. 때문에 추종하는 지수의 상승률만큼의 수익을 추구한다. 기준 주가지수의 상승률이 곧 해당 인덱스펀드의 수익률이 되는 소극적인 펀드다.
"인덱스펀드가 액티브펀드와 같이 높은 초과수익이 아닌 시장평균 수익률을 추구하는 이유는 펀드에 장기 투자할 때, 실제로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수익률이 더 높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 학급의 평균 성적을 예로 들며, 인덱스펀드의 수익률이 액티브펀드보다 높은 이유를 설명했다.
"한 학급의 평균 점수가 80점일 때, 여학생의 평균점수가 80점이라면 남학생의 평균도 80점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일정기간 동안 시장평균 수익률이 10%라면 인덱스펀드는 시장수익률을 추구하기 때문에 평균 수익률이 10%가 되죠. 이에 따라 같은 기간 동안 액티브펀드의 평균 수익률도 10%가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투자자가 가져가는 수익은 이보다 약간 적습니다. 운용 보수(펀드운용 수수료) 등 투자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죠. 액티브펀드는 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에 매매횟수가 많습니다. 그만큼 매매시에 발생하는 수수료도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평균 수익률을 같다고 가정할 때 실제 수익률은 수수료 비용이 적은 인덱스펀드가 더 높습니다."
한 상무가 운용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비용'이다. 액티브펀드와 인덱스펀드의 평균수익률이 같다고 할 때, 비용이 적게 드는 인덱스펀드의 수익률이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용을 중시하다보니 최대한 매매횟수를 줄입니다. 코스피200을 따라간다면 포트폴리오에 100종목 이상을 편입한 뒤,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한 달에 한 번 정도 매매를 하죠."
그가 말하는 특별한 일이란 지수의 구성종목 변경 등으로 추종지수와 인덱스펀드의 종목비중 차이가 커져 추종지수를 적절히 반영할 수 없을 때다.
한 상무의 말대로 인덱스펀드의 우수성은 실증분석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의 자료를 바탕으로 그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996년 2월말부터 올해 4월말까지 일반주식형펀드보다 코스피200을 추종하는 인덱스펀드의 성과가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적 운용 좀 합시다"
현재 1조9000억원이라는 거액을 운용하는 한 상무가 인덱스펀드에 집중하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경험의 힘이 컸다.
"1995년 한국투자신탁 투자공학팀에 입사해 계량분석 업무를 맡았습니다. 매니저들이 포트폴리오를 분석하는 데 필요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었죠. 그런데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좋은데 정작 운용은 따로 하고 있는 겁니다."
한 상무의 눈에는 명확한 성과를 낼 수 있는 계량분석 모델이 있는데도 이를 이용하지 않고, '감(感)'에만 의존해 투자를 결정하는 매니저들이 답답해 보였다. 게다가 그 운용결과가 좋지 않게 나올 때는 안타까워 미칠 노릇이었다.
"일부 매니저들은 해당 종목의 매출, 순익 등을 예상한 뒤 밸류에이션(실적대비 주가수준)을 보고 투자를 합니다. 그런데 이 매출 예측이 잘 맞지를 않습니다. 주가를 예측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 것이죠."
한 상무가 신뢰하는 것은 전망이 아니라 확인된 자료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금융공학이 생긴 이후부터 지금까지 연구를 통해 입증된 통계와 추세의 힘을 믿는 것이다. 근거가 부족한 전망자료를 투자에 이용하는 것은 그가 보기에 '눈먼 말 타고 벼랑가는 식'의 위험한 일이다.
한 상무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과학과에서 투자론과 금융이론 등을 공부했다. 당시 그의 생각은 최신 금융이론을 접목해 기존 투자방법과는 차별화된 투자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1995년 한국투자신탁으로 금융업계에 첫 발을 들여놓은 이후 이같은 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때 현 삼성투자신탁운용의 서경석 전무 등이 한 상무에게 과학적 운용을 함께 하자고 제의했다.
선배들의 제의로 2000년 유리자산운용에 입사한 그는 또 한번의 경험을 통해 인덱스펀드 운용을 자신의 업으로 삼게 된다.
"2003년부터 약 2000억원 규모의 PI(포트폴리오보험)펀드를 운용했었습니다. PI는 포트폴리오의 비중확대 구간과 비중축소 구간을 정해 운용하는 펀드인데, 당시 시장의 변동성이 커졌죠. 비중축소 구간에 접어들었는데 시장의 거래량이 줄어 시장에서 매도 물량을 받아내지를 못했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비용이 발생했고, 결국 고객들을 설득해 1년이 채 못돼서 펀드를 청산하게 됐습니다."
◆“시장은 비합리적이다”
한 상무는 당시의 경험을 통해 시장이 합리적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시장의 상황에 따라 예기치 않은 많은 비용이 발생할 수 있고, 이 경우 매우 치명적인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을 깊이 깨달은 것이다.
때때로 시장 참가자들의 '투자심리'는 실체가 없는 종목의 주가를 한없이 띄우기도 하고, 실적을 통해 가치가 높아진 종목을 외면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종목의 가치와 시가총액의 괴리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었다.
때문에 전통적인 인덱스펀드의 포트폴리오 비중선정 방식인 시가총액은 시장의 비합리적인 가격 결정으로 고평가된 종목을 더 많이 사게 하고, 저평가된 종목은 더 적게 사는 비효율을 발생시켰다.
한 상무는 시장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 포트폴리오 구성방식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매출액과 현금흐름 등 재무제표의 수치였다. 결국 종목의 주가는 확인된 정보인 재무제표의 수치를 따라가는 흐름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인덱스펀드를 운용하면서 2005년 도입된 내재가치 가중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가령 한국 코스피시장의 시가총액이 100조원일 때,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15조원이라면 기존의 인덱스펀드는 전체 자금의 15%를 삼성전자에 투자한다. 그러나 내재가치가중방식 인덱스는 한국 코스피시장 매출액이 100조원이고 삼성전자의 매출액이 10조라면, 펀드 자금 중 10%를 삼성전자에 투자하는 것이다.
"올해 초 금융섹터는 재무제표 상의 수치에 비해 시가총액이 낮아져있었습니다. 그래서 금융섹터의 투자비중을 더 높이기로 했죠. 올 상반기 금융섹터는 IT(정보기술), 자동차와 더불어 시장을 이끌었습니다. 금융섹터 투자비중을 높인 결과 목표수익률을 약간 웃도는 성과를 얻게 됐습니다."
◆"액티브의 어깨 위에 올라서라"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튼은 "내가 세상을 좀 더 멀리 볼 수 있다면, 이는 단지 내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선대 과학자들의 연구 덕분으로 자신의 연구가 지금의 수준에 이를 수 있었다는 말이다.
뉴튼의 말처럼 한 상무는 "인덱스펀드로 액티브펀드 위에 올라서라"고 조언한다.
"액티브펀드 투자자들이 시장에 관심을 갖고 노력하고 경쟁할수록 인덱스펀드의 수익률은 올라갑니다. 액티브 투자자들이 종목발굴과 장세예측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할수록, 주가는 적정가에 가깝게 다가갑니다. 그럴수록 시장은 합리적으로 움직이게 되죠."
시장이 합리적으로 움직이게 되면, 시장 수익률을 추구하는 인덱스펀드의 포트폴리오도 효율적으로 시장을 따라가게 된다는 설명이다. 포트폴리오가 효율적으로 움직이면 그만큼 매매횟수가 줄어들어 비용절감 효과가 더 커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인덱스펀드는 무엇일까? 한 상무는 규모가 100억원 이상이고, 운용기간이 오래된 펀드에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우선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시장의 충격을 받아낼 수 있다"며 "그리고 오래된 펀드라는 것은 그만큼 시장수익률을 잘 따라가 시장에서 입증된 펀드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덱스펀드는 시장이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깔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시장이 하락세를 이어간다면, 시장수익률을 추구하는 인덱스펀드는 수익은 커녕 원금마저 보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내년에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합니다. 이 대규모 자금에서 시장으로 유입되는 부분은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연기금들의 핵심 운용전략인 인덱스펀드에 투입될 것입니다. 인덱스펀드는 시장의 축소판을 포트폴리오로 가지고 있기에 결국 시장의 규모가 몰라보게 커질 것이고, 이에 따라 시장도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일 것입니다."
퇴직연금이 도입되고, 시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인덱스펀드의 수익률은 언제나 안정적이라고 한 상무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표정에는 인덱스펀드야말로 장기적으로 시장과 함께 성장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배어있었다.
글=한경닷컴 한민수 기자 hms@hankyung.com
사진=한경닷컴 양지웅 기자 yang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