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일부 계열사를 세종시로 이전하거나 신사업에 필요한 공장을 짓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17일 "지금은 정부로부터 어떤 제의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할 단계가 아니다"면서도 "공식,비공식 제안이 들어오면 이전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세종시 이전은 정치 논리가 아니라 철저한 기업 논리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이 세종시 이전 문제와 관련해 정리된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다른 대기업들도 그동안의 '이전 불가' 방침을 바꿔 정부가 구체적 제안을 하면 검토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다. 5대 그룹에 속한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현재 검토 중인 새로운 투자를 위해 가장 좋은 입지를 찾아야 하는데,정부가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세종시를 굳이 그 대상에서 제외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주요 기업들이 '세종시 이전 검토'로 입장을 바꾸고 있는 것은 정부가 세종시를 경제 중심 도시로 바꾸겠다는 방침을 명확히 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은 그러나 정부의 제안이 없는 상태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배터리 공장 건설,그린카 연구센터 신설 등 구체적인 이전 계획설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했다.

정부는 연초 세종시에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삼성그룹에 바이오사업을,LG와 SK에는 각각 그룹 본부나 핵심 계열사 본사 이전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그룹들은 그러나 정부의 세종시 건설계획 수정에 대한 방안이 뚜렷하지 않은 데다 전반적인 사업 틀을 새로 짜야 하는 문제라며 난색을 표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정운찬 국무총리는 이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정몽구 현대 · 기아자동차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과 만찬 회동을 갖고 세종시에 대한 협조를 구했다. 정 총리는 만찬사에서 "세종시를 자족도시로 만들기 위해 민간 투자자에게 토지를 저가로 공급하고 상당 수준의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며 "기업인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날 만찬에는 조석래 전경련 회장과 정몽구 회장,최태원 SK 회장,정준양 포스코 회장,허창수 GS 회장,박용현 두산 회장 등이 참석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정부는 세종시에 바이오,태양전지,전기차,2차전지 사업 등을 유치해 신산업 중심의 기업도시로 만들려는 구상인 것 같다"고 전했다.

조일훈/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