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내년 초부터 세계 주요 TV 생산라인에서 에어컨과 AV(음향)기기 등을 한꺼번에 만드는 혼류생산을 시작한다. 계절적으로 성수기가 다른 제품들을 한 공장에서 생산,생산효율을 높이고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서다. 디자인의 일체감과 동일성을 구현하는 것도 혼류생산의 목적 중 하나다.

지금까지 전자회사들이 같은 품목,다른 모델의 제품을 함께 생산한 사례는 있었지만 다른 품목의 제품을 한 장소에서 동시에 만드는 것은 이례적이다.



◆제조혁신 시작된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18일 "중국 러시아 등 해외 주요 TV 생산라인을 혼류생산이 가능하도록 개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며 "TV와 에어컨, AV기기 등을 동시 생산이 가능한 패키지로 분류했다"고 말했다.

백색가전 중 에어컨을 첫 혼류생산 제품으로 고른 것은 TV와 에어컨이 같은 지휘계통에 속해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최근 생활가전사업부 에어컨 부문을 윤부근 사장이 맡고 있는 영상디스플레이(TV) 사업부로 이전하고,조직 구성도 '공조솔루션팀'으로 격상시켰다.

삼성전자는 혼류생산이 시작되면 생산성이 대폭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TV는 3~4분기,에어컨은 1~2분기가 성수기"라며 "계절별로 주력 제품을 번갈아가며 생산할 경우 공장 가동에 들어가는 고정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TV의 대형화로 공장 규모도 커졌다"며 "대부분의 해외 TV 공장이 에어컨 등 다른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디자인 정체성을 구축하는 작업에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공장이 통합되면 TV에 썼던 디자인 패턴을 AV 기기와 에어컨들에 접목하는 것이 쉬워진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로고 없이 디자인만 봐도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떠올릴 수 있도록 주요 제품의 디자인 이미지를 통일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백색가전 경쟁력을 높여라"

삼성전자는 에어컨을 시작으로 다른 백색가전 품목으로 혼류생산의 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TV에 비해 열세에 있는 백색가전 분야의 경쟁력을 단시일 내에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글로벌 톱 수준에 오른 브랜드 파워와 마케팅 능력에 제조혁신을 결합해 시너지를 내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30일 열린 창립 40주년 기념식에서 TV와 휴대폰을 통해 얻은 '브랜드 파워'를 앞세워 생활가전,컴퓨터,프린터 등의 사업을 세계 1위에 올려놓는다는 중 · 장기 계획을 내놓았다. 업계에서는 이번 혼류생산이 삼성전자가 2020년 비전으로 제시한 '1위 제품 확장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에어컨과 AV 제품을 시작으로 다양한 혼류생산 실험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며 "향후 제품별 혼류생산을 전제로 한 공장 통합이 한층 활발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혼류생산=다른 품목을 한 개의 라인에서 만드는 생산기법.미국 포드가 고안한 대량생산 시스템에 한계를 느낀 일본 혼다가 다양한 차종을 한꺼번에 같은 생산라인에서 만들기 시작한 것이 기원이다. 다품종 소량생산이 트렌드로 정착한 최근에는 자동차,전자 등 제조업 전반에서 혼류생산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품목이 다른 제품을 한 공장에서 생산하는 '이종 제품 혼류생산',시장 변화에 따라 수시로 생산품목을 바꿀 수 있는 '아메바형 공장' 등이 향후 제조업 생산부문의 흐름을 장악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