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 칼럼] 갑옷 입은 외국기업 vs 벌거벗은 한국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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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느 나라 기업을 위해 만든 법인가. 법무부가 최근 내놓은 상법개정안을 살펴보면 이런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어 장치를 도입해 기업 경영권 보호를 지원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내용은 속빈 강정이나 다를 게 없다. 기업들은 여전히 황무지에 버려진 그대로다.
개정안은 포이즌 필(신주인수선택권)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기업이 적대적 M&A 공격에 노출됐을 때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싼 값으로 신주를 인수토록 해 공격을 무산시킬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없던 제도를 새로 도입하는 것이고 보면 진일보한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실효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포이즌 필을 도입하려면 정관을 개정해야 하고,정관개정은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쳐야 한다. 주총 참석주주의 3분의 2,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 일본 등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발동할 수 있게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주요 기업의 지분 현황을 살펴보면 왜 이 규정이 현실성이 없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삼성전자의 경우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자사주 포함)은 28.2%다. 반면 외국인 지분율은 47%안팎을 오르내린다. 현대자동차 또한 최대주주 지분율이 24.9%인 데 반해 외국인 지분율은 36%가량에 이른다. 포스코는 외국인 지분이 49% 선에 달하지만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은 5.4%를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실효성 논란이 빚어지는 건 당연한 노릇이다. 요건 충족이 문제가 되지 않는 기업이라면 애초부터 경영권방어 수단 자체가 없어도 되는 기업들일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포이즌 필 이외의 다른 경영권 방어 장치들은 아예 도입 대상에서 빠졌다는 점이다. 주식 1주에 2주 이상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의결권제도, 단 1주만으로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 제도,이사 해임 등에 대해선 결의 요건을 강화한 초다수결의제 같은 게 그런 것들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다른 선진국들에선 허용하는 방어수단들인데 왜 우리만 굳이 외면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원론적으로만 따진다면 법무부 안을 잘못된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는 없다. 주식회사의 기본 성격을 감안하면 1주당 1의결권 원칙이나 주주평등 원칙을 최대한 지키려는 노력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 경영권 방어 장치는 대주주 등 기존 주주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생각의 범위를 세계로 넓혀보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지금은 기업들이 국경선도 없이 경쟁하는 시대다. 그런데도 유독 우리 기업들만 경영권 방어 수단을 갖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불공평한 일도 없다. 실제 상장기업들은 자사주를 무려 41조원(6월 말 유가증권시장기준)어치나 보유하고 있다. 여차하면 경영권 방어에 사용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음은 물론이다. SK 삼성물산 KT&G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조차 외국계 자금의 M&A 공격으로 혼쭐이 나는 것을 목격한 탓이다. 이 자금을 투자활동으로 돌렸다면 기업 실적은 물론 고용 확대에도 큰 도움이 됐을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경영권 방어 장치를 갖춘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이 경쟁하는 것은 한 쪽은 방탄복을 입고,한 쪽은 벌거숭이로 싸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외국 경쟁 기업을 사들일 수 없는데 외국 기업들은 얼마든지 우리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현실은 정말 말이 안 된다. 다른 나라들이 경영권 방어 장치를 만들면 우리 또한 그리 해야 마땅하다. 제도를 악용하는 상황이 걱정된다면 남용을 막을 장치를 치밀하게 강구하면 될 일이다. 우리 스스로 불리한 경쟁 환경을 만들고 기업들을 수렁에 몰아넣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봉구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
개정안은 포이즌 필(신주인수선택권)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기업이 적대적 M&A 공격에 노출됐을 때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싼 값으로 신주를 인수토록 해 공격을 무산시킬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없던 제도를 새로 도입하는 것이고 보면 진일보한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실효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포이즌 필을 도입하려면 정관을 개정해야 하고,정관개정은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쳐야 한다. 주총 참석주주의 3분의 2,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 일본 등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발동할 수 있게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주요 기업의 지분 현황을 살펴보면 왜 이 규정이 현실성이 없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삼성전자의 경우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자사주 포함)은 28.2%다. 반면 외국인 지분율은 47%안팎을 오르내린다. 현대자동차 또한 최대주주 지분율이 24.9%인 데 반해 외국인 지분율은 36%가량에 이른다. 포스코는 외국인 지분이 49% 선에 달하지만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은 5.4%를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실효성 논란이 빚어지는 건 당연한 노릇이다. 요건 충족이 문제가 되지 않는 기업이라면 애초부터 경영권방어 수단 자체가 없어도 되는 기업들일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포이즌 필 이외의 다른 경영권 방어 장치들은 아예 도입 대상에서 빠졌다는 점이다. 주식 1주에 2주 이상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의결권제도, 단 1주만으로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 제도,이사 해임 등에 대해선 결의 요건을 강화한 초다수결의제 같은 게 그런 것들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다른 선진국들에선 허용하는 방어수단들인데 왜 우리만 굳이 외면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원론적으로만 따진다면 법무부 안을 잘못된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는 없다. 주식회사의 기본 성격을 감안하면 1주당 1의결권 원칙이나 주주평등 원칙을 최대한 지키려는 노력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 경영권 방어 장치는 대주주 등 기존 주주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생각의 범위를 세계로 넓혀보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지금은 기업들이 국경선도 없이 경쟁하는 시대다. 그런데도 유독 우리 기업들만 경영권 방어 수단을 갖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불공평한 일도 없다. 실제 상장기업들은 자사주를 무려 41조원(6월 말 유가증권시장기준)어치나 보유하고 있다. 여차하면 경영권 방어에 사용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음은 물론이다. SK 삼성물산 KT&G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조차 외국계 자금의 M&A 공격으로 혼쭐이 나는 것을 목격한 탓이다. 이 자금을 투자활동으로 돌렸다면 기업 실적은 물론 고용 확대에도 큰 도움이 됐을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경영권 방어 장치를 갖춘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이 경쟁하는 것은 한 쪽은 방탄복을 입고,한 쪽은 벌거숭이로 싸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외국 경쟁 기업을 사들일 수 없는데 외국 기업들은 얼마든지 우리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현실은 정말 말이 안 된다. 다른 나라들이 경영권 방어 장치를 만들면 우리 또한 그리 해야 마땅하다. 제도를 악용하는 상황이 걱정된다면 남용을 막을 장치를 치밀하게 강구하면 될 일이다. 우리 스스로 불리한 경쟁 환경을 만들고 기업들을 수렁에 몰아넣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봉구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