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들이 주력사업인 석유정제부문에서 손실을 입고,'부업'인 석유화학부문으로 적자를 메우는 구조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8일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4개 정유사의 3분기 실적에 따르면 매출에서 석유화학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회사별로 7~30%에 불과하지만,전체 영업이익을 흑자로 돌리거나 적자폭을 최소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2분기에 이어 본업과 부업이 뒤바뀐 '주객전도(主客顚倒)'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는 것.4분기 들어서도 석유정제사업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어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될 전망이다.

◆정제설비,돌릴수록 손해

정유사들은 올 들어 3분기까지 석유정제사업에서 모두 적자(누적실적 기준)를 냈다. 싱가포르 현물시장 기준으로 휘발유 단순(1차) 정제마진은 작년 4월 배럴당 -1.42달러에서 지난달에는 -4.31달러까지 떨어졌다. 원유 1배럴을 정제해 석유제품을 만들 때마다 4.31달러씩 손해를 본다는 얘기다.

정제마진이 맥을 못추는 이유는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은 제자리인데 원유 값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원유를 해외에서 들여와 휘발유 경유 등을 생산하는 정유사는 원유와 제품(휘발유 경유) 가격차가 클수록 이득을 보게 돼 있다. 작년 상반기 원유와 휘발유 가격 차이는 배럴당 15~20달러까지 벌어졌지만,글로벌 금융위기 영향 등으로 휘발유 소비가 줄면서 올 들어 가격차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4분기 들어서도 이 같은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월 6달러대였던 가격차는 10월 들어 3달러 밑으로 떨어진 뒤 이달 둘째주 기준 2달러대에 머무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원유 수송과 정제설비 가동,제품 유통에 드는 비용을 감안할 때 현재의 가격구조로는 이익을 낼 수 없다"고 전했다.

그동안 단순정제 손실을 상쇄하던 고도화설비의 2차(값싼 벙커C유를 휘발유 등 경질유로 바꾸는 것) 정제마진도 지난 3월 이후 마이너스로 돌아선 뒤 지난달 배럴당 -3.55달러까지 하락,정유업계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올 들어 원유가격은 향후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과 투기세력이 몰리면서 상승폭이 컸지만,휘발유와 같은 석유제품은 아직 실수요가 받쳐주지 않아 원유와 석유제품 가격차가 갈수록 좁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업'에서 겨우 만회

그나마 비주력인 석유화학사업이 정유사들의 실적을 떠받치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SK에너지는 3분기에 분기 기준 최대 수준인 178만t 규모의 석유화학제품을 중국 등에 수출하면서 2조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페트병 원료인 TPA 등을 만드는 데 쓰이는 파라자일렌을 비롯해 합성수지 원료인 벤젠 · 톨루엔 · 자일렌(BTX) 제품 판매가 호조를 보인 덕분이다.

GS칼텍스 역시 BTX 사업 호조로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석유화학사업 영업이익이 석유사업의 영업이익을 앞질렀다. 두 회사 3분기 윤활유사업 등을 포함한 전체 영업이익이 각각 820억원(SK에너지),146억원(GS칼텍스)을 기록한 것도 매출액 대비 20~30%에 이르는 석유화학부문이 주된 역할을 했다.

반면 석유화학사업 비중이 낮은 에쓰오일(매출액의 7%선)과 현대오일뱅크(생산량의 3%)는 전체 영업수지가 각각 705억원,505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에 따라 이들 회사는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석유화학사업 비중을 늘리고 있다.

이정선/이정호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