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논의가 점화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19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자동차가 문제가 된다면 다시 이야기할 자세가 돼 있다"며 재협상의 빌미를 제공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겨 향후 논의가 주목된다.

◆'기존 틀 바꾸는 재협상은 없다'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 대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재협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측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들어보겠다는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혜민 FTA 교섭대표도 "자동차 한 분야만 보지 말고 큰 틀에서 보자는 것으로 (재협상은 없다는)기존 입장과 큰 차이가 없다"면서 "큰 흐름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FTA의 효과는 산업별로 차이가 있는데 미국이 자동차에 문제가 있다고 하니까 구체적인 요구안을 가져오면 검토해볼 수 있다는 것.미국 측은 이번에 자동차와 관련한 구체적인 요구안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한국에서도 서비스업과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FTA를 반대하고 있는데 그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 도움이 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에 원안 수용 후 조속한 비준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서진교 대외경제연구원 무역투자정책실장은 "농업이나 서비스 등 한국이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분야를 언급한 것은 미국 정부와 의회에 한 · 미 FTA 성사에 대한 책임감을 갖도록 요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미국의 향후 움직임 주시해야

미국은 자동차와 관련한 어떤 새로운 요구를 우리 측에 해올 가능성이 충분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의 압박을 앞세웠다. 그는 아시아 전체와의 무역 불균형을 의회가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치러야 한다. 민주당이 아시아의 시장 개방을 주장할 공산이 크다.

오바마로선 미국 차가 한국에서 터무니없이 적게 팔리는 상황에서 이미 합의된 대로 한 · 미 FTA를 비준해달라고 민주당에 요구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다. 이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국에 양보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FTA논의 때문에 정상회담이 30분 이상 길어질 만큼 오바마는 FTA에 집착했다.

그러나 한국은 모든 자동차와 부품의 관세를 발효 즉시 철폐키로 해 추가 양보할 게 없는 것이 현실이다. 소비자가 미국차를 외면하기 때문에 미국차가 한국시장에서 고전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쇠고기 추가 협상처럼 미국이 시장 개방의 폭을 줄이는 쪽으로 추가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3000㏄ 이하 승용차를 즉시 개방키로 약속했는데 이 차종에서 한국차의 경쟁력이 강한 만큼 개방을 늦추길 원할 공산이 크다. 일각에선 미국의 빅3가 한국에서 현대자동차 등 국산차의 판매망을 공유토록 하는 방안도 아이디어로 나오고 있으나 이것은 민간 기업들의 자율적인 선택에 맡겨야 하는 사안이다.

양측의 논의가 해결점을 찾지 못할 경우 비준이 늦어질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해결할 필요가 있는 몇 가지 세부 문제가 있다"면서 "내년 초에 의회 비준을 할 수 있을지,아니면 내년 말에 의회 비준을 할 수 있을지가 문제"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이 대통령은 한 · 미FTA 비준을 언제까지 마무리했으면 좋겠다는 시점을 특정해서 밝힌 것으로 알려졌으나 두 정상은 이를 양국 의회의 입장을 감안해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김 본부장은 "협상의 기존 틀을 고치는 일은 없다고 미국 측에 분명히 얘기했다"며 "미국에서 어떤 요구안을 갖고 오더라도 '손해 보는 장사'는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서욱진/홍영식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