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의 패권이 서서히 강남으로 넘어간 것은 1980년대 중반 테헤란로가 본격적으로 개발에 들어가면서부터다. 1972년 한양 천도 578주년 기념 사업으로 '삼릉로'라는 이름으로 조성하기 시작한 테헤란로는 1977년 오일쇼크 타개책의 일환으로 서울시가 이란의 수도 테헤란시와 자매결연을 맺으며 현재의 이름으로 바뀐다.
1970년대 영동개발 사업으로 압구정 현대아파트 등 강남구 일대의 아파트 단지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으나 테헤란로의 업무지구는 10년이 지난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갔다. 정부가 '노는 땅'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기로 하자 지주들이 앞다퉈 업무 · 상업용 건물을 테헤란로 일대에 짓기 시작한 것이다. 운전면허시험장,테니스코트,나대지 등이 혼재해 있던 인근 지역이 일대 격변을 겪은 것이다.
1988년 삼성동 한국종합무역센터(현 COEX) 준공이 상징하는 테헤란로 개발은 당시 경제 호황을 타고 기업들이 입주하면서 날개를 달았다. 넓은 대로와 지하철,고급 주거지 등의 주변 여건이 매력 포인트였다.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도 테헤란로는 더욱 성장해 스타타워,포스코센터,동부금융센터 등 고층빌딩이 속속 들어섰다. 2000년대 초반에는 벤처 붐을 타고 임대료도 크게 올랐다. 이 과정에서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사거리의 상권이 명동에 맞먹을 수준으로 성장했고,테헤란로의 중심 구간인 역삼역~선릉역에는 고급 유흥가가 형성됐다.
서울이 수도가 되고도 600년 가까이 주목을 못받았던 테헤란로 일대가 중심 거리로 성장했듯 현재의 아성도 언젠가는 허물어질 수 있다. 다만 테헤란로 개발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 거리란 업무와 상업,주거 등 도시의 모든 기능 면에서 다른 지역을 압도할 때에야 가능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