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나들이] 쉬엄~쉬엄~ 해안길 걷다보면…역사의 숨결 '하나' 가을바다 노을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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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유적지 걷기
강화도는 우리 역사의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 안에 고구려 소수림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한 전등사가 있다. 또 몽골 침입 땐 고려궁지로 도읍을 옮겼고,팔만대장경을 여기에서 조성했다.
근대사의 흔적은 더욱 생생하다. 12진 · 보,53돈대,9포대 등 군사 유적을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어 요새를 방불케 한다. 현재 남아 있는 군사 유적은 대부분 조선시대에 세워졌으나 막상 이들이 역사의 전면에 부각된 것은 개항기 즈음이다. 굳게 닫힌 조선의 문을 밀고 들어오려던 외세가 병인양요,신미양요,운양호 사건 등을 일으키며 조선 말기를 고단하게 했던 장소가 강화도이다.
강화도에서 근대사의 주요 현장을 한번에 돌아보는 방법 중 하나는 약 13㎞ 길이의 해안순환도로를 따라가는 것이다. 강화도와 뭍을 잇는 큰 두 개의 다리 중 강화대교를 바라보며 시작해 초지대교를 마주보며 마무리하는 이 평탄한 길에는 갑곶돈대,용진진,광성보,덕진진,초지진 등 유적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긴 다리를 스치며 떨어지는 붉은 노을을 보며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기에도 좋다. 무엇보다 이 길의 묘미는 잔잔한 가을바다를 보는 데 있다. 도로 옆으로 계속 바다가 이어지기 때문.이따금 수확이 끝난 논밭도 보여 전원의 정취도 느껴진다. 바다를 넓게 조망하고 싶으면 돈대 같은 유적으로 올라가면 된다.
이 길을 걷는 데는 4~5시간 걸린다. 부지런히 걷고 유적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을 경우 그렇다. 걷기를 좋아하는 이라면 비교적 따뜻한 가을날을 골라 삭풍이 불어닥치기 전에 걸어 볼 만하다. 드라이브 코스로는 짧은 감이 있지만 관심이 있는 유적 몇 군데를 골라 보며 해안순환도로를 돈 다음,인근의 전등사 등에도 들르면 반나절에서 하루 일정을 짜는 데 큰 무리가 없다.
강화대교 쪽에서 시작하든 초지대교 쪽에서 시작하든 큰 차이는 없지만,강화대교 쪽 강화역사관을 기점으로 잡고 발걸음을 옮겼다. 강화대교를 지나 서있는 강화역사관에는 여러 시대의 유물과 신미양요를 비롯한 강화도의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는 자료 등이 전시돼 있어 둘러 볼 만하다. 동절기(11~2월)에는 오전 9시에 열어 오후 5시에 닫는다. (032)930-7077
강화역사관 바깥에서는 갑곶돈대를 볼 수 있다. 돈대란 일종의 방위시설로,강화도에는 53개의 돈대가 있어 자주 마주치게 된다. 갑곶돈대는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의 침공에 대비해 만들었다. 갑곶돈대로 올라가면 강화대교도 잘 보이고 바다도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1866년 병인양요 때 조선의 천주교 탄압을 빌미로 프랑스의 로즈 제독이 상륙한 곳이 여기다.
갑곶돈대를 나와 계속 가다보면 왼쪽으로 보이는 누각이 조선 숙종 때 설치된 용진진이다. 용진진을 지나면 해안도로에서 만날 수 있는 유적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잘 조성되어 있는 광성보가 나온다.
조선 효종 때 세워진 광성보는 신미양요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미국 상선 셔먼호가 평양에 와서 상거래를 요구하다 조선 사람들과 충돌해 셔먼호 선원 전원이 사망한 셔먼호사건을 문제삼아 1871년 미국이 강화도에 와 무력을 행사하며 신미양요가 벌어졌다. 이때 열악한 상황에서도 외적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군사들의 무덤인 신미순의총과 어재연 장군 및 그 수하 군사들을 기리는 순절비인 쌍충비도 광성보에서 볼 수 있다.
용두돈대 등 다른 볼거리도 있다. 광성보는 쉬어가기 좋은 장소다. 큰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는,그다지 길지 않은 예쁜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바다 가까이 내려갈 수 있는 길도 있다.
그 다음에는 다시 병인양요와 관련된 덕진진이 나온다. 강화도를 점령하며 위세를 떨치던 프랑스군에 대항해 양헌수 장군의 부대는 덕진진을 통해 정족산성에 들어가 격파하는 데 성공했다. 덕진진을 지나면 초지진이다. 초지진 또한 중요한 근대사의 한 장면에 등장한다. 1875년 일본 군함 운요호(雲揚號)는 초지진에 나타나 무력 시위를 하고 피해를 입힌 뒤 퇴각했다. 다음 해 강화도 조약 체결의 빌미가 된 운요호사건의 개요다. 운요호사건뿐 아니라 병인양요,신미양요 때에도 몸살을 앓았던 흔적이 고스란히 초지진에 남아 있다. 늙은 소나무와 성벽에 포탄의 흔적이 남아 있으니 유심히 살펴볼 것.이후 초지대교를 보며 긴 여정을 마무리한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여행TIP
해안순환도로에 있는 여러 장소를 꼼꼼히 둘러볼 생각이라면 일괄이용권을 끊어도 좋다. 강화역사관부터 시작할 사람은 강화 방면 버스를 타고 강화대교를 지나 첫번째 정거장(청소년수련관)에서 내려 5분 정도 걸으면 된다. 승용차로는 강화대교를 지나 첫 번째 신호등에서 좌회전한 다음 300m 직진하면 된다. 각 유적마다 주차공간이 있다. 강화군 문화관광 홈페이지(tour.ganghwa.incheon.kr)에 가면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