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사들의 '거래 기근' 현상이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우리 증시에서 10개사 가운데 3개사의 하루 평균 거래량이 전체 주식 수의 0.5%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주식 환금성이 우려될 정도로 거래가 없는 상장사도 100개사에 육박한다.

상장 이후 기업설명회(IR)나 주주 중시 경영활동을 하지 않은 기업들도 책임이 있지만 유통시장 관리가 너무 소극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국거래소가 주식 거래 활성화를 위해 2006년 도입한 유동성공급자(LP) 제도는 물론 거래 부진 상장사에 대한 시장 조치도 실효성을 잃은 지 오래다.

◆극심한 거래 부진에 환금성 우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을 합쳐 하루 평균 거래량이 전체 주식 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인 회전율이 5%를 넘는 상장사는 215개(12.4%)에 불과한 반면 0.5%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장사가 499개(28.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회전율이 0.1%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거래 부진이 심각한 상장사도 95개(5.5%)로 나타났다.

회전율이 0.1%에도 못 미친다는 것은 상장사가 지닌 가장 큰 특성인 환금성이 제약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선재조흥의 경우 올해 하루 평균 거래량이 각각 100주,200주에 불과했으며 신영와코루 금비 삼정펄프 BYC 세기상사 전방 세원정공 등도 하루 평균 거래량이 500주에도 미치지 못했다. 식품첨가제를 만드는 조흥의 경우 이달 거래량이 전무했던 날도 6거래일에 달했다.

액면가가 상대적으로 낮아 주식 수가 많은 코스닥시장에서도 거래 부진 현상은 예외가 아니다. 일평균 거래 회전율이 0.5% 미만인 코스닥 기업이 210개(20.5%)로 5% 이상인 180개(17.6%)를 웃돌고 있다. 특히 푸드웰 에이스침대 양지사 중앙에너비스 대선조선 피제이전자 대양제지 삼보산업 엠에스씨 서주관광개발 등은 하루 거래량이 1000주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거래 부진에 빠져 있다. 우유팩을 만드는 삼륭물산의 경우 가격 왜곡 현상마저 우려되고 있다. 실제 매수호가와 매도호가가 너무 벌어져 이달에만 4차례나 종가에서 주가가 5% 이상 급등락하기도 했다. 정의석 신한금융투자 투자분석부장은 "거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공정한 가격 형성이 어렵고 심지어는 불공정거래 행위가 야기되는 등 증시의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거래 활성화 유인책 마련 시급

하지만 기업공개(IPO) 이후 관리를 소홀히 하는 기업이 줄을 이으면서 거래 기근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일부 기업은 경영권 상속 등을 앞두고 있어 IR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거래를 방치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주식 거래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거래소가 2006년 도입한 LP 제도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가입 기업은 31개에 불과하다. LP 가입 기업은 연 1500만원 내외의 비용을 지불하고도 효과가 미미하다며 하소연하고 있으며 LP로 참여하는 증권사들은 적자사업이라고 발을 빼고 있다.

거래소는 분기 월평균 거래량이 유동 주식 수의 1% 미만인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관대한 예외 조항으로 인해 실효성을 상실한 상태다. 올해 월평균 거래량이 1%에 미치지 못하는 상장사는 45개에 달하지만 현재 거래 부진에 따라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상장사는 한곳도 없다. 월평균 거래량이 1만주 이상이거나 소액주주 300명 이상이 유동 주식 20%를 보유한 회사 등은 예외로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체 상장 기업이 1700개를 넘어설 정도로 많아졌지만 유통시장에 대한 관리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어 보다 강력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시장에서는 거래가 부진한 상장사에 대해선 균형가격 발견 기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30분마다 한번씩 거래를 체결하게 하는 단일가 매매 방식을 적용해 거래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

아울러 LP 제도 활성화를 위한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IPO 주관 증권사가 해당 기업의 상장 이후 거래 활성화까지 책임질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이 갖춰져야 한다"며 "현재 자본시장법의 단기매매차익 조항이나 리서치센터와의 이해 상충 문제 등이 구조적으로 LP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LP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선 거래세 면제나 매매체결권 보장 등 보다 강력한 유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