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공식 인정할 경우 미일관계 더 꼬일듯

핵무기를 탑재한 미국 선박의 일본 입항을 묵인하는 내용의 미·일 핵 밀약을 뒷받침하는 문서가 일본 외무성에서 발견되면서 양국 관계의 새로운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8·30 총선에서 자민당을 대파하고 9월 발족한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정권이 이런 내용을 발표하고 핵 밀약이 있었음을 인정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이 문서는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외상이 특별팀을 만들어 외무성에 대해 밀약의 존재를 조사하도록 지시한 뒤 실제 외무성 내에서 발견됐다.

발견된 문서는 1960년 1월의 미·일 안보조약 개정 직전의 핵무기 반입과 관련한 사전 협의 등의 내용을 논의한 '토의기록'을 정리한 것이다.

오카다 외상은 오는 24일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제3자 위원회를 만들어 외무성에서 발견된 문서에 대한 정밀 검증을 요청할 방침이다.

오카다 외상은 검증을 거쳐 내년 1월 조사 내용을 발표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해당 문서가 핵 밀약을 인정하는 내용인 만큼 오카다 외상의 발표도 "미·일 간에는 핵 밀약이 있었다"는 내용이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양국 간 핵 밀약은 1960년 양국 안보조약 개정 시 일본 국내로 핵무기와 중장거리 미사일을 반입할 때 사전협의를 하도록 규정하면서, 핵무기 탑재 미 함정의 기항과 항공기의 영공 통과 등의 경우에는 사전협의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비밀리에 합의했다는 것이다.

자민당 정권에서 일본 정부는 이런 밀약이 있다는 것을 부인해 왔다.

문제는 핵 밀약의 존재를 일본 정부가 인정할 경우 파문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그동안 일본은 비핵 3원칙을 견지한다고 선언해 왔다.

비핵 3원칙은 일본 정부가 1968년 1월 발표한 것으로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고, 보유하지 않으며,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핵 밀약을 인정하게 되면 그동안 미국측이 일본에 사전 통보 없이 핵 탑재 함선을 기항시켰을 개연성이 제기되는 만큼 비핵 3원칙 준수라는 일본의 주장이 무력화될 수 있는 것이 문제다.

또 비핵 3원칙에 대한 논란이 확산하면 일본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공의 정당성 여부까지도 여파가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논의가 본격화하면 현재 미·일 간 최대 논란 사안인 주일미군 후텐마(普天間) 비행장 이전 문제와 맞물리면서 미·일 관계를 더욱 꼬일 수도 있다.

지난 10월 일본을 방문한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이 일본 정부의 핵 밀약 조사와 관련, "미·일 관계에 악영향을 주지 않길 바란다"고 말한 것도 이런 점들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그동안 핵 밀약의 존재를 부정했던 자민당 정권에 대해서도 여론의 비판이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 모두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되는 사안인 셈이다.

(도쿄연합뉴스) 최이락 특파원 choina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