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친구들 머리 위로 손을 올려서 '앙 오(en haut)','파세(passe)'."

지난 14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민회관 내 서울발레시어터 연습실.김인희 단장을 따라 초등학생 22명이 머리 위로 두 손을 올려 원을 그리고(앙 오),오른쪽 발바닥을 왼쪽 무릎 옆에 붙이는(파세) 발레 기본 자세를 잡는다. 아이들은 "어려워요"라면서도 연신 즐거운 표정이다.

CJ그룹이 소외 아동을 위해 마련한 발레 교실의 한 장면이다. 이날 행사에는 충남 서천시 열린공부방 어린이 8명과 경기도 부천시 성산공부방 어린이 14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김 단장의 지도 아래 발레의 기본 동작을 배우고 서울발레시어터의 '호두까기 인형' 1막 리허설도 감상했다. CJ는 다음 달 13일 서울발레시어터의 '호두까기 인형' 공연에 이들을 포함한 소외계층 어린이 200여명을 초청한다.



◆소외 아동 위한 문화체험 교육

CJ는 순수예술을 접하기 어려운 소외계층 아동들을 위해 2007년부터 매년 네 차례 발레 교실을 열고 있다. CJ나눔재단이 운영하는 온라인 나눔터 '도너스 캠프(donors camp)' 홈페이지(www.donorscamp.org)에서 공부방 선생님들의 신청을 받아 CJ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서울발레시어터와 연결해주는 방식이다. 이날 발레교실에 어린이들을 인솔하고 온 서천 열린공부방의 김청강 센터장은 "단순히 1~2시간 공연을 보는 정도가 아니라 평소 아이들이 접하기 어려운 발레를 직접 체험할 수 있어 멀리서 온 보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발레 교실에서 재능을 보인 어린이는 서울발레시어터 아카데미에서 무료 강습을 받고 무대에 서는 기회도 얻는다. 제1회 발레 교실에서 소질을 보였던 김모양(10)은 2년가량의 훈련 끝에 지난 3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공연에 참가할 수 있는 실력을 쌓았다. 조정은 CJ나눔재단 과장은 "이혼 가정에서 자라 풀이 죽어 있었던 김양이 발레를 배우면서 당당하고 밝아졌다"고 말했다. 현재 소외아동 4명이 발레 교실을 계기로 아카데미에서 무료 교육을 받고 있다.

◆'매칭 그랜트'로 기부문화 확산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서는 교육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2005년 사재를 출연,사회공헌 법인 CJ나눔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의 핵심 활동이 도너스 캠프다. 전국 1650여개 공부방 및 지역아동센터에 기부금을 전하고,소외 아동과 공부방 선생님을 위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도너스 캠프의 기부 활동은 '매칭 그랜트(matching grant)' 방식으로 이뤄진다. 공부방이나 지역아동센터,지방 분교 선생님 등이 캠프 홈페이지에 교육 제안서를 올리면 기부자가 선택해 후원금을 내고,재단 측이 동일 금액을 더해 지원하는 방식이다. 조 과장은 "전 과정이 모두 온라인상에 공개돼 제안서 선정 및 기부 과정이 투명하게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도너스 캠프는 설립 초기 CJ 임직원만을 대상으로 삼았으나,2006년부터는 기부문화 확산 차원에서 일반인에게도 개방됐다. 홈페이지 회원수는 2005년 2900명에서 지난 10월 말 기준 15만2400명으로 불어났다. 지금까지 도너스 캠프를 통해 소외 아동을 위한 교육 사업에 지원된 금액은 총 72억4600여만원.매칭 그랜트에 따라 이 중 절반인 36억2300여만원은 재단 측이 부담했다. 조 과장은 "도너스 캠프는 기부자와 수혜자가 직접 소통하는 열린 공간을 제공하고 일반인들이 자발적으로 기부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지식 기부'로 미래의 희망을 키운다

CJ나눔재단이 지난해부터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지식 기부'다. 국내 첫 우주인 이소연씨,'새 박사'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패션디자이너 장광효씨,한국화가 사석원씨 등 각 분야 전문가나 파워 블로거 등을 초빙해 과학,운동,미술,요리,법 등을 주제로 무료 강좌를 열고 있다.

지난 6월부터는 이 회장이 강조하는 '지속적 공헌,그룹 인프라를 활용하는 공헌,임직원이 직접 참여하는 공헌'의 슬로건 아래 초 · 중생 대상의 '진로비전 캠프'를 시작했다. 소외 계층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함께 롤 모델을 찾을 수 있도록 적성검사,현장 견학,대학 탐방,비전맵 작성 등의 프로그램을 3~4일간 진행한다. 특히 그룹 인프라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난 8월 캠프에선 학생들이 CJ제일제당,CJ오쇼핑,CJ엔터테인먼트,CJ CGV 등 CJ그룹의 주요 계열사를 방문해 직업 교육을 받기도 했다.

김경숙 예일지역아동센터 교사는 "정보 부족으로 공부에 흥미를 갖지 못하는 소외 학생들에게 대학 진학과 같은 구체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