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비 인상·전임 축소·수익사업…노동계 '전임자 無임금' 물밑대비
대기업 노조들이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에 대비해 물밑에서 다각적인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복수노조 허용 및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원칙적으로 시행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확고해지면서 눈앞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어서다. 특히 두 제도의 연착륙과 관련해 정부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기업 규모에 맞춰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기업 노조들은 1차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고 대비책을 강구 중이다.

22일 노동계에 따르면 상당수 대기업 노조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시행될 경우 현재 연간 조합 예산 기준으로 2~4년 내에 노조 재정이 바닥날 것으로 분석하고 이에 따라 조합비 인상이나 전임자 축소,기금 마련,수익사업 진출 등 재정자립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대기업 노조들이 우선적으로 검토하는 방안은 조합비의 인상이다. SK㈜ 노조 관계자는 "2000년 조합비를 0.4%포인트 인상해 어느 정도 조합 재정에 여유가 있는 상황이지만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시행되면 현재의 조합비로는 전임자 임금도 제대로 충당할 수 없다"며 "조합원의 이해를 구해 조합비를 인상하거나 또는 수익사업 등에 나서는 방안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노조 관계자는 "전임자 문제가 논의되던 2006년 당시 조합비를 0.5%포인트 인상해 5억원가량을 적립했다"며 "하지만 전임자 문제가 시행되면 2~3년가량 버티는 정도에 불과한 만큼 1~2년 후에는 전임자 축소와 조합비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토로했다.

서울메트로와 현대중공업 노조는 전임자를 축소키로 방침을 정했다. 서울메트로 노조는 기금 마련 등을 통해 재정자립도를 높이는 한편 현재 25명인 전임자 중 11명가량을 줄이기로 했다. 정연수 노조위원장은 "노조 자주성 확보를 위해서는 받아들여야 할 제도라는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현대중공업도 이달 초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앞두고 현재 12개인 부를 7개 실로 바꾸기 위한 규약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직 슬림화를 통해 노조 운영 비용을 줄이겠다는 생각이다.

비교적 재정자립도가 높은 금융권 노조도 사정은 비슷하다. 하나대투증권 노조 관계자는 "노조 기금이 15억원가량 적립돼 있긴 하지만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시행되면 평균 임금의 70~80%밖에 지급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일단 시행 여부와 회사 측 반응 등을 지켜보고 조합비 인상이나 수익사업 진출 등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시행될 경우 기업 측 보조를 요구하겠다는 노조들도 늘고 있다. 효성그룹 계열사인 효성에바라는 최근 임금 인상 요구안 외에 '(전임자 문제를 다룬) 노동법이 본격 시행되면 노사 간 특별 교섭을 진행한다'는 요구안을 내걸고 파업 중이다. 역시 파업 중인 대덕프라임과 신용보증기금 등도 '2010년 이후에도 사측이 전임자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도 최근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시행되면 사측과 특별단체 교섭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지침을 각 지역지부에 하달했다. 상급노조들도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대비책 마련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시행되면 조합비를 인상해 문제를 해결하고,인상분은 임금 인상을 통해 보전할 수 있도록 사측에 요구하겠다는 노조도 상당수다.

김홍렬 코오롱 노조 위원장은 "노조들이 전임자 문제에 미리부터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내년에 복수노조까지 허용될 경우 재정자립도가 근로자들의 노조 선택에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며 "재정자립도가 낮고 그에 따라 조합원들로부터 많은 조합비를 거둬들이는 노조들은 외면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