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문에서 국토해양부가 자동차보험의 정비요금을 인상해 공표할 예정이고,그에 따라 자동차 보험료가 올라갈 것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시장경제 원리상 정비업체와 보험사 간의 개별계약을 통해 정비요금을 정해야 하지만,양자간 입장이 워낙 다르다 보니 2005년 당시 건설교통부가 개입해 자동차보험 정비요금을 공표하기에 이르렀다. 양자간 갈등에 개입하거나 어느 한쪽의 입장을 지지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대학에서 자동차보험법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정비요금 공표제도가 갖는 문제점에 대해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원래 1997년까지는 정비요금이 정비연합회와 손해보험협회와의 단체협상을 통해 결정됐으나,당시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러한 단체협상이 관련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정비업체와 보험사간 개별계약으로 전환하도록 명령함에 따라 한동안 개별계약이 실시됐다. 그러나 시간당 공임의 인상 문제를 두고 양자간 갈등이 되풀이됐고,당시 주무부처가 분쟁의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 정비요금 공표제도를 추진한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나 금융위원회,재정경제부 등은 이 제도를 도입할 당시부터 반대했고 손해보험업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비요금을 정부가 개입해 공표하는 것은 정비업체간의 자유로운 경쟁을 제한하게 되고 정비업체들은 정부의 방침을 그대로 준용하거나 이를 기준으로 가격을 협의하게 되므로 결국 가격담합을 유도할 수 있어 공정경쟁 관련 법에 저촉될 소지가 매우 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제도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OECD 국가 중 정비요금을 정부가 공표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물론 공표된 가이드라인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공표 요금을 무시하고 개별요금을 적용할 정비업체나 보험사가 몇 군데나 될까. 결국 강제규정과 다름없는 역할을 하게 되며 이렇다 보니 수리기술이 좋든 나쁘든 간에 모든 정비요금이 비슷할 수밖에 없다.

정비연합회가 이 제도의 실시를 주장하는 중요한 근거는 개별협상을 하게 되면 경영상의 어려움이 있으며 보험사와의 대등한 당사자 지위에서의 계약이 어렵다는 점을 들고 있다. 정비연합회의 이러한 주장에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경영상의 어려움은 정비업체 내부의 노력이 요구되는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정비업체의 과잉설립과 이에 따른 경쟁과잉이 결국 정비업계의 경영난을 초래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대등한 당사자 지위의 문제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의 감시 및 감독 활동이 요구된다. 공정거래위원회 스스로가 정부가 개입하는 현행 제도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만큼 개별협상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 시장 감시자로서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보험사로서도 정비업체가 대등한 당사자의 지위에서 협상에 임할 수 있는 여건 마련에 인색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른 OECD 국가가 개별협상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었던 요인을 면밀히 분석해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이제 보험사의 몫이 됐다. 적정한 정비수가 파악을 위해 공신력있는 민간단체가 일정한 신뢰성과 업계 표준 이상의 인적 · 물적 시설을 갖춘 정비업체들을 대상으로 실제 수가를 조사하고,그 결과를 토대로 정비업체와 보험사가 개별계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현행 공표제도를 대체하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제 고객을 사이에 두고 정비업계와 손해보험업계가 갈등하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양자 모두 양보할 것은 양보하는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보험소비자와 정비업계, 그리고 보험회사의 상생과 발전을 위한 매개체로서 새롭게 기능하기를 기대한다.

박세민 < 고려대 교수·법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