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제화업체는 단연 55년 역사의 금강제화(법인명 ㈜금강)다. 올해 6000억원의 매출로 2위인 탠디(1800억원 예상)보다 3배 이상 외형이 크다. 하지만 금강제화 매장에는 '금강'이란 브랜드가 부착된 구두가 하나도 없다. 소비자들은 빨간 마름모 로고의 '금강제화'를 떠올리지만 정작 구두에는 '리갈''제니아''버팔로' 등 30가지 다른 브랜드가 붙어있다. 그 이유는 '금강제화'가 신발 브랜드가 아닌 매장 브랜드이기 때문.한 매장에서 다양한 브랜드를 선보이는 국내 최초의 멀티브랜드 신발매장이 바로 금강제화인 것이다.

◆급격한 판도 변화에도 여전히 1위

작은 구둣방에서 맞춤으로 제작해 신던 시절인 1954년 금강제화는 서울 광화문에 1호점을 내면서 공장에서 구두를 대량 생산해 판매하는 '기성화 시대'를 열었다. 1974년 학생화 '랜드로바'를 출시했고,1976년 제화 브랜드 '비제바노'를 선보이며 사세를 키웠다. 신용호 금강제화 사장(55 · 사진)은 "당시 소비자들이 제품을 고르는 기준은 튼튼하고 오래 신을 수 있느냐였다"며 "칠성제화,케리부룩 등 살롱화들도 있었지만 1980년대 들어 에스콰이아,엘칸토와 함께 3대 기성화 브랜드로 집중됐다"고 말했다. 1970~80년대 금강제화는 명동에만 금강제화 3개,랜드로바,비제바노 등 5개 매장(현재는 1개)을 보유했고,심지어 제화 3사가 함께 '슈즈 쇼'까지 열었을 정도로 기성제화 붐을 이뤘다는 게 신 사장의 설명이다.

제화업체들의 전성기는 1993~94년. 신 사장은 "명절 시즌이면 고객들이 명절 빔으로 구두를 사러 몰려들었다"며 "명동 매장에선 하루 3000켤레(5억원어치)를 팔았다"고 기억했다. 백화점 매장에는 요즘 명품 매장들처럼 보호선을 치고 출입 인원을 통제해야 했다. 심지어 인파 탓에 명동 매장의 유리창이 깨진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지고,구두 상품권 판매로 외형 키우기에만 주력한 제화 3사는 외환위기 이후 급격한 하락세를 걷는다. 상품권 할인 영업과 소규모 살롱화들의 약진 속에 제품 경쟁력을 잃어 엘칸토에 이어 지난 6월 에스콰이아도 경영난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신 사장은 "소비자의 취향이 다품종 소량 주문 시대로 바뀌는 데 적극 대처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며 "대량 생산하던 기성화업체들은 과다 투자로 재고가 눈덩이처럼 쌓여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다(多)브랜드 전략으로 생존

금강제화는 효율이 떨어지는 매장을 줄이는 등 외환위기 직후 몸집을 확 줄여 회생에 나섰다. 금강제화가 선택한 생존전략은 '다브랜드' 전략.대량 생산하는 기성화 체제로는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의 살롱화처럼 시장변화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다양한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브랜드 다변화 체제를 구축해 나갔다.

이는 금강제화의 핵심 경쟁력인 30여개 직영 가두매장과 130여개 백화점 매장,110여개 대리점 등 전국 유통망이 있기에 가능했다. 한 매장에서 남녀 정장화는 물론 캐주얼화,아동화,레저화,핸드백,의류까지 30여개 브랜드를 판매했다. 특히 빅&스몰(평균 사이즈 초과 제품) 매장,고급화 헤리티지 매장 등 틈새 고객까지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백화점에선 요즘 금강제화가 탠디에 밀린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신 사장은 "탠디의 괄목할 만한 성장으로 금강제화도 재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며 "탠디처럼 일부 고객층을 상대로 트렌드와 유행을 쫓기보다는 오랜 시간 다양한 소비자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금강제화'로 국내 대표 제화업체 이미지를 키워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강제화는 슈즈멀티숍인 '레스모아'와 캐주얼브랜드 '스프리스'를 따로 운영하고 있으며,내년 초엔 이탈리아 명품 잡화 브랜드 '브루노말리'를 론칭할 계획이다. 신 사장은 "국내 제화시장에선 예전 같은 성장세를 기대하기 힘들다"며 "제품의 '대중적인 고급화'로 수익을 높이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상미 기자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