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기업경영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진보 가운데 하나는 연구소 설립이다. 연구개발(R&D)을 담당하는 독립기구인 연구소는 독일의 화학 산업에서 시작되었고 미국의 위대한 발명가이자 사업가인 에디슨에 의해 자리 잡았다. GE,AT&T,제록스 등 초우량 기업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상업용 연구소를 기업 내에 설립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과학 지식들을 사업화하는 데 성공했다. 발명 특허는 선두 기업들의 전유물이자,경쟁자들을 물리치는 탄탄한 진입장벽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헨리 체스브로 하버드대 교수는 기술혁신 분야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키워드는 개방성(openness)이다. 현대 과학의 엄청난 발전과 지식의 신속한 확산 덕분에 더 이상 개별 기업들이 기초연구부터 사업화까지 모든 연구개발 프로세스를 통제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위 닫힌 기술혁신 패러다임으로는 기업이 혁신의 주도권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혁신의 대명사였던 제록스가 팔로알토 연구소를 통해 PC,레이저 프린터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먼저 개발하고서도 정작 이를 상업화하는 데 실패해 애플이나 HP 같은 신생업체들에 산업의 주도권을 빼앗긴 것은 유명한 사례다.

또 통신과 컴퓨터 산업을 창조한 AT&T나 IBM은 한때 조직에 만연한 'Not Invented Here' 현상,즉 회사 외부에서는 배울 게 없다는 배타적인 태도 때문에 개척자의 지위를 상실하기도 했다. 반면 P&G,시스코,인텔 등의 기업들은 '열린 기술혁신'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과감하게 도입해 성과를 올리고 있다. P&G는 기술혁신의 50%를 외부에서 창출한다는 목표 아래 자체 연구개발 대신 외부 업체와의 연계를 통한 개발에 주력했다. 시스코도 닫힌 연구개발에서 벗어나 외부 파트너들과의 제휴나 기업 인수를 통해 짧아진 기술 수명과 속도 경쟁에 대응했다. 인텔이나 루슨트는 벤처 캐피털의 원리를 활용해서 외부 기술을 적극적으로 내부로 끌어들이고 자체 기술을 외부로 이전해 사업화를 모색했다. 결국 열린 기술혁신에서는 기업 자체에서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어디선가 누군가는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고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20세기 산업사회에서는 기업의 R&D 연구소가 주체가 되어 과학적 지식을 상업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21세기 지식 정보화 시대에는 개방성을 기반으로 한 외부와의 연계와 협업만이 혁신의 주도권을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될 것이다.

이동현 가톨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