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수도인 방콕에서 북쪽으로 달리기를 1시간여.아유타야시에 속한 한적한 시골마을에 널찍한 운동장같은 풍경이 확 들어온다. 얼핏보면 자동차 경주장 같다. 여기저기 큼지막한 번호를 단 자동차들이 바삐 움직이는걸 보니 더욱 그렇다. 그러나 아니다. 테스트장이다. 그것도 자동차가 아닌 타이어의 성능을 실험하는 곳이다. 다름 아닌 세계 최대 타이어 업체인 브리지스톤의 태국 푸르빙그라운드(Proving Ground)다.


◆다양한 테스트 코스

브리지스톤이 이달부터 아시아시장에 출시한 세단용 신형 타이어인 GR-90에 대한 성능 테스트가 실시된 지난 12일.첫번째 코스인 소음 및 승차감 측정 코스에 들어서자 도요타 캠리 4대가 줄지어 서 있다. 각각 브리지스톤의 신형 GR-90 및 신형 GR-80과 4만㎞를 주행한 중고 GR-90 및 중고 GR-80 타이어를 장착한 차량이다. 도쿄에서 왔다는 전문 드라이버는 4대의 자동차에 기자를 번갈아 태우고 500m길이의 직선도로를 달린다. 도로는 평평하지 않다. 요철도 있고,패인 곳도 있다. 10가지 조건의 도로형태를 갖추고 있다. 이곳을 다양한 속도로 운행하면서 과연 소음이 어떤지,승차감은 어떤지 느껴보라는 게 드라이버의 주문이다.

아마추어탓인지 처음엔 차이를 크게 느끼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두 번째로 코스를 달리자 차이가 느껴졌다. 소음과 승차감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는 GR-90을 장착한 자동차가 훨씬 조용했다. 요철길에서도 떨림이 적었다.

두 번째 코스는 다목적 테스트 패드.폭 220m,길이 220m인 정사각형 면적에 삼각뿔 형태의 가로막이 길을 안내한다. GR-90과 GR-80을 각각 장착한 캠리 두 대를 직접 몰았다. 급한 경사를 돌아보니 타이어별로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급코너링 때 새로 나온 GR-90의 안정감과 접지력이 훨씬 빼어남을 체감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코스는 메인서킷.총연장 3300m인 드리이빙 트랙을 질주하는 체험이었다. 서킷 커브는 경사 8%에 기울기 4.5도였다. 전문 드라이버는 최고 시속 200㎞까지 높였다가 속도를 줄이고,120㎞가 넘는 속도로 코너링을 하는 '묘기'를 선보였다. 심장이 떨릴 듯하다가,코너링을 할 때는 몸이 밖으로 튕겨져 나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도 빠졌지만 타이어의 성능을 다양하게 실험하는 데는 최고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코스는 젖은 노면과 마른 노면의 제동력 테스트.인위적으로 물을 뿌려 비오는 상황을 설정했다. 전문 드라이버는 시속 80㎞로 빗길 급코너링을 선보이며 GR-90의 빼어남을 느끼게 만들었다.


◆새 타이어 개발에 10만번 이상 테스트

브리지스톤의 태국 푸르빙 그라운드의 총 면적은 52만6196㎡(약 16만평).지난 1월 29억엔을 들여 완공했다. 기자는 4가지 실험코스만 체험했지만 총 실험코스는 8개나 됐다. 이곳에서 직선거리 주행,코너링,요철도로주행,젖은 노면 주행,급브레이크 등 다양한 실험을 실시한다. 속도변환 때 도로표면과 타이어 사이에서 발생하는 미끄러짐 현상인 수막현상을 실험하는 코스도 마련돼 있다. 내리막 경사와 오르막 경사도로도 갖춰져 있다. 한마디로 다양한 도로 상황을 설정해 과연 타이어가 제대로된 기능을 발휘하는지를 실험하는 테스트장이다.

푸르빙 그라운드의 원래 의미는 군사용 장비와 전술 등을 테스트하기 위해 첨단 설비와 지형,구조물을 설치한 시설을 말한다. 타이어회사의 푸르빙그라운드는 타이어가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설정한 시설을 가리킨다. 여기서 다양한 실험을 거쳐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타이어를 만들어 낸다.

이번에 선보인 GR-90도 마찬가지다. 당초 설계팀에서 만든 타이어로 실험주행을 한 뒤 결점을 보완해 새 타이어를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수정보완을 거친 타이어 종류만 20여개에 이른다. 타이어 1개당 수천번의 실험주행을 한 것을 감안하면 GR-90이 만들어지기까지 10만번 이상의 실험주행을 거친 셈이다.

타이어의 종류도 많다. 자동차용뿐만 아니라 농기계용도 있다. 모터사이클용은 별도다. 타이어가 달리는 기후도 천차만별이다. 태국 같은 뜨거운 나라도 있고 사막도 있다. 추운 나라,산악지형 등 설정해 야할 변수도 많다.

이러다보니 세계적인 타이어회사는 세계 각국에 푸르빙그라운드를 갖고 있다. 브리지스톤의 경우 미국 멕시코 브라질 이탈리아 태국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 등 8개국에 11개의 푸르빙그라운드를 운영하고 있다. 논 밭 산악 빙상 사막 등 다양한 환경조건이 갖춰져 있다. 이런 곳에서 다양한 실험을 거쳐 만들어낸 타이어이다보니 성능이 갈수록 향상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유타야(태국)=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