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의 매수 여력이 잇단 블록세일 탓에 약화되고 있다. 펀드 환매로 돈줄이 마른 투신권을 비롯한 기관이 시간외 대량 매매를 통해 현 주가보다 싼 값에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블록세일에 참여하느라 기존 보유 주식을 처분하면서 수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예금보험공사는 24일 개장 전 블록세일로 우리금융 지분 7%를 국내외 기관에 매각했다. 전날 종가보다 4.36% 할인된 주당 1만5350원에 넘겨 매각대금은 8660억원에 달했다. 예금보험공사가 당분간 지분 추가 매각을 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예상보다 많은 기관이 몰렸다는 전언이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우리금융을 할인된 가격으로 받게 된 기관들이 같은 업종의 하나금융 등을 팔아 블록세일 자금을 충당했다"며 "그렇지 않아도 기관 수급이 안 좋은데 예보가 9000억원 가까운 돈을 증시에서 빼낸 모양새"라고 말했다.

하루 전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도 웅진코웨이 보유 지분 1.69%를 기관에 블록세일로 넘겼다. 또 지난 18일엔 현대차가 현대모비스 주식 163만주(지분율 1.68%)를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기관에 블록세일을 통해 처분했다.

앞으로 예상되는 블록세일 물량도 적지 않다. 우선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동부화재 지분이 블록세일 매물로 나올 전망이다. 장효선 삼성증권 연구원은 "김 회장이 동부메탈 지분 매입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조만간 동부화재 지분 8~9%(약 2000억원)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져 많은 기관이 대기 중"이라고 말했다. 예보가 갖고 있는 신한지주의 전환상환우선주도 블록세일 대상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가뜩이나 '실탄'이 부족한 상황에서 블록세일 종목에 넣을 돈을 마련하느라 주식을 팔고 있어 기관의 수급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국내 주식형펀드의 환매가 재개되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증시가 1600을 넘어선 지난 18일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펀드에서 371억원의 자금이 순유출됐고 19일 554억원,20일 701억원이 추가 이탈했다.

또 국민연금이 이달 중 2개의 중소형주 펀드에서 돈을 회수할 것으로 전해지면서 운용사인 동양투신과 푸르덴셜자산운용이 주식을 팔고 있는 것도 중소형주의 매물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날 기관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574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코스피지수는 다우지수의 연중 최고치 경신 소식에도 기관 매물에 눌려 12.63포인트(0.78%) 내린 1606.42에 장을 마쳤다.

장경영/김재후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