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연소 신인왕과 역대 최연소 상금왕까지'

한국여자골프의 지존 신지애(21.미래에셋)이 24일 시즌 마지막 대회인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챔피언십에서 올해의 선수상을 아깝게 놓쳤지만 아무도 생각 못한 짧은 시간에 '준비된 골프여제'라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줬다.

신지애는 올 시즌 3승을 올리며 가볍게 신인왕을 확정지었고 로레나 오초아(멕시코)와 공동 다승왕에 오르는 등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국가대표를 포기하고 프로에 뛰어들었던 신지애는 2006년부터 한국 무대를 평정하며 무서운 10대로 떠올랐다.

2008년이 끝나갈 무렵 한국여자프로골프계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로 진출하는 신지애의 성적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해마다 수십명의 선수들이 세계 최고를 꿈꾸며 미국 땅으로 향하는 것이 다반사가 된 마당에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수도 있었지만 만 스물살을 갓 넘긴 어린 선수에게 관심이 집중된 것은 그녀가 짧은 시간 이뤄놓은 믿기지 않은 기록 때문이었다.

지난 해 신지애(21.미래에셋)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한 시즌 3개 메이저대회 석권을 포함해 7승 , 시즌 상금 사상 첫 7억원 돌파, 3년 연속 상금왕, 정규 멤버가 아니면서도 LPGA 투어 세차례 우승이라는 기록들을 달성했다.

올해 LPGA 투어 정식 멤버로 나선 첫 시즌에 올해의 선수상을 차지하며 여자골프의 정상에 오른 신지애는 어떤 상황에서도 밝은 웃음을 지었지만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여의는 아픔을 딛고 이뤄낸 성과였기에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목사인 아버지 신제섭(49)씨가 일하던 전남 영광에서 처음 골프채를 잡았던 신지애 2003년 11월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어머니가 숨을 거뒀고 함께 자동차를 타고가던 두 동생도 크게 다쳐 1년 넘게 병간호를 해야했다.

신지애는 이 기간 병실 한 귀퉁이에 간이 침대를 마련해 놓고 동생 병간호를 하면서 생활했다.

동생들이 퇴원한 뒤에도 별로 나아질 것은 없었다.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가정이 아니었기에 신지애는 단칸 셋방에 아버지와 두 동생 등 네명이 함께 살았다.

.
골프 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던 신지애는 초청 선수 자격으로 출전한 2005년 11월 KLPGA 투어 SK엔크린인비테이셔널에서 쟁쟁한 선배를 제치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미 국가대표로 선발돼 2006 도하아시안게임 출전을 눈앞에 뒀던 신지애는 고민했다.

아버지가 동생들 병간호와 자신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사실상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신지애가 `소녀 가장'이 돼야 했다.

결국 신지애는 아마추어 최고의 명예인 국가대표를 포기하고 2005년 11월 프로 무대에 뛰어 들었다.

유난히도 유망주가 많았던 1988년 생 중에도 프로에 진출한 선수가 많았지만 생존 경쟁이 치열한 프로무대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은 일. 하지만 신지애는 달랐다.

신지애는 신앙의 힘과 낙천적인 성격으로 이를 이겨내고 한국에서 성공 스토리를 써나갔다.

하지만 세계 무대의 정상에 서는 날이 이렇게 빨리 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을 못했다.

`지존'이라는 별명처럼 한국여자골프를 평정하고 세계무대에서 이름을 알린 신지애였지만 한국과 달리 먼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대회 일정과 전장이 긴 코스와 까다로운 그린에 맞서야 하는 LPGA 투어에서 한국에서처럼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신지애에게 2009년의 초반은 순탄치많은 않았다.

LPGA 투어 시즌을 앞두고 찾아온 첫번째 어려움은 후원사 구하기였다.

프로 데뷔와 함께 3년 동안 후원해준 하이마트와 결별한 신지애는 매니지먼트사까지 바꾸며 새로운 스폰서를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이미 여자골프의 스타로 훌쩍 성장한 신지애에게 걸맞은 대우를 하기가 부담스러웠고 미국 무대에서 성공 가능성도 아직까지 미지수였다.

신지애는 2009년 2월 자신의 첫 대회인 호주 ANZ레이디스마스터스를 메인 스폰서 로고가 없는 모자를 쓰고 치렀다.

대회를 앞두고는 감기 몸살 때문에 병원에 누워있기도 했다.

시즌 첫 대회부터 한차례 홍역을 치른 신지애는 마침내 미래에셋이라는 든든한 후원사를 얻었고 미국 하와이에서 LPGA 투어 멤버 자격으로는 처음으로 시즌 개막전인 SBS오픈에 출전한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신지애는 카후쿠의 터틀베이리조트골프장 파머코스에서 열린 2라운드에서 9오버파 81타의 최악의 샷을 날리며 중간합계 9오버파 153타라는 스코어로 어이없게 컷 탈락했다.

프로 데뷔 이후 컷오프는 물론 80대 타수를 적어낸 것도 처음이었다.

신지애는 "쓰디쓴 보약을 먹었다"며 가볍게 털어버렸고 3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HSBC 위민스 챔피언스에서 시즌 첫 승을 올리며 자신의 존재를 다시 세계에 알렸다.

하지만 대회만 출전하면 우승하는 모습을 보았던 한국 팬들로서는 싱가포르 대회 이후 좀처럼 들리지 않는 우승 소식에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크라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공동 21위, 미켈롭울트라오픈 공동 20위 등 톱10안에 들지 못하는 성적표에 신지애가 슬럼프를 겪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6월 열린 웨그먼스LPGA대회 우승으로 이같은 우려를 잠시 잠재우기는 했지만 여름을 지나면서 신지애의 샷은 예전의 위력을 찾지 못했다.

2008년부터 한국과 일본, 미국, 호주 등을 가리지 않고 대회에 출전하느라 체력 훈련을 할 시간이 없었고 이 영향은 드라이버샷 비거리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한국에서는 최고 270야드까지 날아갔던 티샷은 250야드 밑으로 떨어졌고 퍼트도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신지애는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했다.

장타보다는 정확성을 선택한 신지애는 페어웨이 안착률을 81%까지 끌어올렸고 롱아이언 대신 하이브리드 클럽을 꺼내들며 LPGA 투어의 장타자들과 맞섰다.

새로운 스윙 코치 스티브 맥라이(호주)와 호흡을 맞춘 뒤 컴퓨터 퍼트도 살아나면서 9월 아칸소 챔피언십에서 시즌 세번째 우승과 삼성월드챔피언십 3위 등 굵직한 대회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다시 비상하기 시작했다.

쟁쟁한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신인왕을 수상한 신지애는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을 제치고 여제에 등극한 로레나 오초아(멕시코)의 안방에서 열린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공동 3위에 올라 상금왕을 확정했다.

이제 남은 것은 올해의 선수상. 신지애는 24일 시즌 마지막 대회 LPGA 투어 챔피언십에서 치열한 순위 싸움 끝에 오초아에게 올해의 선수상을 넘겨 줬지만 한국여자골프사에 큰 획을 그었다.

내년 시즌에도 오초아와 골프여제 경쟁을 펼치고 10년이 넘도록 유럽 등 외국 선수가 1인자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던 미국 선수들의 도전도 거셀 전망이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을 온몸으로 맞서며 정상을 향해 달려온 신지애였기에 올해의 성공은 세계1인자로 올라서는 서곡에 불과하다.

.


(서울연합뉴스) 최태용 기자 c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