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이 여러분의 작품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습니까?"

지난 주말 일본 민영방송 TBS가 주최한 '제11회 TBS 디지콘6 어워즈' 시상식의 사전 행사엔 한국을 비롯해 태국,대만,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홍콩,중국 등에서 온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패널로 참가했다. 그 자리에서 사회자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기자의 관심을 끈 건 감독들의 답변."어렸을 때 접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으로 이 길을 걷게 됐다" "사실 내 작품에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력이 서려 있다" "일본은 아시아 애니메이션의 종주국이라고 생각한다" 등 칭찬 일색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등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들과 그들의 작품을 향한 각별한 애정도 털어놨다. 애니메이션 입문이나 창작 과정에 다들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인지,나중에 발언 기회를 얻게 된 감독들은 아예 "이미 다른 분들이 말씀하신 대로 저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을…"이라고 운을 떼기도 했다.

이 광경을 보며 '우리에게는 일본 애니메이션처럼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킬러 콘텐츠'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퍼뜩 떠올랐다. 행사의 사회자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분명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는 몸살을 앓고 있다. '만화 왕국'이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애니메이션의 방송 분량이나 매출 규모는 계속 하락 일로를 걷고 있다. 이를 견디지 못하는 '젊은 인재'들은 애니메이션 업계를 속속 떠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이 행사에서 다른 아시아의 감독들이 입을 모아 증언했던 일본 애니메이션의 옛 저력과 현재 겪고 있는 부침은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대목이다.

우리 문화 콘텐츠 가운데 '드라마 한류'가 호평을 받고 있지만 아직은 도약 단계라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낙담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부침하고 있는 걸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도 소니 등 일본업체에서 기술을 얻어 세계 1등이 되지 않았나.

이고운 문화부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