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와 전임자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한 달여간 이어졌던 노사정 6자 회의가 처음부터 끝까지 입장차만 확인하며 소득 없이 끝났다. 합의안 도출을 기대했던 기업들과 노조들은 실망감만 안게 됐다. 협상이 결렬되면서 노동계는 공언한 대로 강경투쟁 돌입 수순에 돌입하고,정치권에서도 여 · 야,여 · 여 간 이견의 수위를 높여가는 등 연말까지 양대 현안을 둘러싼 혼란이 가중될 전망이다.


◆지루한 공방…처음부터 타협은 없었다

노사정 6자 회의는 지난달 29일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이수영 경총 회장,손경식 대한상의 회장,김대모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등이 첫 모임을 가진 이후 실무진급,부대표급,대표급 회의를 반복하며 총 10차례 이어졌다.

하지만 정부의 전면 시행 방침에 대해 노동계는 "복수노조는 허용하되,전임자 임금 문제는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명문화한 노동조합법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반면 재계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시행하고,복수노조 허용은 노조 난립으로 혼란을 불러올 수 있어 금지해야 한다"며 "복수노조를 도입하려면 조합 설립요건을 강화하고,파업시 대체근로를 허용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노동계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대해,재계는 복수노조 허용에 대해 각각 부정적 입장을 고수하면서 협상은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정부는 재계를 향해 "복수노조가 허용되더라도 교섭창구를 단일화해 혼란을 줄이겠다"고 밝히고,노동계를 향해서는 "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하더라도 노조 재정 확충을 위한 여건을 마련하겠다"며 설득에 나섰지만 허사였다.

25일로 협상 기한이 끝나자 노동계는 장외투쟁 모드로 전환했다. 한국노총은 30일까지 산하 노조별 총파업 찬반투표를 진행한 뒤 다음 달 중순께 파업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민주노총도 다음 달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하고 26일 투쟁 일정을 확정,발표하기로 했다. 정부는 "타결이 안 돼 유감이지만 내년 시행에는 변함이 없다"며 조만간 시행에 따른 세부지침을 담은 행정법규를 마련해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법 시행 반대를 위한 노동계 총파업과 정부의 법 시행 의지가 부딪치면서 노정 간 갈등은 다음 달 중순께 최고조에 달할 전망이다.

◆개별 물밑교섭은 이어질 듯

하지만 내년 초 시행을 앞두고 극적 타결 가능성은 희박하나마 남아있다. 노사정이 앞으로도 물밑대화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총파업을 공언하고 있지만 투쟁동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게 딜레마다. 한국노총의 경우 "찬성률이 높아야 협상을 잘 이끌 수 있다"며 조합원들을 독려한 덕택에 파업 찬성률은 높게 나왔지만,실제 현장의 투쟁 열기는 예상에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민주노총 역시 금속노조,공무원노조 등 핵심 산별노조들이 다른 현안에 매달려 있어 투쟁 동력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정부도 "내년 시행에 변함이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정부가 시행에 따른 보완사항을 담은 행정법규를 내놓기로 했지만 최근 국회 입법조사처가 "정부가 법 대신 행정법규를 통해 복수노조 시행,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규제할 경우 위헌소지가 있다"며 제동을 걸었다. 여기에 야당은 물론 여당 내 일부 친노동계 의원들까지 정부의 시행 방침이 독단적이라며,독자적인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도 어떻게든 대화의 틀을 계속 유지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정부와 노동계가 큰 틀에서 합의에 도달할 경우 재계도 법 시행을 마냥 반대하기 어렵다. 복수노조가 세계적으로 허용되는 상황에서 무작정 반대 목소리만 냈다가는 '재계가 판을 깨트렸다'는 비난을 뒤집어쓸 수 있기 때문이다.

노사정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6자회담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경총과 대한상의가 서로를 의식하면서 강경한 목소리를 내놓는 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양보를 기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며 "당분간 정부와 노동단체,정부와 경영단체가 1 대 1,1 대 2 등 물밑 개별 협상을 진행한 뒤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지면 6자가 다시 모일 가능성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