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 잇는 家嶪] (76) 부강샘스‥침대 스프링 공장, 의사 아들 덕에 '건강 가전기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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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중소기업들은 자체 브랜드를 붙인 완제품 생산을 꿈꾼다. 인천시 남동구 고잔동 남동공단에 있는 부강샘스는 지난 2007년 침구류 전용 청소기 '레이캅'을 내놓으면서 이 같은 꿈을 실현했다. 레이캅은 국내는 물론 전 세계 14개국에서 45만여대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피부 접촉이 잦은 침구류를 자외선으로 살균한다는 컨셉트가 소비자들에게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부강샘스는 올해 레이캅 매출이 13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해 매출 80억원과 비교하면 60% 이상 늘어난 수치.중국 공장을 포함해 금속,전자,가전 등 3개 사업부로 운영되는 부강샘스의 올해 예상 매출액이 660억원인 만큼 레이캅은 출시 2년 만에 회사의 주력 제품으로 부상한 셈이다.
부강샘스는 레이캅의 선전을 계기로 부품소재 기업에서 건강가전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 같은 변신을 주도하는 인물은 2세 경영인 이성진 사장(40)이다. 이 사장은 2004년 회사 경영에 합류한 후 올초 부친 이하우 회장(71)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이 사장은 "건강가전사업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부친이 부품소재에서 PCB(인쇄회로기판),전자제품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등으로 기술을 축적해온 덕분"이라며 "부친이 키워온 '소리 없이 강한 기업'을 일반 소비자들과 접점을 갖는 가전회사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부강샘스는 1978년 부강산업이란 이름으로 출발했다. 대학 졸업 후 10년 동안 무역회사에서 수출입 업무를 했던 이 회장이 한 캐나다 침대회사가 주문한 스프링을 구할 수 없어 내친김에 직접 회사를 차린 것.직장생활로 모은 돈 300만원을 밑천 삼아 33㎡ 규모의 조그만 점포에 스프링 제조기계 한 대와 종업원 5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스프링 와이어 등 원자재가 귀하던 시절,이 회장은 무역회사 근무경험을 살려 부품제조업에 쉽게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3~4개 거래처를 둔 소규모 공장을 꾸려가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고 나면 원재료는 외상으로 들여와야 할 정도로 적자에 허덕였다. 회사가 흑자로 돌아서는 데는 꼬박 3년이 걸렸다.
이 회장은 "산업 발전이 급속히 이뤄지면서 대다수 중소 제조업체가 그랬던 것처럼 번 돈을 족족 사업에 재투자해야 했다"며 "사업에 뛰어든 후 20년 동안 집에 돈을 가져다 준 기억이 없다"고 회고했다. 이 회장 부인이 피아노학원을 운영하면서 가사를 책임졌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회사는 스프링 제조에서 단조부품 제조 분야로 영역을 넓혀가면서 꾸준히 성장했다. 1988년 삼성전자에 이어 이듬해인 1989년에는 현대자동차 등에 산업용 스프링 납품을 시작한 것이 부강샘스에는 전환점이 됐다. 이를 발판 삼아 스프링 분야 국내시장 점유율이 3위권 이내로 진입했고,중국에 현지 공장을 세우면서 회사는 급성장했다.
이 회장은 회사의 외형 성장 못지않게 기술 축적에도 남다른 공을 들였다. 20여년을 부강샘스에서 근무한 한 임원은 "새로운 기계가 개발되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찾아가 회사 자금사정에 상관없이 무조건 사들였다"고 전했다.
부강샘스가 1990년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서 현재 인천 남동공단으로 이전한 것도 이 회장의 공격적인 경영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인천 남동공단 부지 면적은 4297㎡로 오류동 공장의 10배 규모.부지 매입과 새로운 생산시설을 짓는 데 들어간 비용은 당시 부강샘스 연간 매출의 2배에 육박하는 30억여원에 달했다. 장기근속한 임직원들은 한결같이 남동공단 이전 후 자금난에 시달렸던 때를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기억하고 있다.
부품소재 분야에서 기술력을 축적한 부강샘스는 1999년 PCB를 자체 생산한 데 이어 셋톱박스 MP3 등 전자제품의 OEM 생산체제를 구축했다. 2007년 레이캅을 출시할 수 있었던 것도 생산시설을 갖추고 꾸준히 기술력을 쌓아온 덕분이다.
이 회장은 2000년 의대 졸업 후 대학병원에서 인턴과정을 밟던 이 사장에게 유학을 권했다. 이 사장은 부친의 조언뿐만 아니라 향후 병원 운영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미국 듀크대 MBA(경영학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자라면서 가업 승계를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이 사장은 이 같은 유학 권유가 회사 경영에 합류시키려는 부친의 사전 정지작업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된다.
MBA 졸업 후 미국 존슨앤드존슨 제약파트에 입사,근무하면서 회사 경영에도 관심이 생겼다. 이 사장은 2004년 부친의 호출을 받았다. 이 회장은 "의사도 좋지만 회사를 경영해 보국(報國)하는 것이 사나이로서 더 보람된 일"이라며 입사를 종용했다.
이 사장은 중국법인장을 포함해 모든 사업부서를 거치며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쌓았다. 회사 전산화 작업을 추진하는 한편 MBA 과정에서 배운 경영이론과 존슨앤드존슨에 근무하며 쌓은 실무경험을 회사 경영에 접목시켰다. 또 2005년 건강가전사업을 신규 아이템으로 확정하고,첫 작품으로 침구류 청소기라는 아이템을 선정한 뒤 개발 및 판매마케팅을 총괄했다.
이 회장은 '기대 반 근심 반'으로 지켜보던 아들이 건강가전사업 등에서 조기 성과를 내며 경영능력을 보여줘 내심 기뻐하고 있다. 올초 예정보다 빨리 경영권을 넘긴 것도 그만큼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맨주먹으로 회사를 이만큼 키웠는데,의사 출신에다 유학까지 갔다온 아들은 앞으로 회사를 10배쯤 더 키우지 않겠느냐"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인천=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